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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시를 쓰지 않았다. 못했다는 말은 기만이다. 다시 말한다. 쓰지 않았다. 시를 읽지 않았다. 이 역시 읽지 못한 게 아니다. 충분히 써도 괜찮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 알량한 자존심이 그걸 부정했다. 나는 결국 입대를 했다.
조만간 군대에 들어온 지 백 일이 된다. 세 자리를 채우게 된다지만, 내겐 아직 햇수로 이 년이라는 벽이 코를 짓누른다. 몇 번의 영장이 내게 기어코 날아왔을 때, 늘 전방이었다. 강원도. 강원도라곤 어차피 술 마실 거면서 기분이나 내자던 가평이나, 친가인 춘천밖에 몰랐던 내게 국방부는 화천이나 철원, 이젠 기억도 안 나는 곳을 소개해줬다. 그걸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있다는 핑계를 댔고, 알겠다며 기다리겠다는 듯이 나를 끝끝내 이곳으로 내몰았다. 그건 불만이 없다. 내가 감수한 거니까.
이런 나를 그래도 괜찮게, 혹은 가엾게 봐주셨나, 신병교육대에서 몇 번의 면접 끝에 나는 사단본부에 합격했고, 여긴 딱 두 명만 뽑았다. 그리고 사단 전체를 통틀어 몇 명만 가는 곳에 파견을 갔다. 그리고 며칠 만에 뿌리박게 되었다. 그 또한 우연처럼 나밖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은 적성에 맞는 곳이다. 나는 그게 만족스럽다. 다만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데 다들 여기까지 보고 계신다. 처음에는 a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최소 f까지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뭘 해도 낙제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거였다. 내가 파견 오기 전에 한 선임이 전출 왔었다. 그 사람이, 솔직한 말로 그 새끼가 싸지른 거다. 그걸 치우고 있다. 내게 a만 하면 된다던 사람들이 이제 그 이상의 더 위를 원한다. 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알려주긴 알려주는데, 처음이니 요령도 뭣도 없다. 그게 한 달이 됐다.
그래도 이젠 적응했다. 나는 어딜 가도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근데 여긴 시간이 없다. 연습조차 실전이다. 내가 못하면 모두가 피해 입는 자리다. 내가 제일 끔찍해하는 자리.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다른 행사 때문에 빠진 동기를 탓해야 하나, 첫날부터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던 내 행동을 원망해야 하나.
당장도 내가 그만두고 싶다 하면 안 할 수 있다. 근데 이제 자리가 깊어졌다. 전에 내 선임이었던 이들이 내게 형이라 부르고, 나는 여기 온 시간이 위에 있던 날보다 길어졌다. 예전에 배운 것들이 기억이 안 난다. 여기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실수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흘린다. 그게 나는 괴롭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질 않으셨다. 동생에게 전화하니 직장을 옮기시고 야간에 일하신다고 한다. 일을 쉰 지 삼 주 뒤에. 내게 편의점 야간은 몸 상한다고 하지 말라던, 그 시간대를.
삼 주라는 시간 동안 그래도 몇 번 연락을 했는데, 엄마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며 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내게 말하기 쉽지 않으셨겠지. 집에서 세 시간도 넘게 걸리는 곳에서 군 복무를 하는 내게, 몇 년 안에 또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도, 대출에 거절당했다는 것도, 야간에 일해야 한다는 것까지.
도대체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내 시간을 바쳐 붙잡은 시도 등한시하고, 군생활 조차 아직 어설픈데, 밖에서 배운 어정쩡한 처세술로 어떻게든 모면하며 살고 있다. 이게 무슨 꼴인가. 엄마는 내게 늘 미안해하셨다. 그중 태반이 금전 문제다. 해주지 못해서, 해줄 수 없어서, 내가 해줘야 해서.
돈 되는 일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근데 어떡하지, 이제, 이제도 아니지, 이미 오래전부터 이것밖에 할 줄 모르는데, 그걸 안 하고 있다. 못한다는 건 진심으로 거짓이다. 이 글 또한 기만이다. 나는 착한 사람처럼 살면서, 누구를, 나조차 위하지 않고 있다.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