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럼 그렇지 2

하지만 모든 건 이루어지게 되어있어



고백하자면, 나는 어떤 우주의 기운 같은 걸 사실 조금은 믿는 편이다. 사람의 타고난 사주팔자와, 강렬한 기도나 노력이 뿜어내는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에너지 같은 것들을. 그런 미신들은,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역시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어'라거나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던 거구나'하는 건강한 합리화를 심어주고는 한다. 나의 승진 아닌 승진 제의가 그러했다.


나의 그 사무실 제안은 끝내 잘 풀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발탁되었다는 사실에 몹시도 흥분하며 지냈지만, 이상하게 일이 자꾸만 꼬이는 것이었다. 데스크 인원이 네 명으로 온전히 자리 잡아야지만 나를 사무실로 내려 보낸다는 조건이었는데, 사람을 뽑으면 그만두고 뽑으면 그만두고 하면서 두 달이 넘어가도록 데스크 인원이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사무실 일을 배운답시고 데스크 업무와 사무실 교육을 병행하며 쉬는 시간을 몇 달째 반납하며 지내야 했다. 사무실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몰라도,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내 마음이 처음과는 달리 식어가고 있었던 걸지, 모두를 제치고 내가 뽑혔다는 긍지의 약발이 서서히 떨어져갔다. 그런데다가 결국에는 석 달이나 지난 후에야 간신히 사무실로 내려갔건만, 내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을지 팀장은 사무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에, 날더러 갑자기 다시 데스크로 올라가라는 게 아닌가.


대뜸 내가 사무실 인원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자리는 아니었으나, 제안을 받은 후로 나는 사무실로 내려가기로 마음먹고 그에 맞게 모든 계획을 짜 놓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팀장의 갑작스러운 통보는 큰 충격과 상처였다. 언제는 내가 적합하다고 해놓고, 며칠 써먹어보더니 입맛에 안 맞는다는 건가? 내 어디가 부족해서?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미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하는 기분은 거지같았다. 내가 관두는 것과, 남이 나를 관두게 하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었으므로.




내가 '짤린' 요지는 이러했다.


본격적으로 사무실에 내려가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데스크 근무 인원이 부족해서, 그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사무실이 아닌 데스크로 출근을 한 적이 있었다. 사무실 출근은 아홉 시지만 데스크 출근은 열 시였기에, 나는 열 시에 맞춰 출근을 했다. 그런데 팀장은 그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너는 사무실 사람이 되었으면 아홉 시에 와야지 왜 열 시에 왔느냐고. 그러면서 이런 나의 독단적 행동들이 사무실 업무에 지장을 줄 것 같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짤리는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니라는 걸. 며칠 일을 시켜봤으나 당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그래서 다시 올려 보낼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딱, 그 구실을 만들어줬다는 걸. 하지만 항변을 해봤자, 이미 판단을 끝낸 이에게는 구차한 핑계로 들릴 게 뻔했다. 나는 구겨지는 마음을 뒤로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네 그럴게요" 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데스크로 출근을 했다.



내게 맞는 길이 따로 있는 줄도 모르고 욕심을 냈더니...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나는 쿨한 척의 달인이며, 이런 모습 때문에 누군가에겐 감정에 잘 휩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겉과는 달리 속이 처절하게 문드러지는 타입이었다. 사무실에서 짤린 이후, 나는 말도 못 하게 괴로웠다. 더 고급진 일을 못해서가 아니다. 데스크 일을 너무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했다는 그 기분, 그 절망감이 나를 에워싸고 우울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런 감정이 들 때면 늘 나는 이성적인 사리판단이 불가능해진다.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하루 종일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이 망할 놈의 직장 때려치고 말 거야, 하며 틈틈이 집 근처의 구직공고를 살폈다. 일주일 내로 찾아내야지. 그리고 보란 듯이 내팽개치고 나와 버려야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냉정을 되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구직사이트를 뒤져도 이 곳 보다 월등히 괜찮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던 데다,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가서 다시 적응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맞춰 모든 판을 짜 놓고 살아가는 지금, 다시 새로운 판을 짜고 적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무리였다. 그래. 내가 여기를 군 말없이 다니고 있는 이유는 쉬는 시간이 많고, 그래서 그 시간에 글을 쓰고 내 진짜 꿈을 도모할 수 있어서였지. 내 안에 조금은 있었을지 모를 출세욕과 인정에 대한 욕구, 조금 더 오를 월급과 뭔가 관리자가 된 듯한 도취감 같은 것은 원래 내 옷이 아니었던 거야. 그리고 거절당했다는 그 절망감? 그거 얼마나 갈 것 같니. 금방 지나갈 걸.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소화제를 먹은 것처럼 갑자기 모든 분노가 걷히고 체증이 싹 사라졌다.


나는 작가이고, 글을 쓸 거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해 더 빨리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 데스크야말로 그렇게 하기에 최적의 직장이다. 업무가 끝나면 바로 스위치를 꺼도 되는 곳, 꽤 많은 쉬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곳. 이런 곳을 그까짓 자존심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언젠가 잊혀진 옛 가수를 소환해 추억을 되살려주는 프로그램에서, 한 가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해도 해도 잘 풀리지 않았던 이십대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걱정 마.) 그 모든 건 (언젠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 이루어지게 되어있어"


본인의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지 않고, 뜻대로 풀리지 않음에 분노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던 길과 본분을 잊지 않으며,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힘. 더럽고 치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것만 명심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때때로 이런 식의 합리화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나는 정말 다행히도 인정하고, 호흡하고, 원래의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모든 일은 결국에 내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 흐른다고 믿는 내게, 내가 쏘아 올린 기운이 내 인생에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믿는 내게, 사무실에서 빠꾸를 맞은 사건은 되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래, 난 글을 써야지 무슨 승진이야 승진은! 정말 잘-됐다!'




토사구팽을 당한 뒤 다시 데스크 업무로 돌아와 적응한 지금, 나는 쉬는 시간에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원두 향이 좋은 커피 한 잔도 곁들이면서. 나에게 맞는 옷은 바로 이거다. 내가 사무실에 내려가서 일했더라면, 이렇게 틈틈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도 않았을 일.


어떤 슈가맨의 말처럼 모든 건 결국 다 이루어지게 되어있다고, 지금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강력한 열망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나를 위한 샤머니즘이자, 내 꿈을 일으키는 마법의 주문이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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