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모두를 위한 연기.
여느 날처럼 하루 종일 고객들에 치여 보낸 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백화점 내에 있는 서점으로 내려가 킨포크 잡지와 에세이 신간 한 권을 샀다.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을 단순히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출간을 한 적이 있는 작가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니 만큼 책 읽는 것도 책을 사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나의 직장인 이 곳 백화점에서는 비밀이다. 딱히 비밀로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공개적으로 밝힐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태 지내왔다.
어떤 특정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간에 그 조직에 맞는 일정한 색깔을 내듯, 나 역시 백화점에 취직을 한 이상 이곳에 걸맞는 어떤 색깔을 흉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조직의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곳과는 정 반대의 색깔일지도 모를 나의 사적인 영역을 오롯이 보호받기 위해. 한마디로 특이한 개체로 분류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책을 냈는데 왜 여기서 일을 해?", "저 언니 작가래. 근데 망했나 봐" 와 같은 말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었을까.
나름의 위장에 성공을 했을지, 아직 여기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란 걸 아는 사람은 없다. 제일 친한 동료 언니조차도 말이다. 나는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맞게, 혹은 31살 기혼여성의 보편적 이미지에 맞게 적당한 연기를 펼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 :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비교적 고정된 견해와 사고.
이 곳에서의 내 캐릭터는 가정의 행복과 평안이 최대 관심사인 수더분한 언니다.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저녁을 지으며, 매일 남편의 차를 타고 귀가하는. 향후 2세 계획이 있지만 지금은 주택대출금을 갚아야 해서 일단 백화점에 취직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그런 언니. 이것이 내가 이 곳에서 어필하는 나의 이미지다. 물론 모두 분명한 사실들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일 뿐.
직장에서 밝히지 못한, 아니 밝힐 이유가 없었던 또 다른 내 자아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추가된다.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을 가졌고, 생계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홀로 글을 쓰며, 사실은 가정의 평안만큼이나 내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이 큰 사람이라는 것. 이따금씩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결이 너무나 다름을 느껴 힘이 들지만, 티 내지 않고 그들과 조화롭게 지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의도치 않게 이런 이중플레이에 적응한지도 어언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직장에서의 나'와 '사적인 나'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은 현명한 일일까.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 판단해서 취해 온 행동이거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려 당황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오늘 같은 경우.
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고,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사들여 책꽂이에 꽂아 놓는 괴상한 취미가 있는데, 직장에서는 이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쭉 지켜본 결과, 같이 일하는 동생들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책 읽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내 취향을 공개했다간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은 구매한 책들을 불투명한 종이봉투에 잘 담아놓은 덕분에 "언니 왜 책 많이 읽는 척해요?" 하는 놀림을, 다행히도 피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른다. 왜 활자들이 나를 위로하는지. 나도 동생들처럼 연예뉴스나 화장품이 최대 관심사였다면 훨씬 편했을까. 하지만 얘들아 난 노력하고 있단다. 너희들과 어울리기 위해 연예뉴스도 챙겨보고, 불필요한 화장품도 같이 사러 가고, 가끔은 잘 쓰지도 않는 욕을 섞어 쓰며 내 가짜 자아를 소화하고 있지. 왜 이런 연기를 하느냐고? 진짜 나를 어필하는 순간 너희들이 나를 고리타분한 사람이라고 정의할까 봐 무서워서 그런가 봐. 책을 많이 읽는 '척'이 아니라 진짜 많이 읽는다고 굳이 너희에게 해명하는 것보다, 그냥 책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 훨씬 서로에게 편할 테니까. 사회(직장)에서 만난 친구 사이가 다 그런 거 아니겠니.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적당한 연기가 직장생활에 필수적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비슷한 결을 가진 척, 관심사가 비슷한 척, 식습관이 닮은 척 말이다. 어쩌면 동료 몰래 숨어서 책을 보는 나처럼, 동료들도 내게 굳이 밝히지 않는 진짜 자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올드팝을 좋아한다던지, 사실은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던지. 그게 무엇이든 어떤 색깔이든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나처럼 연기를 펼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은 참 신기한 곳이 아닌가 싶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애써 호흡을 맞추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곳. 밖에서라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다른 취향의 사람들이 그렇게 부대끼며 지내는 유일한 곳이니까. 이 특수한 정글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도태되지 않으려면 연기는 언제까지고 지속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기 위한 이유로 말이다.
언젠가 나의 동료들에게 진짜 나를 소개하는 기회가 올 수도 있을까. 사실 가장 친한 동료 언니에게는 언젠가 꼭 말하고 싶기는 한데 말이다. 언니 난 정말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해요,라고. 하지만 아직 말할 수 없는 건, 이 곳의 사람들은 수틀리면 의절해버릴 수 있는 류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맞든 맞지 않든 늘 일로써 맞닿아있어야 하니까. 나는 내가 일하는 동안은 그들에게 무난한 직원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니까.
어쩌면 그들에게 내 진짜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날이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직장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닌가. 이런 사실에 슬퍼할 것도 미련을 둘 것도 없는, 그런 곳.
나는 오늘도 31세의 기혼 여성으로서, 주택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하며 평범하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자아의 연기를 훌륭히 마쳤다. 처신을 잘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도 동료들과 큰 트러블 없이 살아냈음에 감사할 뿐이다. 어서 집으로 가, 내 가짜 자아를 벗어던지고 가방 속에 숨겨놓은 책들을 꺼내 어여쁜 내 책꽂이에 진열하고 싶다. 무엇보다 두 개의 자아를 소화하느라 고달팠던 나를, 책으로 힐링해주고 싶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