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연습장에선 누구나 프로다.

by 일야 OneGolf

​연습장의 아침은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밤새 7번 아이언으로 볼 스피드 72를 찍는 악몽을 본 선수들이 하나둘 타석에 나타난 것이다.


​어제 백강후가 집어 들었던 그 폐급 클럽은 이미 데이터팀 직원의 책상 위에 모셔져 있었다. 선수들은 차마 그 채를 건드리지 못한 채, 자신의 최신형 클럽을 휘두르며 화면을 확인했다.


​"63... 젠장, 아무리 때려도 64가 한계네."


​유시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드라이버를 휘두르듯 아이언을 내둘렀다. 하지만 화면 속 숫자는 요지부동이었다. 72라는 숫자는 넘볼 수 없는 성벽처럼 그들을 비웃고 있었다.


​어제까지 "퇴물"이라며 낄낄대던 운영팀 직원들도 입을 닫았다. 대신 그들은 어제 찍힌 백강후의 스윙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기 시작했다.


​"팀장님, 이상합니다. 슬로비디오로 돌려봐도 어드레스가 없어요. 그냥 슥 지나가면서 툭 건드린 건데, 임팩트 순간에만 샤프트가 휘어지는 각도가 계산 범위를 벗어납니다."


​그때, 자동문이 열렸다.
​연습장 안의 모든 소음이 마법처럼 잦아들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조차 숨을 죽인 것 같은 정적 속에서 백강후가 걸어 들어왔다. 어제와 똑같은 낡은 모자, 똑같은 하프백.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의 구두에 묻은 흙이 어제보다 더 붉고 진하다는 것뿐이었다.


​백강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어제의 그 18번 타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처럼, 신문을 펼쳤다.


​"저기... 코치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성질 급한 강건한이었다. 그는 땀에 젖은 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백강후의 타석 앞으로 다가갔다.


​"어제 그 7번 아이언... 어떻게 치신 겁니까? 기계 오류입니까, 아니면 무슨 기술이라도 쓴 겁니까?"

​백강후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기술? 그딴 거 없다."


​"그럼 그 숫자가 어떻게 나옵니까! 저희가 밤새도록 쳐봤는데 65 넘기는 놈도 없었습니다!"


​백강후가 천천히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강건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은 채석장의 폭발 직전처럼 고요하면서도 위태로웠다.


​"너희는 공을 '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야."


​"그게 무슨..."


​"공을 패는 게 아니라, 채가 공을 지나가게 둬야지. 너희 스윙엔 욕심만 가득해서 길(Path)이 안 보이는데, 숫자가 나오겠냐?"


​백강후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가서 어제 하던 대로 해라. 아직 내 신문 다 안 끝났다."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이제 그들에게 백강후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너희는 아직 내 말을 알아들을 자격도 없다'는 오만한 선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또다시 기묘한 방치가 시작되려는 찰나, 백강후가 신문지 너머로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 데이터 팀."


​기록관리팀 직원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예, 코치님!"


​"오늘부터 선수들 샷 데이터 뽑을 때, 비거리랑 스피드 다 지워."


​"예? 그럼 뭘 기록합니까?"


​"좌우 편차, 그리고 탄도 고도 편차만 기록해. 1야드라도 어긋나면 그 데이터는 그냥 파쇄해 버리고."


​연습장에 다시 한번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멀리 치는 것보다 똑바로, 일정하게 치는 것이 백배는 어렵다는 걸 아는 선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백강후가 "비거리와 스피드를 지우라"고 명령하자, 연습장은 순식간에 술렁였습니다. 골퍼에게 비거리는 자존심이고, 스피드는 권력이었다. 그걸 무시하라는 건 계급장을 떼고 싸우라는 말과 같았다.
​데이터 팀장이 당황하며 물었다.


"코치님, 비거리를 안 보면... 선수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뭘로 증명하죠?"


​백강후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곁에 있던 낡은 하프백을 발로 툭 찼습니다.


"발전? 여기 발전할 놈이 어딨어. 다들 망가져서 온 놈들인데."


