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로봇이 아닌데

불친절에도 친절한 응대를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손님과 나눈 대화였었나. 아르바이트생은 계산을 마친 뒤 손님에게 봉투가 필요하냐 물었고, 물론 이 질문에는 아무런 악의도 없었다. 그런데 손님이 받아친 대답은 뜻하지 않게 날카로웠다.


"그럼 그냥 들고 가요?"


내가 일하는 백화점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악의 없이 물은 질문에, 혹은 단지 규정대로 읊은 말에, 의도를 왜곡하며 분노하는 고객들. 왜 어째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어느 부분에서 대체 화가 나는 건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물론 그런 고객들마저 친절과 배려로 품어야 하는 것이 서비스 노동자의 비애라지만, 나 역시 인간인지라 한 번씩 속이 뒤틀린다. 뒤집어진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 여자 고객이 다가와 나와 함께 근무하던 동료 언니에게 "오늘 8시까지 (영업)해요?"라고 물었다. 백화점은 평소 주중에는 8시까지 운영하지만, 그 날은 설 명절 특수기간이었기에 30분씩 연장 운영을 하고 있었다. 동료 언니는 "오늘부터 설날 전까지는 8시 30분까지세요"라고 답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일반적으로 이 안내에 딸려 나올법한 대답은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또는 "알겠습니다"일 것이다. 그런데 고객은 별안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왜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앞뒤 수식어도 없이 그냥 왜냔다. 황당했다.


돌아올 거라 기대한 대답에서 한참 벗어나는 고객을 대하면 우리도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다. 당황한 마음을 애써 뒤로하고 연장영업의 이유를 극진히 설명하자, 그 고객은 감사하단 말 한마디 없이 훽 돌아서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용건만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듯 건조하고 뻣뻣하던 그 뒷모습. 동료 언니와 난 같은 기분을 느꼈는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배려 없는 고객들 덕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멘탈이 와장창창. (사진출처:핀터레스트)


하루에 2백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가는 백화점의 데스크.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하게 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이렇게 예상에서 벗어나는 태도의 사람들을 목도하게 될 때가 많다. 감사합니다 또는 저 죄송한데요, 라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익히지 못한 사람들을 거의 매일같이 접한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말을 뱉을 때 상대가 느낄 당혹감이랄지, 자신의 질문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이랄지, 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직원을 대한다.


나로선 참 신기했다. 물론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최상의 서비스를 베푸는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건조하게 굴거나 틱틱거릴 필요가 있는 걸까. 가는 말과 오는 말이 모두 고우면 서로 얼마나 기분이 좋으랴.



이곳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고객을 본의 아니게 관찰해본 결과, 나는 소비자(고객)를 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직원을 대할 때 직원이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라고 여기고 존중을 하는 부류, 그리고 직원은 자신보다 아래에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든 그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류.


전자의 고객들의 경우에는 항상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시작하며, 서비스를 받는 것에 감사함을 표현하곤 한다. 이는 굳이 적극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말투라던지 표정을 통해 충분히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뭔가를 물을 때에도 "저 죄송한데요"라며 시작을 하거나 "뭐 좀 어쭤봐도 되나요?"라고 하는 경우다. 서비스를 받으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서비스를 전적으로 받는 위치에 있음에도, 직원을 동일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상처 받지 않게 배려를 하는 사람들. 그런 부류의 사람을 고객으로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극' 친절 모드가 되곤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단 한 번의 응대만으로도 하루의 기분을 잡치게 할 만큼 기분이 더럽다. 자신은 서비스를 받으러 온 귀한 사람이며, 직원은 자신의 아래 발치에 있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조금만 자신이 극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곤 했다. 일단 반말이 기본이다. "그걸 왜 물어보는데?", "그럼 여기서 사지 어디서 사?", "안되긴 뭐가 안돼, 저번엔 왜 됐는데?", "윗사람 나오라고 해" 등등의 태도가 이에 해당된다. 그들에겐 규정상의 이유 같은 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하다. 한낱 미천한 직원은 고귀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절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리하여 최종 목적지인 윗사람을 부르고 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열댓 번은 들어야, 그들은 자신의 고귀함을 확인받고 그제야 화가 풀려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은 고객이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기에, 참다못한 내가 ‘규정 때문에 그렇다’고 강하게 제압을 하다가 결국 백화점 공식 컴플레인으로까지 이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관리자는 당시의 상황을 내게 들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듬지씨는 FM대로 한 거예요. 근데 사실 초반에 그냥 죄송하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안 커졌죠. 이 고객이 원하는 건 그냥 단 한 마디. sorry(죄송합니다)니까."


살면서 그런 푸대접을 처음 받아본 나는 분해서 눈물이 흘렀지만, 사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서비스인으로서 그런 무대뽀 고객을 가장 빨리 식히는 방법은, 관리자의 말처럼 그냥 재빨리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라는 걸. 단지 머리로만 알았지 행동으로 학습되지 못한 죄였다. 관리자는 덧붙여 설명했다. "강남 부자들이 제일 많이 오는 S백화점 있죠? 거기 얼마나 진상이 많이 오겠어요. 그런데 거기 애들은 컴플레인 해결 능력 1등이야. 왜? 그냥 1초 만에 죄송하다고 머리 조아리니까."


서비스. 그 망할 놈의 서비스. 고객이 왕이 되다 못해 하느님이 되려는 서비스의 공간 백화점. 나는 아직 진정한 서비스인이 되기엔 그릇이 너무나도 작은 걸까. 그냥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영혼 없이 외칠 수 있는 로봇이 되기엔 아직 마음이 너무 무르고 무른 나였다.



백화점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아직도 사실 크게 단련되지는 못했다. 무례하고 무서운 고객들을 만나면 아직도 움찔움찔 거리며, 금방 기분이 우중충해지고 만다. 그나마 이런 일을 빨리 털어내는 유일한 방법으로 익힌 게 있다면 그저, "아 정말 못 배운 사람들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다니. 참 가엾다."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 지위에 상관없이, 경제력에 상관없이, 조금의 친절을 구비하면 좀 더 세상이 밝고 유연해진다는 걸 그들은 못 배웠으니 얼마나 가여운가. 그러나 그들보다 한없이 돈 없고 빽 없는 나는 정작 그걸 알고 있으니 그건 또 얼마나 다행인가. '저런 일자무식 부자보단 내가 나아.' 그렇게 생각하면 좀 나아지곤 했다. 팔에 카르티에를 두르고 어깨에 에르메스 백을 매고 있다한들, 그렇게나 마음이 가난하다면 정말로 그런 사람들은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



콜센터에 전화를 건 고객이 상담원에게 3회 이상 폭언을 할 경우,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법이 생겼다고 한다. 콜센터 출신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같은 서비스직인데 분명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직 백화점에는 그런 규정이 생기려면 멀었을까. 내가 백화점에서 얼마나 더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에도 직원들에 대한 보호법이 조금이라도 마련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며, 오는 말이 고와야 진심 어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아주 보통의 사람이란 걸, 온 세상 고객들이 알아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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