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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쪽겨울섬 May 02. 2021

별빛 저무는 거리에서

르퓌길에 서다 3. Le Puy-en-Velay

2018년 3월 21일



 

 요셉 성인은 빈방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서야 겨우 마구간에 묵어갈 수 있었다. 그에 비할 간절함도 아닌데 나의 '빈방 있습니까?'는 단 한 번에 백발 신부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긴 복도를 따라 나 있는 수많은 방 가운데 하나에 짐을 풀었다. 머리맡에 십자고상이 걸려있는 철제 침대 두 개와 책상, 옷장, 세면대가 자리한 작은 방은 오랫동안 신학교였다는 과거에 걸맞게 소박하고 정갈했다.

 바닥까지 드리운 커튼을 젖히자,  많은 지붕과 나무 군락 너머 대성당 첨탑이 보였다. 무엇 하나 새것이 아닌 낡은 방안에 영적이고 청아한 기운이 깃드는 순간. 이 방에 머물렀을 수많은 신학생과 순례자들도 이렇게 중얼거렸을까.

 이런 순간을 위해서라면, 어깨의 고통쯤이야........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바깥은 점차 어둠이 내렸다. 찬 공기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라디에이터를 켰다. 웅- 소리를 내는 라디에이터에 손을 대보니 훈훈해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컴컴한 복도를 더듬어 공동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새벽부터 세느강까지 걸었던 여파에 시차가 더해져 고단함이 몰려왔다. 애써 일기장을 펼쳐 또박또박 써 내려가던 글씨는 리옹역에서 기차에 타고 르퓌에 닿기도 전에 점점 흩날려갔다. 끝맺지 못한 일기를 머리맡에 두고 까무룩 잠이 든 저녁. 오랜만에 꿈도 잊은 채 무의식의 단잠을 잤다.










 잠에서 깬 새벽 세 시. 라디에이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어도 천고가 높은 방은 어쩐지 서늘했다.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던 침낭에서 빠져나와 커튼을 젖혔다. 희미하게 불을 밝힌 대성당 첨탑이 솟아오른 먹색 하늘에 수많은 별 무리가 무언가 쉼 없이 속삭이듯 찬란히 빛났다.

 한참을 무수한 별과 소리 없이 수다스럽게 눈을 맞추다 보니, 내가 한 걸음 발을 떼면 한 뼘쯤 움직여 내 발걸음을 맞춰줄 저 별 무리와 르퓌의 새벽을 걷고 싶어졌다.


  깜깜함이 조금이라도 옅어지길 기다리며 마치지 못한 일기를 쓰다가, 바깥에 푸르스름한 색이 감돌 즈음 어두운 복도에 불을 밝히며 정원으로 내려갔다. 오래전 신학생들이 머물렀던 수많은 작은 창문들로 둘러싸인 정원엔 커다란 제오르지오 성인상이 고요 속에 서 있고 중정 위 네모난 하늘에는 아마도 아주 긴 시간, 이 자리를 서성이던 수많은 순례자를 비추었을 별빛이 손에 잡힐 듯 반짝였다. 순례자와 함께 한 헤아릴 수 없이 길고 긴 저 별의 역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기쁨으로 뭉클해졌다.

 그때 기쁨과 함께 밀려온 건 다름 아닌 텅 빈 뱃속을 울리는 배고픔. 어제 파리를 떠난 후로 12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위장의 보채는 볼멘소리를 들으며 1층에 마련된 순례자를 위한 식탁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식탁에는 새벽같이 길을 떠날 순례자들을 위해 전날 밤 미리 준비해두었을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바게트를 썰어놓은 바구니, 식빵, 잼과 버터, 커피 가루와 갖가지 티백. 식탁에 티슈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내 몫의 빵을 덜었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발에 커피를 진하게 탔다. 마른 빵에 버터와 잼을 쓱쓱 발라 한 입 베어 물고 씁쓸한 커피 한 모금. 그걸 예닐곱 번쯤 반복한 게 식사의 전부였지만, 따뜻한 기운이 배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한새벽 르퓌를 걷는 발걸음은 세느강으로 맹목적인 걸음을 했던 하루 전과는 달랐다. 느리고 조심스러웠으며, 자주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좁은 골목 사이에서도, 대성당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에서도  별들이 따라왔다. 차디찬 공기에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입김 사이로 저마다의 속도로 깜박깜박 반짝이는 별빛은 내게 보내는 신호 같았다.


