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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06. 2020

남편과의 티키타카


1. 소두 남편


전에 쓰고 다니던 야구모자가 다 해져서, 새 모자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퇴근을 한 남편이 내 새 모자를 보더니 자기 머리에 써본다. 그러더니 "자기 이거 (머리에) 꽉 맞아?"라고 묻는다. 질문의 의도를 0.5초 동안 빠르게 파악해보았다. 아. 자기 머리엔 좀 크다는 뜻이다. 나아가 자기 머리가 매우 작다는 어필이다.


"어, 난 딱 맞던데?" 하며 대답을 해주니, 그는 모자를 휙휙 돌리며 자신한텐 공간이 심하게 남는다고 2절까지 해댄다. 그 모습이 얄미워 "자긴 키가 작으니까 머리라도 작아야지!"라고 역공을 할까, 하다가 귀여워서 그냥 참는다. 그것도 모르고 남편은 "헤헤헤 난 머리 작지요, 난 머리 작지요-"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래 남편, 소두라서 좋겠다. 너의 와이프는 너보다 머리가 커서 참 좋겠다.




2. 자동차 좋아하는 남편


남편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남편은 꼭 차 이야기를 한다.


- 어느 날 -


"(우리 앞에 가고 있는) 저 차는 이제 단종돼서 안 나와요. 그래서 평범한 차를 사야 돼요. 중고차 시장에서 잘 팔리려면"


".....(관심 없음)"


- 다음날 -


"(우리 옆에 달리고 있는) 이 차는 해치백이에요. 외국에서는 해치백을 선호하는데 우리나라는 해치백을 잘 안 써서 인기가 없어요. 이상하지?"


"......(조용히 노래나 듣고 싶음)"


- 다다다음날-


"(우리 뒤에 오고 있는) 저 차는 디자인이 좀 별로인 거 같아. 왜 저렇게 만들었지? 저 전 모델은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 어쩌구..."


"난 자동차 안 좋아해. 관심 없어. 재미없어. 나한테 자동차 얘기하지 마."


"그럼 무슨 얘기 해요????"


여보, 난 자동차는커녕 면허도 없는 사람이야... 대화 주제 대체 무엇?




3. PPL 찾기 신동 남편


한참 드라마에 몰입하며 감정이입을 하고 있을 때면, 빠지지 않는 남편의 한마디.


"아, PPL 너무 심한데?"


예능을 볼 때도 어김없이 남편은 한마디 한다.


"와, 갤럭시10 PPL 하는 거 좀 봐. 너무 티 나는데?"


PPL을 찾았다며 내게 말해준 지 한 스무 번째 즘 되던 날, 나는 참다못해 한마디 던졌다. "그게 극의 흐름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그런 것 좀 말 안 했으면 좋겠어"


남편이 입을 삐죽거린다. 귀엽고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티비를 볼 때마다 PPL을 찾는다.




연애할 때는 몰랐던 서로의 면모를 결혼을 해서 알아가는 것 같다. 대외적으로는 진중하고 조용한 남편은, 친밀해지면 생각보다 활달하고 말이 많으며 장난스럽다. 대놓고 자랑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며, 차를 타고 갈 땐 이야기하기보단 창밖을 보거나 노래를 듣고 싶고, 티비를 볼 땐 말을 걸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내게, 그 모든 걸 반대로 하고 있는 남편은 최악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남편이 좋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다음 주도, 내후년에도, 여전히 내가 싫어하는 몇 가지 행동을 하며 약을 올리겠지만, 그럴 때마다 또 한 번 째려봐주고, 참다 참다 언질을 해주고, 그럼 또 입을 삐죽 대는 티키타카가 반복되겠지. 결혼의 재미가 이런 것이라고는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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