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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낯선 내 나이

서른 하나에 적응할 때쯤 서른둘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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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른 하나가 되지 못한 나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의 속지 제일 앞부분에, 책을 읽은 날짜와 읽을 당시의 내 나이를 적는 습관이 있다. 스무 살 때부터 그렇게 나만의 표식을 책들에 새겨왔던 나.


그런데 최근에 읽는 책들에, '서른 하나'라고 써야 할 것을 '스..(스물)'라고 쓰고선 아차, 하게 되는 날이 종종 생긴다. 찍찍 긋고는 '스'에서 '서'로 어쩔 수 없이 고쳐나가는 일이 반복되자,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인디언들은 걷다가 잠깐 멈춰 서서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준다던 그 말. 빠르게 나이를 먹어왔지만 내 영혼은 아직, 나를 스물몇 살이라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 서른 하나가 되었는지. 과거 찬란한 이십대를 아주 무용하게 보내던 나를 보며, 나이 들어가던 언니들이 내 젊음을 그리도 부러워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나는 이제 주워 담을래야 담을 수 없는 이십 대를 다 보내 놓고도, 못내 뭔가가 미련이 남았는지, 책 속지에다가 내 나이를 스물몇으로 적고 있다.


나이 들어감은, 아직 내게는 서글프고 무서운 일. 초연의 경지에 이르기에 아직 나는 그리 단단하지 못한 것 같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늙어버릴까 봐 무섭기도 하고,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도 그다지 열심히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가파른 속도로 한 살 한 살 많아질 줄 알았더라면, 과거의 나는 더 시간을 유용하게 썼을까.




하지만 분명히 서른 하나인 나


회사에서 일을 하려면 업무 프로그램에 매번 사번 ID를 입력해야 한다. 직원들의 생년월일로 이루어진 이 사번은 외우기가 쉽지 않아서 데스크 한편에 잘 보이게 붙여져 있다. 우리는 교대를 할 때면 미리 프로그램에 다음 타자의 사번으로 로그인을 해주곤 하는 규칙이 있는데, 나는 이따금씩 동생들의 사번을 넣다가 놀라곤 한다.


960814, 970423. 매우 공격적인 생년이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가까스로 나도 같은 년대인 90년생이긴 했으나, 동생들과 나 사이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엄청난 세월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나보다 6-7년이나 뒤에 태어난 아이들. 아직도 이십대가 절반 이상이나 남아있는 아이들. 빅뱅의 거짓말은 알아도 GOD의 거짓말은 모르는 아이들. 목놓아 부럽다고 외치며 제발 최대한 열심히 즐겁게 살라고 하고 싶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듯 그들도 알 리가 없다. 마냥 이십 대를 걷는 그 순간엔.




아직도 서른 하나인 나


이십 대 초중반이 주로 뽑히는 데스크에서 나는 제법 나이가 있는 편이지만, 조금 특별한 케이스로 76년생 동료 언니가 한 명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절친이다. 언니와 나는 무려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언니가 굉장히 젊게 살기 때문일지 나는 나이 차이를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사번을 프로그램에 입력하려는 순간 '76'이라는 생소한 생년이 그녀와의 나이 차이를 되짚어준다. 여기에도 큰 간극이 있구나.


90년대생들 사이에 섞인 76년생. 나보다 앞서 세상을 살아온 언니는 한 번씩 말한다. "내가 네 나이만 됐어도...,"라는 아주 고전적인 멘트. 나는 이십 대 동생들을 부러워하지만, 벌써 삼십 대마저도 다 지나온 언니 눈에는 서른 하나인 나도 젊어터진 것이다. 내 눈엔 징그러운 내 나이를 싱그러워하는 언니를 보며, 상대적인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삼십 대를 소중히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어찌 보면 나는 아직, 서른 하나다.



믿기지 않는 내 나이! (사진출처: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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