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닙 Jul 01. 2021

눈빛의 결

Lisbon, Portugal 03

Lisbon, Portugal 03 _ 눈빛의 결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스며들어 왔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나는 얼굴에 비친 온기를 느끼고 눈을 떴다. 오늘은 리스본에서의 첫날, 여행의 시작이다. 잔잔히 퍼지는 기대감에 침대에서 얼른 일어나야 했다. 발코니로 나가 창밖 풍경을 내다봤다. 커다란 겨울나무 뒤로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비행기에 탄 이후로 줄곧 어두컴컴했었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햇빛은 평소보다 더 빛났다. 우선 어제 못다 한 짐 정리를 마저 했다. 읽을 책과 공책 몇 권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옷들도 가지런하게 옷걸이에 걸었다. 밤사이 헝클어진 침대까지 정리하니 꽤 말끔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내 물건이 하나둘씩 놓여 있으니 낯선 느낌이 한결 누그러지는 듯했다. 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맑은 날씨의 리스본, 여행자를 위해 내어준 흔쾌한 배려였다. 먼저 호시우 광장으로 가기 위해 집 바로 코앞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파란색 충전식 티켓을 구매하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본 창밖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줄지어 나타났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중 한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 비추어질 나는 목에 카메라를 건 동양인 여자아이. 매일 타고 다니던 지하철에 뜬금없이 나타난 이 아이는 이곳을 어떤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을지 순수한 호기심이 얽힌 넉넉한 눈빛이었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에 배가 고팠다. 늦은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앞에 보이는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작은 가게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벽에 걸린 커다란 메뉴판은 온통 포르투갈어로 가득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커피 몇 종류뿐,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 투성이었다. 메뉴판을 힐끔힐끔 보며 번역 어플에 단어를 입력했지만, 말끔히 번역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내 뒤에 계신 아주머니께 도움을 청했더니 푸근한 인상의 그녀는 일행과 함께 손짓까지 동원하며 설명해주셨다. 이 가게에서 특히 맛있는 메뉴까지 알려주셨고 그 덕분에 무사히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곧이어 쟁반에 나온 메뉴를 들고 테라스로 향했다. 겨울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강렬한 햇볕이 쬐어 따스했다. 쭉 들이킨 오렌지 주스는 방금 짜내어 신선했고, 갓 구워낸 나타는 말 그대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나타는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타르트로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요리인데, 에그타르트와 같다. 



 한 층 달달해진 기분으로 나와 트램 대신 두 다리로 골목골목을 누비며 산타루치아 전망대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색들로 칠해진 집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고, 빼곡하게 늘어선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좁다란 골목과 낡은 건물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향취가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국적인 경치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으니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저 오르막길에서는 나처럼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멘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지나가는 트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모두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입고 있는 옷도, 머리색도 모두 달랐지만, 그 충만한 눈빛만큼은 똑 닮았었다. 오로지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을 생각과 감정들. 흘러나오는 방식은 다르지만 아마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리스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