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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l 12. 2019

엄마의 마음으로

자꾸만 어지르는 남자, 그래도 예쁘다


결혼을 하기 전, 그러니까 처녀의 신분으로 엄마와 살 때의 나는 정리정돈을 못하는 여자애였다. 변명을 하자면 나의 엄마가 너무나도 깔끔한 분이셨으므로, 그래서 내가 여기저기 어지르고 다녀도 엄마가 매번 잘 치워주셨기 때문에 굳이 내가 치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나는 거의 매일 “빨래 여기저기 걸어놓지  말아라”, “전기장판 코드 왜 안 뽑고 갔느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좀 주워라”등의 말을 인사처럼 듣고 살았다. 친정 엄마의 눈에 나는 도통 정리라곤 모르는 지저분한 딸내미였을 것이고, 어딜 나가도 저렇게 어지를 게 뻔해 크게 걱정이 되셨을 거다.


그런데 신랑과 함께 살게 되면서, 아니 정확히는 신혼집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어쩌면 정리정돈에 능한 깔끔이 엄마의 피가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발현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가전과 가구, 자질구레한 소품까지도 내 손으로 고르고 배치해서인지 나는 현재 신혼집이 더러워지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이 컵은 이 자리에, 미용티슈는 저 자리에 있어야만 마음이 편하다. 내 딴에는 완벽하게 정리해놓은 물건의 배열들이 흐트러지면 왠지 심기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이 정리정돈 심기를 건드리는 작자가 있으니 그건 바로 같이 살고 있는 신랑이다. 물론, 신랑은 남자치고 매우 깔끔한 성격에 평균이상의 위생관념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지금도 더럽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신랑은 아주 자주,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는다. 내가 일렬종대로 착착 옷을 걸어놓아도 자꾸만 입고나갔던 옷을 이상한데 걸쳐놓는다든지, 자꾸만 손톱깎이를 꺼내서 거실테이블에 올려둔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마우스와 손톱깎이와 미용티슈와 옷가지 등등이 제자리를 잃고 천지사방에 너줄너줄 흩어져있는 걸 발견하면, 나는 “나의 어여쁜 신혼집이 개판이 됐구나”라고 생각해 다시 물건들을 속속 원위치로 복귀시켜놓기 바쁘다. 그럴 때면 문득, 처녀시절 집을 개판으로 만드는 장본인이었던 딸을 키워낸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엄마. 평생을 잔소리하셨지만 그럼에도 나를 예뻐하고, 내 머리카락을 대신 줍고, 내 빨래를 세탁기에 손수 가져다놓으셨던 나의 엄마. 나는 엄마가 꾸민 어여쁜 공간을 아무생각 없이 그렇게 어지르고, 전기장판은 출근하면서 백번은 넘게 안 뽑고 다녔더랬다. 어지르는 사람은 왜 늘, 치우는 사람의 노고를 알지 못하는 걸까. 나는 이제 그런 엄마로부터 떨어져나와 신랑의 엄마역할을 하며, 그 때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아가는 중이다. 일종의 업보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여기 나의 신혼집은, 오늘도 신랑이 꺼내놓고 간 손톱깎이와,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미용티슈, 도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촌스런 플라스틱 부채와, 엉뚱한 곳에 걸쳐진 빨랫감으로 가득하다. 이 모두가 처녀시절 내 모습을 닮은 신랑의 흔적들이다. 나는 엄마가 과거 내게 그랬던 것처럼 신랑에게 제발 물건 좀 제자리에 놓으라고 잔소리를 하며 신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나를 무지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그러하다. 잘도 어지르지만 여전히 내 눈에 사랑스러운 신랑. 그가 흩뜨리고 간 것들을 매번 줍고 치우면서도 함께 부비고 살고 싶은 이 마음이, 엄마가 내게 평생 느껴왔을 가족의 사랑일까.











2019 연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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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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