 








 가장 반짝이는 순간과 바닥 없는 암흑은 왜 이리 종이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지. 그 어둠을 걷어내면 이면의 반짝임은 어떡해야 하지. 용기와 온기로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했던 빛나는 한때를. 나는 그 순간을 어둠과 함께 구겨 버리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심연 같은 대성당 파사드의 어둠 앞에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렸다. 귀를 기울여도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질문. 손을 모으고 주모송을 바쳤다. 의탁보다 체념에 가까운 기도는 저 심연 너머에 닿기도 전에 흩어질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저앉아 가슴을 치고 싶지 않았기에.

 기도를 마치고 별이 뜬 하늘 아래 새벽어둠이 두텁게 가라앉은 길을 향해 긴 계단을 내려갔다. 누구라도 별을 마주하려면 이렇게 캄캄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겠지. 계단을 다 내려와 길에 발을 딛자, 듣지 못할 줄 알았던 대답이 어렴풋이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한낮에도 내 세상을 캄캄하게 가두는 암흑에 절망하기보다 그 어둠을 이해할 수 있기를. 이해의 끝에 칠흑 같은 밤이 품고 있는 별들이 꺼지지 않는 빛이 되어 내 세상에 새겨질지도 모르니.


  







 아직 잠들어 있는 골목길 모퉁이를 몇 번 돌아 닿은 마을 끄트머리. 저 멀리 새벽의 푸른 장막을 두른 생 미셸 데귈레 성당이 보였다. 그새 많이 옅어진 어둠 너머로 하나둘 숨어든 별들을 대신해 불을 밝힌 창문과 가로등. 그로 인해 보석을 뿌린 듯 빛나는 마을.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하늘의 반짝임이 지상으로 옮겨 새겨지는 조용한 장관을 두 눈에 한없이 담았다.

 먼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흘러갔다. 눈으로 따라가니 강 너머 옆 마을 Espaly-Saint-Marcel에 시선이 향했다. 르퓌에 세 번째로 왔을 때 가려고 아껴둔 작은 마을 가장 꼭대기에 아기 예수님을 안아 든 요셉 성인상이 희고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 발치 아래서 이 산책의 끝을 맞이해야지.

 생미셸 데귈레 성당을 지나쳐 구시가지를 벗어날 때 주위의 모든 가로등이 꺼졌다. 누군가 숨을 불어서 케이크 촛불을 끄듯이.

  새벽이 지고 아침이 시작된 순간, 마을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했다.











 길을 알지 못해도 지도는 필요 없었다. 어디서나 보이는 요셉 성인을 바라보며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듯 그저 걷기만 하면 되었기에. 맑은 강 위를 가로지르는 오랜 돌다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깨어나기 시작하는 고요한 마을, 시린 하늘에 떠가는 분홍 구름. 아직 길을 떠나기도 전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또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홀한 시간을 가로질러 Espaly-Saint-Marcel에 닿았다.












 어린 메시아의 수호자는 마을 꼭대기 성 요셉 성당에서 Espaly-Saint-Marcel 뿐 아니라 들판 너머 르퓌까지 굽어보고 있었다.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킨 그 사랑을,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진 않았어도 기적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요셉 성인의 생애가 이토록 마음 시리게 실감 나는 까닭은 때마침 그날이 성 요셉 축일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먼 길 떠나기 하루 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묵묵한 수호가 얼마나 어렵고 커다란 사랑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나이가 되었는지도.

 








 시간이 일러 요셉상에 이르는 문과 성당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한 발자국 거리에서 그림자 안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나도 그 팔에 안긴 듯 평안했다. 길을 걷다가 아무 때나 돌아보아도 늘 이 자리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 줄 수호자를 얻은 듯 든든했다.


  








  다시 돌아온 르퓌에는 분주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대성당에서도 한 수녀님이 잰걸음으로 성전을 오가며 오늘 많은 걸음들이 머물고 스쳐갈 자리를 정성스레 매만졌다.

 "봉쥬르! 음...크헤...덴...셜?"

