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듦을 보여주는 그녀
요즘 나는 미드 가십걸에 빠져있다. 이 미드의 주인공인 '세레나'는 미국에서도 부촌인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재벌가 출신에 얼굴도 몸매도 예쁜 10대 셀럽이다. 게다가 사교성까지 좋아 단연 인기가 많다.
하지만 주인공 세레나보다 나를 더 흥미롭게 하는 극중 캐릭터는 세레나의 모친 '릴리'다. 예쁘고 인기 많은 세레나의 태생이 모계로부터 이어진 유전자였던 걸까. 모친 릴리는 세레나 못지않게 미모가 아주 빼어난 과부다. 시즌 1편에서 릴리는 '바트'라는 갑부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시즌 후반부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바트는 그녀의 무려 네 번째 남편이다.
네 번의 결혼. 공식적으로 대중의 앞에서 부부라고 선언하는 과정을 네 번씩이나 반복하는 여자. 편협한 시각으론 그녀를 남성편력이 심한 여자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저런 로맨티스트도 참 흔치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는 헤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들어와 인연이 되는 모든 남자들에게 늘 마지막인 것처럼 올인한 것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참으로 멋지고 뜨거운 여자가 아닌가!
뿐만 아니다. 그녀의 나이는 쉰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다부진 몸매와 가지런한 옷차림과 자세, 억양을 유지한다. 그 모습은 나이 먹은 아줌마의 겉치레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단, 자기 자신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가까워 보였다. 드라마 속 릴리의 모습들은 '저 아줌마 참 멋있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했다. 그 나이가 되면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사는 것이 보편적 부모의 삶이라고 주변을 통해 배웠거늘, 저렇게 릴리처럼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딸 세레나를 끔찍이 아끼는 엄마이긴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러면서 여전히 릴리 자신이기도 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대중 앞에서 그게 몇 번째이건 자신의 사랑을 떳떳이 밝히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자식에게 하는 것만큼이나 내 일상, 내 외모, 내 품위를 아끼고 다지는 모습은 내가 알던 여느 중년 여성의 삶과는 달리 매우 신선했다.
겨우 30분짜리 18편의 드라마를 통해 본 40대 중반 아줌마의 모습이 이렇게 나를 자극할 수 있다니. 나이가 들면 꼭 저 여자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릴리처럼 늙고 싶다.
가십걸의 진짜 주인공은 아직 20대도 채 되지 못한 싱그러운 '세레나'이지만, 왠지 나는 그녀보다 주변인인 엄마 릴리에게 더 공감이 된다. 나는 이미 세레나의 나이를 벗어나 릴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겨우 20대 후반이 되었을 뿐이지만 나는 내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체력도 의식도 의지력도 이십 대 초반 당시의 튼튼했던 것들에 비해 모두 바닥을 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의 봄이 저물어간다는 슬픔이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이 듦을 늦추고자 늘 강박 속에 지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매사 열정적으로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을지 내가 진정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사실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십걸 덕에, 요즘은 릴리라는 캐릭터를 보고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다. 릴리처럼 늙는다면,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열심히 나를 가꾸고 사랑할 수 있다면. 나의 40대도 50대도 생각만큼 그리 나쁘지는 않겠구나, 행복할 수 있겠구나, 싶다.
앞으로 몇 번의 사랑이 찾아오든 몇 번의 시련이 찾아오든, 릴리가 20대의 불꽃같은 마음으로 매사를 대하듯, 나도 나이 들면 나이 드는 대로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든 순간을 맞이해주리라.
체력도 외모도 인생의 절정인 20대 초중반을 지나 이제 나이 드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는 스물아홉. 가십걸을 본 이후, 난 이제 릴리를 '나이 듦'의 본보기로 삼고 싶어졌다. 다가올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에도 열정을 잃지 말자. 행복하게 나이 듦을 받아들이자.
다음 시즌에서의 릴리는 어떻게 될까. 세레나보다 그녀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
2018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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