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몸에 독소가 쌓여요
석 달쯤 전이었을까. 데스크에 한창 한 명이 공석인 상태라 사람이 급하던 시절,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들어왔었던 한 언니가 있었다. 누구라도 필요했던 차에, 심지어 겉보기에 너무 착해 보였던 서른다섯 살 언니. 그런데 일을 알려주고 막상 같이 일해보니 그 언니는 세상에. 일을 너무나도 못했다. 아니 못하는 걸 넘어서 거의 민폐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언니와 일하는 동안, 우리는 그 언니가 흘린 실수들을 처리하고 수습하느라 평소의 1.5배쯤은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분노가 치밀었다. 더 순조롭게 일하기 위해 한 사람을 더 뽑는 건데, 되려 새로 온 사람을 커버하느라 더 정신없이 지내야 하다니. 데스크 직원 모두가 그 언니의 '일못'에 지쳐갈 무렵, 우리는 합심해서 그 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인간적으로 잘해주기를 포기했다. 이 문제는 이제 그 언니의 성품이 착하고 말고 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다수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 하지만 착한 사람. 두 가지 상반되는 그녀의 특징 때문에 마음이 참 심란했다. 착한 사람을 몰아세워 내쫓는 우리가 마치 팥쥐들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정말 못 견디게 싫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쌓아놓은 룰과 평화가 깨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으니까. 타인의 단점을 언제까지고 보호해주고 감싸주기엔 우린 너무나도 지쳐있었으니까. 개인의 인성보다는 일로 피해를 주냐 마냐가 관건인 줄은, 그토록 사람 좋아하는 나로서도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대체로 정신이 없으며, 일분일초의 순발력으로 업무가 좌우되는 이 곳 백화점 데스크. 이 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느리지만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싹수가 노랗더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일까.
착했지만 일을 너무도 못해 우리의 미움을 산 그 언니는 결국 제 발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언니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겠다 싶을 무렵 다른 아이가 들어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다행히도 새로 온 아이는, 그 언니처럼 답답하지도 않았고 적응력도 꽤 빠른 편이었다. 좋다 좋다, 그래 이거지.
그렇게 당분간은 평화가 오는듯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다시 우리들의 심기에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새로 온 아이에게도 예상치 못한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느리고 답답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는 계산적이고 게으름을 피우는 유형이었다. 느리지만 않으면, 답답하지만 않으면 분명 뭐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해야 할 일을 자꾸만 미루고 뺀질거리는 행동을 새로 온 아이가 반복하자 그것도 그것대로 미칠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평화가 위협받는다고 감지한 우리는 또다시 그 아이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험담했고, 제 발로 나가길 소망했고, 다른 누가 오든 그 아이보단 나을 거라 또 착각하면서.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내 몸에 독소가 산처럼 쌓일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굴 미워하지 않으면 존재들일까. 정말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오면, 그때는 괜찮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성벽을 보존하려고 자꾸만 어긋난 희망을 붙들고 지내는 게 아닐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벌써 두 명의 콩쥐를 내쫓은 팥쥐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일 못하고 답답하고 쓸 데 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질된 걸까. 나도 모르는 새에 이 곳에 어울리는 사람, 그러니까 '싹수가 노랗더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 군에 속하게 된 것만 같아, 이따금씩 마음 한편이 욱신거린다.
이 곳에서 살아남은 나는, 과연 괜찮은 사람일까.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