 '안녕하세요, 수녀님. 순례자 여권 하나만 살 수 있을까요?'라는 말은 어설프고 우물쭈물한 프랑스어로 변환되었다. 수녀님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겨있는 성물방 문을 열고서 이리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갖가지 성물과 기념품이 진열된 작은 방 한 구석에는 조가비 껍데기가 바구니 가득 들어있었다.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성 야고보. 그 시신이 바다 건너 스페인 피스테라로 올 때 수많은 조가비가 배를 보호했다는 전설로 인해 조가비는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의 이정표이자, 그 길을 걷는 이들이 배낭에 달아 순례자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되었다.

 '하나에 2유로'라는 종이가 붙은 바구니에 쌓여있는 색색의 조가비들 사이로 가장자리가 산호색으로 물든 하얀 조가비가 눈에 띄었다.








 

 


 내가 조가비 바구니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열심히 서랍들을 열어보시던 수녀님이 순례자 여권을 찾아 건넸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저는 성물방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그냥 가지세요.'

 '그냥 받아도 될지.......'

 '괜찮아요. 직원이 10시에 출근하니 다른 것이 필요하면 그 이후에 다시 오세요.'

 친절한 수녀님과 이 모든 대화를 손짓과 표정만으로 나누고 공짜로 얻은 순례자 여권을 소중히 들고 성물방을 나왔다.

 다시 올 때까지 산호색 조가비가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긴 하품이 흘러나왔다.


 








 방에 돌아와 든 짧은 단잠에서 깨자마자 배낭의 모든 짐을 꺼내 침대 위에 줄 세웠다. 누가누가 제일 쓸모없이 내 어깨에 돌덩이가 되어 업혀있는가. 아무리 살펴봐도 뭐 하난 필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침대에 줄 서 있는 것들은 몽땅 다 생필품이다!

 늘어놓은 짐을 다시 배낭에 꼭꼭 눌러 넣었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어깨를 파고드는 무게도 익숙해지겠지.

  








 미련과도 같은 짐들을 도로 담아놓고 대성당으로 달려갔다. 산호색 조가비는 얌전히 바구니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엽서와 안내책자가 꽂혀있는 책장에서 르퓌길의 절반 지점인 Cahors까지의 안내서인 미암 미암 도도 1권을 꺼내 들었다.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Cahors 이후의 여정을 도와줄 2권은 나중에 사기로 했다.

 르퓌에서 생장을 지나 피레네 넘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이르는 순례길이자, 트레킹 코스인 GR65이기도 한 르퓌길. 그 길의 명소와 숙소, 식당, 성당 미사 시간,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 길의 고도, 길가의 수돗가 정보까지 빼곡히 담은 Miam miam do do는 프랑스어로 냠냠 쿨쿨이라는 뜻이다.

 미암 미암 도도. 냠냠 쿨쿨. 먹고 자는 일.

 길 위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겠지.








 대성당은 작은 것 하나도 삼 년 전 그대로였다. 벽을 따라 산책을 하듯 한 바퀴 빙 돌아 검은 성모자상 앞에 섰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눈길이 갔다. 어디 하나라도 흠이 날까 망토에 폭 싸여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구세주는 엄마 품에 안긴 여느 아기와 다름없었다.

 떠올려보면 르퓌를 상징하는 예수님은 모두 아기의 모습이다. 코르네유 산의 아기 예수는 성모님에게, 옆 마을 성 요셉 성당의 아기 예수는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에게 안겨있다.

 엄마 품 속 작고 연약한 아기 예수 앞에서 처음으로 나의 순례길을 위한 기도를 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도 그 품 안에 보호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대성당의 긴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르퓌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마다 아기 예수님이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여기는 순례길의 출발지. 진리와 보호를 청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대성당 계단과 이어진 경사길을 내려가다가 길 따라 늘어선 오래된 가게 중, 아치형 창문에 레이스를 떠서 만든 소박한 물건들을 걸어놓은 가게 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부터 한 달이 넘도록 돌덩이 같은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하는데, 희고 깨끗한 레이스에 마음이 머무니 이게 무슨 욕심이람.

