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피곤함

혼자 있고 싶어지는 그 순간


같이 일하는 동생과 저녁시간이 겹쳤다. 교대근무로 돌아가는 백화점 데스크에서는 혼자 식사를 하게 될 때도, 동료와 식사 시간이 겹칠 때도 있었다. 맛없기로 정평이 난 구내식당에서는 죽어도 먹기가 싫어, 고민을 하다가 따로 사 먹겠다고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OO아, 나 저녁 따로 사 먹을게~」

「네」


단답의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나랑 같이 먹길 기대했을까, 아님 그다지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거절의 카톡을 받아 빈정이 상했을까. 맘이 불편했다.


오늘은 너무 힘든 날이었다. 실수를 연발했고, 사무실로부터 실수를 심하게 지적받아 멘탈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고도 당연히 그날의 업무를 해치워야 했기에 꾸역꾸역 일을 해냈다. 마음이 어지럽게 뒤엉킨 탓일까, 내게 주어진 짧은 저녁시간만큼이라도 내뜻대로 쓰고 싶었다.



혼자이고 싶은 순간이 더러 존재한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동료와 함께 밥을 먹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날이 있다. 쉴 새 없이 고객을 상대하고 떠들어댔다. 하루 종일 사람에 치였다. 그래서 백화점을 다니면서는 오롯이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참 많았다. 특히나 평소보다 더 어지럽혀진 오늘 같은 날엔.


푸드코트에서 좋아하는 낙지 돌솥밥을 시켜 혼자 자리에 앉았다. 고객들 사이를 비집고 처연히 홀로 앉아 비빔밥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생각했다. 원래라면 같이 저녁을 먹었을 동생은 어디서 혼자 뭘 먹고 있을까. 내가 상대를 외롭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외로움을 자처할까, 그렇다면 나는 외로움이 편한 사람인가.


한 동료 언니는 그랬다. 자신은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서는 밥을 절대 못 먹는다며 꼭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한다고. 식당에서 '혼밥(혼자서 밥 먹기)' 같은 건 꿈도 꿔본 적 없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혼자 먹는 것이 더 편했다. 가족이나 몇 년 이상 알고 지낸 막역한 친구가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더구나 이렇게 기분이 꾸깃꾸깃한 날에는, 옆에 앉은 동료의 기분을 살피면서까지 밥을 먹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함께하는 불편함이, 때로는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잠식할 때가 많았기에.


고추장을 듬뿍 퍼 돌솥 안에 넣고 마구 밥을 비빈다. 힘들 땐 맵고 뜨거운 게 약이다. 빨갛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알을 입으로 밀어 넣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이 순간, 아무도 나의 거북이같이 느린 밥 먹는 속도를 재촉하지도, 눈치 주지도 않는다. 무슨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대화도 공감도 없지만 편안한 이 시간. 나는 기나긴 하루 중 모처럼만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백화점에서의 하루는 인간관계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매우 일차적이지만 어쨌든 '관계'임이 분명한 고객들과의 관계,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어쩔 땐 고객과의 관계가 피곤할 때가 있지만, 어쩔 땐 동료와의 관계도 못지않게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면도 있는 만큼,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오랜 친구가 아니기에, 나는 아주 세심하게 동료와의 관계를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한다. 무엇이라도 말하며 정적을 메꿔나가야 한다. 내 실수로 그녀가 곤혹스럽진 않을지, 내가 느려서 답답해하진 않을지, 그렇다면 난 무엇으로 그녀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억지로 커피를 선뜻 사기도, 맘에도 없는 칭찬세례를 하기도, 말할 필요 없는 자질구레하고 사적인 에피소드들을 과장해서 늘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노력들이 수반되는 하나의 인간관계였다.


하지만 오늘은 손톱만큼의 노력도 해 볼 기운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녀보다 후임이니 당연히 더 눈치를 보고 관계에 노력하는 위치였지만 정말로 그런 일말의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무릅쓰고 혼자 있겠다고 카톡을 보내고, 기어이 혼자만의 여유로운 식사를 마쳤던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의 '관계'로부터의 자유는 생각보다 완전히 성사되지 못한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다시 근무지로 돌아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아까 그 동료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살펴보게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심 걱정한 것과는 달리 동료는 쿨하게 이해한 것 같았다. 혼자 있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우리는 2인 1조로 다시 근무를 하며 호흡을 이어나갔고, 조금의 여유를 가진 덕일까. 나는 아까 전보다는 다시 활력을 되찾아 일을 할 수 있었다.




저녁 아홉 시 반. 퇴근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눈빛만 보아도 나를 관통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나를 맞이했다. 나의 남편이다. 직장에서처럼 세심하게 몇 분 단위로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는 수고를 굳이 안 해도 되는,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사람.


"아, 나 오늘 너무 피곤했어. 진짜 실수 연발에다가.. (중얼중얼) 막 혼나고... (찡얼찡얼)"


남편은 모른다. 직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다고 내가 아무리 설명한들, 그 상황을 함께한 동료만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제일 잘 안다. 아무리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도, 나의 더럽혀진 마음을 어떻게 하면 달래줄 수 있는지는. 그건 내가 겪은 상황을 제일 잘 아는 동료는 정작 내게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생강차를 타 주었다. 진하게 우려진 생강차를 마시며 나는 그와 함께 티브이를 본다. 뼛속까지 관계의 편안함이 밀려든다.


오늘 밤, 나는 무거운 하루를 이렇게 위로받는다. 내 회사 일을 가장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편히 기대면서.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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