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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Jun 26. 2021

안녕, 리스본

Lisbon, Portugal 02

올해를 한 시간 정도 남겨둔 채 드디어 리스본 포스텔라 공항에 도착했다.


긴 컨테이너 벨트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수화물을 기다렸다. 자꾸만 감겨오는 눈, 묵직한 어깨. 피곤한 몸 80%와 떨리는 마음 20%에 잠긴 상태였다.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눈빛이었다. 저 멀리 내 핑크색 캐리어를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으로 꺼내어 걸어 나왔다. 차분한 분위기의 공항 밖으로 어둠이 깔린 하늘이 보였다. 곧바로 예약한 우버가 도착했고, 얼른 몸을 실었다.


 기사님과 나 사이에는 어색한 묵묵함이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피곤함의 자리는 설렘과 조금의 긴장이 차지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커다란 불꽃이 하나 터지더니 곧이어 수많은 불꽃들이 쏟아졌다. 맥락 없는 잔치에 얼떨떨했다. 깜깜한 하늘에 수놓인 불꽃들은 영락없이 아름다웠다. 그때 기사님이 해맑은 말투로 “Happy New Year!"라며 외치시는 게 아닌가. 얼떨떨한 마음도 잠시, 나도 그에게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새해 인사를 건넸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새해가 찾아왔고 이렇게 하여 스물한 살을 리스본의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낯선 사람과 맞이했다. 1년에 단 한 번 찾아오는 해가 바뀌는 순간.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순간이 가장 담담한 형태로 찾아왔다. 노크 없이 들어온 새해. 잊지 않고 짧은 소원을 빌어본다.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포르투갈 가족과 함께 지내는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니 큰 키의 남자 호스트가 내려오셨다.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그는 신사 같은 인사를 건네왔다. 캐리어를 자신에게 달라며 들어주셨고,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가게의 문처럼 직접 문을 당겨 여는 구조였는데 영화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타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부인도 밝게 나를 반겨주었다. “올라!”(Hola!) 하고 인사하며 포르투갈어로 미리 준비해간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의 동그래진 눈은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냐는 물음과 반가움으로 이어졌다. 작게 준비한 인사는 우리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물해주었다. 밤늦게 도착한 내게 피곤하지는 않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봐 주시며 낯설어하는 나를 따뜻한 친절로 맞이해주셔서 감사했다.


 일주일간 머물 작은방은 화장실과 작은 발코니까지 달려있었는데, 깔끔하고 아늑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얼른 짐을 풀고 샤워를 하며 따뜻한 물에 피로를 녹였다. 공항에서부터 꽁꽁 둘러싼 긴장이 풀리니 편안함이 물처럼 밀려왔다. 폭신한 침대에 누워 머리맡의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일기를 써 내려갔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잠에 청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근사한 스물하나의 시간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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