 르퓌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들과 구시가지 말고도 두 가지 명물이 더 있는데, 양질로 재배되는 렌틸콩과 도시의 부흥과 쇠락의 역사를 함께 하며 굳건히 전통을 지킨 수공예 레이스 산업이 그것이다. 그동안 르퓌에 세 번을 오면서도 한 번도 렌틸콩 요리를 맛보거나 제대로 레이스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 렌틸콩은 다시 르퓌에 오기 위한 미련으로 남겨두고, 레이스 가게 문을 열었다.








 대를 이어 레이스 가게를 물려받았을 주인은 큰돈을 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구경꾼을 위해서도 손수 레이스를 짜보였다. 거창한 기구 없이 무릎에 쿠션 하나 올려놓고서, 왼손으로는 실이 감긴 수십 개의 추를 빠르게 교차하며 오른손으로는 실이 지나간 자리에 핀을 꽂아 모양을 만들었다. 왼손과 오른손의 거침없는 협주로 단아한 꽃무늬 레이스가 음표처럼 장인의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손수건, 인형, 양산, 모자, 커튼... 레이스로 만들 수 있는 건 다 진열되어 있는 가게에서 엄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은사 미사보 앞을 서성이다가, 가장 저렴한 조가비 모양 레이스만 하나 골랐다.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사기엔 훌쩍 비싸고, 배낭 속에 망가지지 않게 넣어 다닐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날 위한 기념품만 사서 나오는 길,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와서 꼭 이 미사보를 엄마에게 사다 줘야지.

 르퓌는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미암 미암 도도와 조가비, 자수 레이스가 든 봉지를 흔들면서 정오의 햇살이 스민 거리를 걸었다. 사놓고 발만 한 번 끼워본 새 등산화가 어색했다. 등산화는 자주 신어서 길이 들어야 많이 걸어도 말썽이 안 난다는데... 단 하루만큼이라도 길이 들어서 먼 길 걷는 내 어설픈 걸음을 잘 지켜주길, 막 세상에 첫 발을 디딘 등산화에 뻔뻔한 마음도 먹어보았다.

 자꾸 생각을 비집고 밀려오려는 그늘에 볕을 쬐듯 르퓌의 양지를 거닐었다. 크고 작은 광장들, 빨래방이 있는 골목, 가장자리에 들꽃이 잔잔히 핀 공터, 고니가 노니는 신시가지 공원, 그리고 야고보 호텔 앞 벤치.

 호텔 로비 유리창 너머로 3년 만에 보는 주인아저씨가 얼핏 보였다. 이번에도 쑥스러워 멀찍이서 안부를 확인하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눈꺼풀에 내려앉는 햇살 때문에 이른 낮부터 노곤하게 눈이 감겼다. 기지개를 켜며 벤치에서 일어나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르퓌에 와서 비껴갈 수 없는 오래된 돌다리 너머 작은 마을. 강가에 앉아 발치에 너울대는 풀잎들처럼 나를 둘러싼 풍경과 바람, 햇살에 생각과 마음을 모두 의탁했다. 뿌리내린 자리와 바람과 비와 햇살 외에 더 바라는 게 없는 풀과 나무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아주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느껴지는 충만.

 비록 동네 앞산 한 번 오르지 않고 무턱대고 떠나왔지만 순례자가 되기 하루 전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풀잎의 마음을 배웠다. 한국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섬주섬 챙길 때, 마트 등산 코너에서 가격을 보고 그냥 내려놓은 비싼 등산스틱보다 훨씬 더 든든한 걸 갖춘 기분이었다.

 올 때마다 작은 평화를 안겨주는 이 자리에 또다시 약속 하나를 새겨 넣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바로 여기, 르퓌가 순례의 종착지가 될 거야. 스위스에서부터든, 파리에서부터든, 어쩌면 산티아고가 출발지가 되어 거꾸로 되짚어 올 수도 있겠지. 어디서 떠나오든 르퓌에 긴 걸음의 여장을 풀고  골목과 지붕과 성당과 강물과 햇살과 바람을 담요 삼아 머리 끝까지 덮고 오래오래 쉬어갈 테야.









 U-마트에서 오늘 마지막 끼니인 샐러드와 순례 첫날의 비상식량으로 빵도 두어 개 사서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왔을 때는 나른한 한낮. 커피가 너무나 필요한 시간이었다. 생 미셸 데귈레 성당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언덕 꼭대기 카페로 들어갔다. 자리는 할아버지 바텐더가 지키는 바에 쪼르륵 놓인 의자뿐인 아주 작은 카페. 나도 손에 든 봉지들을 바에 올려놓고 카페 한 잔을 시켰다.

