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내 안에 꿈틀대던 욕구
나는 근 10년간 쭉 일을 해왔다. A회사에서 B회사로, B회사에서 C회사로, 회사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내가 하는 일은 같았다. 그리고 그 일에 임하는 나의 자세도 늘 똑같았다. '받은 만큼만 일한다', '생계를 위해 일한다'.
어떤 직업은 빛나는 정체성을 주는 동시에 그 자체가 내 자부심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십 년간 생계를 위해 해왔던 일들은 그런 강렬한 열망과는 참 거리가 멀었다. 그저 워라밸과 월급만이 목적인 일들이었다. 그래서일지 나는 당연히 한 곳에 뿌리내리려는 생각도, 그곳에서 인정받아 무엇이 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고, 나는 오로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십 년을 살아왔기에, 나는 내 안에 출세나 승진욕 같은 건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그게 내 착각이었던 걸까.
별생각 없이 일하고 있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팀장은 데스크 인원들을 모아놓고 "너희들 중 한 명이 사무실로 내려와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은, 데스크가 고객을 통해 접수를 받으면 그것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업무로, 뭔가 데스크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개념의 곳이었다. 그런 만큼 책임감과 기민함을 요하는 곳이기도 했다. 대충 일하고 내 몫이나 받아가자는 주의로 살아온 내 성격에, 당연히 욕심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나는 기왕이면 책임감이 덜하고, 간섭이 덜하며, 받아가는 만큼만 일해도 아무렇지 않은 직종에 종사하고 싶었다. (회사가 정말 싫어할 타입이란 거 안다.)
그런데 어느 날 팀장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나를 붙잡고 은밀하게 말했다. 우리는 너로 결정했다고. 네가 사무실로 내려와야 한다고. 당황스러웠다. 무슨 비밀공작 같기도 했고,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스카우트 제의인가 싶어 살짝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 업무는, 일이 터지면 언제든 자발적으로 남아 일을 처리해야 하고, 때때로 연차도 반납하고 출근해야 하며, 사무실에 앉아 수시로 이것저것을 체크하며 하루 종일 긴장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두 시간 일하고 한 시간 쉬며 교대로 돌아가는 데스크의 업무에 비해 노동 강도는 곱절인 데다가 이 시대에 걸맞지 않게 희생정신까지 겸해야 하는 곳. 이런 업무가 좋을 리가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 제안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출세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다른 후보군들을 제치고 내가 발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은근한 승리감 같은 것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그래서 나는 덜컥 그 제안을 승낙해버리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내 진짜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직장의 장점이었는데. 그 모든 걸 다 포기해야 하는 피곤한 일을, 내가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효율을 따져보기 전에 이미 나는 뭔가에 도취해 버린 상태였다. "우린 너로 결정했어."라는 그 한 마디 때문이었나 보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달콤한 것이었다는 걸,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느껴본 것이다.
내가 제일 반듯해 보여서 였을까, 내가 제일 성격이 좋아보여서 였을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그들의 기준에 부합했다는 그 한 가지 기쁨만이 나를 압도했다. 이후에 벌어질 일 같은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