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골프는 실수를 줄이는 게임이다.

by 일야 OneGolf

​백강후가 떠난 자동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던 선수들과 직원들은, 마치 거대한 해일에 휩쓸린 생존자들처럼 한동안 미동도 하지 못했다.

유시영이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입을 뗐다.


​“방금... 퍼터였지?”


​그의 눈은 여전히 100미터 앞 깃대 밑에 멈춰 선 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퍼터로 공을 띄워 100미터를 보낸다는 것은, 그들이 평생 믿어온 골프의 물리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비웃음은 경외로, 경외는 이내 지독한 열등감과 공포로 바뀌었다. 저 괴물이 요구한 미션은 이제 더는 농담이 아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연습장은 거친 숨소리와 쇳소리로 가득 찼다.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드라이버를 성공하면 아이언에서 빗나갔고, 웨지를 맞히면 다시 드라이버에서 무너졌다.


새벽 3시가 넘어갈 무렵,

기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평소라면 서로의 스윙엔 관심도 없던 선수들이 하나둘 타석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야, 건한아. 드라이버 잡을 때 오른손 검지에 힘 빼봐. 아까 그 괴물이 칠 때 보니까 헤드 무게로만 툭 던지더라고. 나 그렇게 하니까 방금 100미터 맞췄어."


​"진짜? 나는 웨지 칠 때 아예 눈감고 쳐봤거든. 감각에만 집중하니까 탄도가 일정해지더라. 시영이 너도 해봐."


​자존심 강한 유시영도, 무뚝뚝한 강건한도 어느새 땀에 젖은 채 머리를 맞댔다. 성공한 비법을 나누고, 실패한 이유를 분석했다. 개개인의 점수가 아닌 '팀 전원의 성공'이라는 미션이, 각자도생 하던 오합지졸들을 하나의 군대로 묶어주고 있었다.


​백강후는 사무실 복도 어둠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들이 서로의 샷을 보며 토론하는 모습, 그리고 기록팀이 자발적으로 달려가 그들의 미세한 각도를 모니터로 확인해 주는 장면.


​그의 입가에 찰나의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인정의 미소라기보다, 단단했던 바위에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석공의 확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구석 타석에서 묵묵히 채를 휘두르던 서국유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할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이었다. 사색이 된 국유는 채를 내팽개치고 연습장을 뛰쳐나갔다.


​다음 날 아침,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온 국유를 맞이한 것은 백강후의 서늘한 명령이었다.


​"무단이탈. 짐 싸라."


​"코치님! 할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유가 울먹이며 항변했고, 지켜보던 선수들도 코치의 비정한 처사에 동요했다.

그러나 백강후는 흔들림이 없었다.


​"네 사정은 네 사정이고, 규칙은 규칙이다. 프로는 필드 위에서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샷을 휘둘러야 하는 직업이야. 그 무게를 못 견디겠으면 골프는 취미로만 해라."


​백강후는 국유의 발 앞에 클럽 하나를 던졌다.


​"살고 싶으면, 오늘 밤이 지나기 전까지 어제 미션을 두 배로 수행해. 14개 클럽이 아니라 28개. 모든 클럽으로 두 번씩 연속 성공해라.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된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미션의 끝자락에서 지쳐 쓰러져 있었지만, 국유의 타석에는 다시 불이 켜졌다. 할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과 코치를 향한 증오가 뒤섞여, 국유의 손바닥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그는 반창고를 칭칭 감은 채 다시 채를 잡았다.


​데이터 팀은 숨을 죽인 채 국유의 샷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뽑아냈다.


​"코치님, 국유의 집중력이 평소의 3배 치입니다. 근육의 미세한 떨림조차 억제하고 있어요. 수치가... 완벽하게 일정합니다."


​백강후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낮게 읊조렸다.


​"바위가 쪼개지기 시작하는군. 곧 샘이 터지겠어."


​탕—!


​마지막 28번째 공이 100미터 앞 깃대 하단을 날카롭게 때렸다. 그 소리는 마치 국유의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터지는 소리 같았다.

채를 쥔 손의 힘이 풀리며 클럽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국유는 그대로 무릎을 꿇더니 타석 바닥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반창고가 찢겨 나간 손등 위로 국유의 거친 숨결과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에 대한 걱정, 코치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을 증명해 냈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처절한 울음소리가 고요한 연습장을 가득 채웠다.
​멀리서 지켜보던 선수들은 차마 다가가지 못한 채 발을 멈췄다.


​비정한 명령을 내렸던 백강후가 천천히 국유에게 다가갔다. 선수들은 코치가 또 어떤 독설을 내뱉을까 싶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엎드려 떨고 있는 국유의 굽은 등을 커다란 손으로


'툭'


무심하게 한 번 치고는 그대로 돌아서 연습장을 나갔다.
​그것은 격려도, 사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투박한 손길이 국유의 등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 지켜보던 이들은 느낄 수 있었다.


​'통과다.'


​백강후의 그림자가 사라진 연습장에는 한동안 국유의 흐느낌만이 감돌았다. 남겨진 선수들과 운영팀 직원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이제 백강후를 단순히 무서운 폭군이나 사기꾼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휘두르는 '정'이 얼마나 아픈지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정을 견뎌내면 자신들의 가슴속에서도 국유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시영은 떨리는 손으로 제 아이언을 다시 고쳐 잡았다. 강건한은 땀을 닦으며 국유의 어깨를 조용히 짚어주었다. 데이터 팀 직원들은 모니터에 기록된 국유의 완벽한 탄도 궤적을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공포는 동경으로, 그리고 그 동경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지독한 열망으로 전염되고 있었다.


​석천(石泉).
굳게 닫혀 있던 바위의 틈새로, 마침내 비릿한 흙내음을 머금은 첫 번째 샘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2화 연습장에선 누구나 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