연습장의 아침은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밤새 7번 아이언으로 볼 스피드 72를 찍는 악몽을 본 선수들이 하나둘 타석에 나타난 것이다.
어제 백강후가 집어 들었던 그 폐급 클럽은 이미 데이터팀 직원의 책상 위에 모셔져 있었다. 선수들은 차마 그 채를 건드리지 못한 채, 자신의 최신형 클럽을 휘두르며 화면을 확인했다.
"63... 젠장, 아무리 때려도 64가 한계네."
유시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드라이버를 휘두르듯 아이언을 내둘렀다. 하지만 화면 속 숫자는 요지부동이었다. 72라는 숫자는 넘볼 수 없는 성벽처럼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어제까지 "퇴물"이라며 낄낄대던 운영팀 직원들도 입을 닫았다. 대신 그들은 어제 찍힌 백강후의 스윙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이상합니다. 슬로비디오로 돌려봐도 어드레스가 없어요. 그냥 슥 지나가면서 툭 건드린 건데, 임팩트 순간에만 샤프트가 휘어지는 각도가 계산 범위를 벗어납니다."
그때, 자동문이 열렸다.
연습장 안의 모든 소음이 마법처럼 잦아들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조차 숨을 죽인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백강후가 걸어 들어왔다. 어제와 똑같은 낡은 모자, 똑같은 하프백.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의 구두에 묻은 흙이 어제보다 더 붉고 진하다는 것뿐이었다.
백강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어제의 그 18번 타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처럼, 신문을 펼쳤다.
"저기... 코치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성질 급한 강건한이었다. 그는 땀에 젖은 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백강후의 타석 앞으로 다가갔다.
"어제 그 7번 아이언... 어떻게 치신 겁니까? 기계 오류입니까, 아니면 무슨 기술이라도 쓴 겁니까?"
백강후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기술? 그딴 거 없다."
"그럼 그 숫자가 어떻게 나옵니까! 저희가 밤새도록 쳐봤는데 65 넘기는 놈도 없었습니다!"
백강후가 천천히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강건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은 채석장의 폭발 직전처럼 고요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너희는 공을 '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야."
"그게 무슨..."
"공을 패는 게 아니라, 채가 공을 지나가게 둬야지. 너희 스윙엔 욕심만 가득해서 길(Path)이 안 보이는데, 숫자가 나오겠냐?"
백강후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가서 어제 하던 대로 해라. 아직 내 신문 다 안 끝났다."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이제 그들에게 백강후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너희는 아직 내 말을 알아들을 자격도 없다'는 오만한 선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또다시 기묘한 방치가 시작되려는 찰나, 백강후가 신문지 너머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 데이터 팀."
기록관리팀 직원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예, 코치님!"
"오늘부터 선수들 샷 데이터 뽑을 때, 비거리랑 스피드 다 지워."
"예? 그럼 뭘 기록합니까?"
"좌우 편차, 그리고 탄도 고도 편차만 기록해. 1야드라도 어긋나면 그 데이터는 그냥 파쇄해 버리고."
연습장에 다시 한번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멀리 치는 것보다 똑바로, 일정하게 치는 것이 백배는 어렵다는 걸 아는 선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백강후가 "비거리와 스피드를 지우라"고 명령하자, 연습장은 순식간에 술렁였습니다. 골퍼에게 비거리는 자존심이고, 스피드는 권력이었다. 그걸 무시하라는 건 계급장을 떼고 싸우라는 말과 같았다.
데이터 팀장이 당황하며 물었다.
"코치님, 비거리를 안 보면... 선수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뭘로 증명하죠?"
백강후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곁에 있던 낡은 하프백을 발로 툭 찼습니다.
"발전? 여기 발전할 놈이 어딨어. 다들 망가져서 온 놈들인데."
그 말에 유시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말이 심하시네요. 저희 그래도 1부 투어 뛰던 선수들입니다."
백강후가 드디어 신문을 완전히 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의 시선이 유시영을 지나 강건한, 그리고 구석의 김인아에게 차례로 머물렀다.
"1부 투어? 그래, 거기서 너희가 배운 게 뭐지? 남들보다 멀리 보내려고 몸 비틀다가 허리 나가고, 입스(Yips) 오고, 결국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 아냐?"
백강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타석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전부 자기 백 가져와. 드라이버부터 로브웨지까지, 가방에 든 모든 클럽으로 저 100미터 깃대를 맞힌다. 하나라도 빗나가면 다시 1번 클럽부터 시작이야."
선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300야드를 날리는 그들에게 100미터 샷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강후의 다음 조건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오늘부터 내 연습장에서 '장타' 치는 놈은 바로 퇴출이다. 딱 100미터만 보내. 대신, 100미터 지점에 꽂힌 저 깃대를 맞혀. 좌우 편차 50cm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무한 반복이다."
선수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드라이버로 100미터를 치라고? 살짝만 건드려도 200미터는 나가는 채였다. 하지만 백강후의 눈은 장난이 아니었다.
"기록팀, 지금부터 쟤들 샷 100개씩 찍어. 탄도 높이가 1미터라도 차이 나면 1번부터 다시 시작이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강건한은 드라이버를 짧게 잡고 달래 쳤지만 공은 깃대를 훌쩍 넘어 그물을 때렸다. 유시영은 웨지로 방향은 맞췄으나 탄도가 제멋대로였다. 기록팀의 모니터엔 '실패', '실패', '다시 시작'이라는 붉은 글자만 무한히 점멸했다.
"아니, 이걸 어떻게 합니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세 시간째 반복되는 뻘짓에 유시영이 채를 내팽개치며 소리 질렀다. 땀과 분노로 범벅이 된 선수들이 백강후를 향해 거칠게 몰려들었다.
"직접 보여주시든가요! 드라이버로 100미터를 어떻게 맞힙니까?"
백강후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구석에 세워둔 자신의 낡은 하프백에서, 100년은 된 듯 가죽이 너덜너덜한 드라이버를 꺼냈다. 요즘은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퍼시먼(나무) 소재의 드라이버였다.
깡—.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백강후의 드라이버에서 출발한 공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100미터 지점 깃대를 정면으로 때렸다.
선수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백강후는 멈추지 않았다. 3번 우드, 5번 아이언, 9번 아이언... 클럽의 길이는 제각각이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공이 약속이라도 한 듯 100미터 깃대로 빨려 들어갔다. 로브웨지로 하늘 높이 띄운 공이 깃대 머리를 맞히고 툭 떨어지자 연습장엔 비명 같은 정적이 흘렀다.
"어떻게... 저게 가능해?"
모두가 넋이 나간 그때, 백강후가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퍼터를 꺼냈다.
"설마...?"
선수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퍼터는 공을 굴리는 도구지, 띄우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백강후는 평소와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어드레스를 잡았다. 아니, 그건 어드레스라기보다 짐승이 먹이를 덮치기 전의 찰나였다.
팍—!
퍼터가 드라이버처럼 강렬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공은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레일을 타듯 낮게 깔려 질주하기 시작했다. 인조 잔디 위를 미친 듯이 구르던 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00미터 앞 깃대 하단을 '탕' 하고 때렸다.
백강후는 채를 가방에 꽂으며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채 탓하지 마라. 너희가 못 하는 건 채가 길어서도, 짧아서도 아냐. 공에 네 의지를 실어 보낼 줄 모르는 멍청한 몸뚱이 탓이지."
백강후는 굳어버린 그들을 뒤로하고 연습장을 나섰다.
"내일 아침까지다. 전원 성공 못 하면, 내일은 채 없이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