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관계에 힘든 사람들
때로, 살아낸다는 것의 무게가 별안간 코끼리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나의 경우 대부분 사람의 문제가 얽혀 있을 때 그렇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큰 위기가 닥쳐도, 곁에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만 가득하다면 사실 그럭저럭 나는 넘겨낼 수 있었다. 나는 지극히 관계지향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은 후로는 웬일로 단 한 차례도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없다 싶었다. 하지만 아뿔싸. 사무실로의 발탁 사건이 빠그라지면서 동시에 관계 스트레스까지 올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차례 내 자존감을 짓뭉개고 간 사건의 배후에는 내게 말도 걸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데. 그걸 간과한 것이다. 역시 그럴 리가 없지. 무난하게 지나갈 리가 없지.
사무실에서 쫓겨났다는 쪽팔림과 좌절감은 그러려니 했다. 어찌어찌 멘탈을 부여잡아 ‘확 관둬버릴까’ 하는 충동도 잘 제어했고, 생계라는 순수한 목적만을 마음에 품은 채 일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무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아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매니저였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여자아이. 동시에 내가 사무실 사람 중 가장 좋아했던 존재. 그녀는 매니저라는 직함을 단 만큼이나 평소 무게가 있고 사리가 반듯한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스물여덟 살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더러 있었다. 일단 그녀는 기분이 나빠지면 말을 안 한다. 사私가 공公이 되는 것이다.
매니저는, 내가 사무실을 짤린 직후부터 내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니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듬지씨 사실은요" 하며 그날의 후일담을 넌지시 얘기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을 포함한 사무실 사람들이 내게 뭔가 기분 나빴을 수 있는 것처럼, 사무실로부터 하루아침에 팽 당한 나의 기분도 거지같다는 걸, 다만 눈빛으로라도 헤아려주길 바랬는데. '언니 힘드시죠, 알아요' 라는 그 눈빛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내게 찬바람이 쌩쌩하게 굴었다.
아아. 나는 정말로 너무나 지쳐버렸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잡친 기분을 풀고 누그러뜨리는 것에. 그렇게 좋은 사람인 양 '내가 먼저' 하면 할수록, 상대에게는 점점 만만한 존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성질 한 번 낼 수가 없는 걸까.
어느 날 아침 조회 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번갈아 쳐다보면서 내 쪽으로는 눈빛 한 번을 주지 않는 매니저의 쌀쌀한 태도에, 나는 그만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매니저는 조회를 끝내고 쏜살같이 내려갔으므로 내 눈물을 알 턱이 없지만.
직장에서 우는 것은 이제 치기 어린 일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웬만하면 울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번 터진 눈물은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왔고, 동료 언니에게 삼십 분이 넘도록 마구 하소연을 한 후에야 눈물을 그칠 수가 있었다.
나는 이토록 타고난 관계지향형 인간. 이런 성격이 일을 그르칠 때가 많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스스로 절제하는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타고난 성향이 완전히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성질대로라면 이런 인간관계를 버틸 수 없어 관둬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사람 때문에 관두는 어리석은 일만큼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러니 방법은 한 가지, 버텨야만 했다. 나를 꼴사나워하는 사무실 사람들의 저 냉랭한 태도를, 사무실에 간다고 으스댔다가 짤려서 돌아온 나를 비웃을 동료들의 속마음을, 어디에도 기댈 데 없어 보이는 곳에서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살아내야 하는 이 상황을. 이 모든 것이 관계지향형 인간에겐 참 버거운 것이더라.
일주일이 지나 2주 차로 넘어가는 시간,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나만을 제외하고 모두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척 살갑게 굴었다. 사무실에서 짤린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처럼 꿋꿋하게 일을 했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깨달은 처세술이었다. 동요되지 않고 관전하는 것.
성공일까. 한겨울 칼바람보다도 매섭고 쌀쌀했던 사무실 사람들이 차차 내게도 곁을 주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한테 만큼은 아니지만, 대화를 할 때 내게도 이젠 눈빛을 건네주고 짧게나마 내 말에 호응도 해준다. 그리고 바보같이 또 거기에 나는 녹아든다. 이 또한 관계지향형 인간의 물렁한 속성이겠지.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라고 묻고 싶지만 묻지 않기로 한다. 지나간 일을 다시 상기시켜 제대로 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일, 지금의 내게는 중요치 않다. 평생 친구도 아니고 그저 직장에 있는 동안만 잘 지내다 헤어지면 그만인 존재들에게,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속상한 일을 덮고 그 위로 새로운 시간들을 쌓아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리하여 이제는 꽤 버틸만한 시간이 왔다. 적당한 호의가 있으며, 옛날 일을 들쑤시지 않고 덮기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진, 겉보기엔 평화로운 관계들. 나는 지금 행복하다. 힘들었던 지난 몇 주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사무실 사람들과 농담도 했다.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잡음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최상의 관계가 아닐까.
살아냄의 무게가 코끼리에서 대형견쯤으로 내려왔다. 사람이 너무나 어려운 나에겐 이 정도 청신호에도 어찌나 감사한 요즘인지 모른다. 그들이 다시 내게 웃어줘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