 통유리로 햇빛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바에 나란히 앉은 세 손님과 할아버지가 두런두런 나누는 프랑스어는 자장가 같아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홀짝여도 이르게 찾아온 잠결에서 쉬이 깨어날 수 없었다.

 '탁!'







 





 꾸벅거리며 조가비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는 내 앞에 스트레이트 잔이 놓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양주를 반 정도 쪼르륵 따라주는 할아버지. 다른 손님들 앞에도 똑같은 술이 담긴 잔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할아버지도 자기 몫의 술을 따르고, 내게 마셔보라고 손짓했다.

 갑자기 한낮의 축배라니. 앨리스가 들어갔던 토끼굴에라도 빠진 걸까? 의아한 마음과 다르게 나는 할아버지 바텐더와 세 손님과 함께 술잔을 들고 '엉셩떼'를 외치고 , '나를 마셔요.'라고 적힌 유리병에 담긴 주스를 마신 앨리스처럼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지금 저기 올라가면 쉬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한 손님이 유리문 밖 생 미셸 데귈레 성당을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목구멍이 활활 타는 듯 화끈거렸지만 박수를 치며 웃는 할아버지와 손님들을 따라 크게 웃었다.  이렇게 소리 내 웃은 게 얼마만이지. 지난 몇 달 차곡차곡 나를 둘러싸던 어두운 막 하나가 스르륵 벗겨진 기분이었다.









 창밖 대성당 첨탑에 다시 불이 켜진 저녁. 씻어놓은 요거트 통에 자못 경건하게 물을 담아 작은 스케치북과 팔레트가 펼쳐진 책상에 올려두었다. 우울과 상심에 손이 묶여 선 하나 그리지 못한 지난 몇 달.

 나는 그 캄캄한 장막 밖으로 한 발 나아가 보기로 했다. 미약하고 불안한 한 걸음일지라도, 검은 밤 희미한 별빛을 따라 하염없이 헤매게 될지라도. 이 차가운 심연 속에 영영 잠겨있지는 않기로 했다.

 순례 전야. 무슨 그림을 그릴까.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선을 그었다. 종이 위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지붕, 열 맞춰 난 창문... 푸른 공기에 번져가는 햇살. 하루 전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본 풍경이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선 순례 전야. 빳빳하게 굳은 붓에 물을 적셨다.














<Association Grand Séminaire-Accueil chrétien Saint Georges>

주소: 4 rue Saint Georges, 43000 Le Puy-en-Velay
이메일: grandseminaire43@live.fr
전화: 04-71-05-98-86,  04-71-09-93-10
숙박: 1인 23.20€, 2인 42€, 3인 57€, 4인 72€ (조식 포함)
저녁식사 : 12€
빨래 : 9€
운영시기 : 일년 내내, 리셉션_14:30-21:30
(2018년 3월 기준)



전망 좋은 정갈한 이인실. 문고리에 열쇠를 넣고 두 번 돌려야 방문이 열리는데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다른 프랑스인 숙박객은 아주 잘 열더군요...?!
방에 세면대가 있지만 샤워와 화장실은 복도의 공용시설을 이용해야 합니다. 난방은 되지만 서늘한 편이고, 시트는 추가요금이 있으니 개인 침낭을 사용해야 합니다.
조식은 1층 다이닝룸에 차쳐져 있으니 각자 챙겨먹고 치우면 됩니다.
구시가지 중심에 있어 위치가 좋아요. 대성당도 무척 가깝습니다.
오랫동안 신학교 기숙사로 쓰였던 곳이라 종교적인 기운이 가득합니다. 복도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을 마주치면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규모가 커서 따로 저녁식사를 신청하지 않으면 다른 숙박객을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대신 어느 시간에나 조용해서 순례 전 마음을 고요히 사색하기에 좋은 숙소입니다.
앞으로 숙소 후기에 따로 별점을 매기지는 않겠습니다. 머물렀던 숙소에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기에는, 고단한 걸음 끝에 만난 도든 숙소가 낡음과 청결을 떠나 정말 따듯하고 좋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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