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y 09. 2019

영원한 사랑이 가능할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구요 ?


텔레비전에서 영화 <타이타닉>이 나오고 있다. 타이타닉은 정말 수도 없이 영화채널에서 재상영되어 지금껏 서른 번은 본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웰 메이드 재난영화인데다가 미모 전성기 시절의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멜로물이기까지 하니,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영화 속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는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설정으로 밝혀졌지만, 이 영화가 그저 순수히 재난 영화이기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신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이 영화에서 멜로라는 장르적 설정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침몰하는 배의 연인이라니. 이보다 더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이 어딨겠는가.     


<타이타닉>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뭉클한 장면이 하나 있다. 주인공 ‘잭’과 ‘로즈’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어 배 갑판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나. 로즈는 귀족 신분 탓에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삶을 잭에게 하소연 한다. 이에 잭은 로즈에게 여행을 하면서 낚시도 해보고 말도 타보라며 자유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잘 듣고 있던 로즈는 말 이야기에 “(말에 앉을 때)두 다릴 벌리고요?”라며 반문을 한다. 아마도 치렁한 드레스에 코르셋까지 입고 다니던 당시 귀족의 신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세인 듯한데, 잭은 아랑곳없이 “당연히 두 다릴 벌리고 남자처럼 타야죠!” 하며 웃는다. 이 대화 장면은 두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별 것 아닌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이후 둘은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었지만 알다시피 타이타닉호는 빙하와 충돌해 침몰한다. 귀족인 로즈는 먼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잭과 함께 있을 것을 택해, 결국 둘 다 얼음물에 빠지고, 잭은 저체온증으로 먼저 죽고 만다. 그들의 살아생전 러브스토리는 배에 승선하면서부터 침몰하기까지 고작 4일 남짓이었으나,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있다면 이런 걸까.      


세월이 흘러 다른 남자와 결혼해 손자까지 낳고 잘 살고 있었던 할머니 로즈는, 타이타닉호 발굴 작업 중 발견된 그림의 주인공으로 밝혀져, 발굴 관계자들로부터 초대를 받게 된다. 로즈는 당시 상황을 고증해주기 위해 발굴팀에게 가서는 바리바리 챙겨온 여러 소지품을 주욱 늘어놓는데, 뭉클하게도 그 중 하나가 바로 말에 올라탄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이다. 그 옛날의 연인 잭이 말한 것처럼 두 다릴 당당히 벌리고 말에 앉아 웃고 있는 젊은 로즈.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려 몇십 년을  살면서도 가슴 한편에서 지우지 못한 한 남자에 대한 고마움 그리움 그리고 사랑이, 그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겨있었다.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특히나 사랑에 있어 영원이란 더더욱 없다고 배워왔지만,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어떤 사람과 물리적으로 연애관계를 영원히 유지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인생을 바꾸고, 내 가치관을 물들이고, 오랜시간이 지나서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그게 영원한 사랑이 아닐까.  로즈할머니는 발굴팀에게 자신의 지난한 러브스토리 들려주고는, 그 날 밤 꿈을 꾼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평생의 가치관을 물들인 남자 잭 도슨과, 침몰하지 않는 타이타닉호에서, 승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결혼하는 꿈을. 사상자도 이별도 없는 꿈속의 타이타닉 호는 참으로 따뜻해 보였다.     


영화 <타이타닉>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침몰과 죽음이라는 물리적인 비극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로즈의 꿈에서는 배가 무사히 영국에 도착해, 그녀가 꿈꿨던 두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이 이어졌기를 바란다.







2019 일상의짧은글

ⓒ글쓰는우두미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