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직원의 치열한 하루
월요일 오전. 보통 월요일 오전부터 백화점이 바쁘진 않다. 게다가 오늘은 정기세일도 명절도 아닌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그런데 오픈을 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사람들이 식품관으로 밀려들었다. 평온하리라 믿었던, 아니 기도했던 일상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으로 확인되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 아무리 숨 가쁘게 처리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인파에,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죽 흘렀다.
교대시간이 지나 다음 타자에게 일을 맡기고 휴게실로 올라왔으나 한번 올라간 심장박동은 좀처럼 식지를 않는다. 뭐 실수한 건 없을까 되짚느라 영혼은 아직 일터에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마음을 다듬기 위해 습관처럼 들고 다니던 에세이집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나는 쉬러 왔다, 괜찮다, 쉴 자격이 있다. 주문을 외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순간, 생계를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처리해야 할 일들을 쳐내느라 정신은 혼미해지고 기가 쑥쑥 빨릴 것이다. 광고나 영화에서 본 여느 장면처럼, 직장에서의 느릿하고 여유가 넘치는 시간들은 어쩌면 사치일까. 조금만 느릿하게 여유를 가지고 일하면 좋을 텐데. 존재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마음의 안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늘 뭔가를 처리해야 했던 직장인의 삶은 고달팠고, 백수일 때는 또 그 나름대로 취업과 생계 걱정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각을 할까 아침마다 전전긍긍하거나(직장인의 삶), 수입은 없는데 청구된 카드값을 메우기 위해 주판알을 굴리거나(백수의 삶), 기가 빨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나의 삶은 그렇게 늘 '여유'보다는 '시끄러움'에 가까웠던 것 같다.
강제로 릴랙스를 하기 위해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려다본다. 휴게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통유리로 이루어진 창밖으로는 백화점의 휴식 정원이 보인다. 그곳은 철저히 고객을 위해 만들어진, 푸른 잔디와 햇볕이 있는 곳. 문화센터를 다녀왔는지 몇몇 아기 엄마들이 정원에서 아기와 함께 볕을 쪼이고 있었다.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타인의 삶은 늘 왜 이리도 평온해 보이는 건지.
에세이집 몇 장을 읽으며 심장박동을 내렸지만 나는 몇 분 뒤면 다시 고객이 휘몰아치는 업무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문득 내 삶을 창 밖의 저 아기 엄마의 삶과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뭘 모르는 나의 오만일까, 한 손엔 커피를 들고 가만히 볕을 쬐며 오전을 보내는 아기 엄마들이 편해 보이는 건. 그들도 어쩌면 용케 주어진 잠깐의 휴식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육아를 해내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아직 하루의 오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나는 벌써 심신이 많이 지쳤다. 여덟 시간의 노동과 맛있는 저녁, 잠깐의 텔레비전 시청 후 취침. 별로 기대할 것 없는 하루의 일상 속,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이렇게 볕이 드는 창가에 홀로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이렇게나마 호흡을 다듬고 나면 다행히 조금은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라서.
하지만 휴식은 짧고 교대시간이 끝나간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현장으로 내려가야겠다. 오후가 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파절이가 되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지런한 직원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한, 백화점의 오후는 금방 또 생기로 가득 찰 테니까. 그게 백화점의 무기이자 특기가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백화점의 생기란, 직원들의 끊임없는 노고로 쌓아 올려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직원이 없다면 백화점은 어쩌면 공허한 폐허 같을지도. 회전이 빠르고, 대처도 빠르며, 늘 신선하고 새로우며 화려한 백화점의 이미지 뒤에는 항상 각개전투하는 직원들이 존재한다는 걸, 백화점 고객이 아닌 직원이 되어 본 오늘날에야 깨닫는다.
오후에도 무사히 전쟁을 치러내기를 각오해본다.
해당 글은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