​그 말에 유시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말이 심하시네요. 저희 그래도 1부 투어 뛰던 선수들입니다."


​백강후가 드디어 신문을 완전히 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의 시선이 유시영을 지나 강건한, 그리고 구석의 김인아에게 차례로 머물렀다.

​"1부 투어? 그래, 거기서 너희가 배운 게 뭐지? 남들보다 멀리 보내려고 몸 비틀다가 허리 나가고, 입스(Yips) 오고, 결국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 아냐?"


​백강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타석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전부 자기 백 가져와. 드라이버부터 로브웨지까지, 가방에 든 모든 클럽으로 저 100미터 깃대를 맞힌다. 하나라도 빗나가면 다시 1번 클럽부터 시작이야."


선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300야드를 날리는 그들에게 100미터 샷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강후의 다음 조건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오늘부터 내 연습장에서 '장타' 치는 놈은 바로 퇴출이다. 딱 100미터만 보내. 대신, 100미터 지점에 꽂힌 저 깃대를 맞혀. 좌우 편차 50cm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무한 반복이다."


선수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드라이버로 100미터를 치라고? 살짝만 건드려도 200미터는 나가는 채였다. 하지만 백강후의 눈은 장난이 아니었다.


​"기록팀, 지금부터 쟤들 샷 100개씩 찍어. 탄도 높이가 1미터라도 차이 나면 1번부터 다시 시작이다."​


​지옥이 시작되었다.


강건한은 드라이버를 짧게 잡고 달래 쳤지만 공은 깃대를 훌쩍 넘어 그물을 때렸다. 유시영은 웨지로 방향은 맞췄으나 탄도가 제멋대로였다. 기록팀의 모니터엔 '실패', '실패', '다시 시작'이라는 붉은 글자만 무한히 점멸했다.


​"아니, 이걸 어떻게 합니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세 시간째 반복되는 뻘짓에 유시영이 채를 내팽개치며 소리 질렀다. 땀과 분노로 범벅이 된 선수들이 백강후를 향해 거칠게 몰려들었다.


​"직접 보여주시든가요! 드라이버로 100미터를 어떻게 맞힙니까?"


​백강후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구석에 세워둔 자신의 낡은 하프백에서, 100년은 된 듯 가죽이 너덜너덜한 드라이버를 꺼냈다. 요즘은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퍼시먼(나무) 소재의 드라이버였다.


​깡—.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백강후의 드라이버에서 출발한 공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100미터 지점 깃대를 정면으로 때렸다.

선수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백강후는 멈추지 않았다. 3번 우드, 5번 아이언, 9번 아이언... 클럽의 길이는 제각각이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공이 약속이라도 한 듯 100미터 깃대로 빨려 들어갔다. 로브웨지로 하늘 높이 띄운 공이 깃대 머리를 맞히고 툭 떨어지자 연습장엔 비명 같은 정적이 흘렀다.


​"어떻게... 저게 가능해?"


​모두가 넋이 나간 그때, 백강후가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퍼터를 꺼냈다.


​"설마...?"


​선수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퍼터는 공을 굴리는 도구지, 띄우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백강후는 평소와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어드레스를 잡았다. 아니, 그건 어드레스라기보다 짐승이 먹이를 덮치기 전의 찰나였다.


​팍—!


​퍼터가 드라이버처럼 강렬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공은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레일을 타듯 낮게 깔려 질주하기 시작했다. 인조 잔디 위를 미친 듯이 구르던 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00미터 앞 깃대 하단을 '탕' 하고 때렸다.


​백강후는 채를 가방에 꽂으며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채 탓하지 마라. 너희가 못 하는 건 채가 길어서도, 짧아서도 아냐. 공에 네 의지를 실어 보낼 줄 모르는 멍청한 몸뚱이 탓이지."


​백강후는 굳어버린 그들을 뒤로하고 연습장을 나섰다.


​"내일 아침까지다. 전원 성공 못 하면, 내일은 채 없이 연습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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