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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좋아하는 여자

머릿속은 어떻게 정리해야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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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리를 좋아한다. 온갖 잡동사니와 영수증이 나뒹구는 가방 속 정리부터, 설거지, 냉장고 정리, 옷장 정리, 하다못해 인간관계 정리까지. 정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정리하려는 습관이 있다.


나는, 보통 기분이 심란할 때 정리를 하는 편이다. 뭔가가 딱히 어질러져있어서라기보단, 머릿속이 시끄럽거나 내 삶이 정돈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럴 때 내 옆에 가방이 있다면, 난 별안간 가방을 훅 뒤집어엎는다.

가방은 정리의 대상으로 삼기 참 쉬운 공간이다. 같은 맥락으로 그래서 잘 더러워진다. 한 가방을 몇 날 며칠이고 들고 다니다 보면 가방은 금세 쓰레기통이 된다. 언제 넣어놨는지 모를 꼬깃꼬깃한 영수증들은 잉크도 다 날아가 있고, 다 써서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핸드크림이나 유통기한 지난 과자 부스러기 등은 가방 속에 방치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일상이 피곤하고 여유롭지 못할 때 온갖 쓰레기를 가방에 쑤셔 박는 건 내 주된 습관 중 하나. 고로, 가방이 어지럽다는 건 곧 내 일상이 어지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방을 포함해 내 주변의 무엇인가를 정리하는 것으로 나는 마음속 쓰레기들을 일차 비워내곤 했다. 다시 열심히 살자, 여유를 찾자. 언젠가 다시 도루묵이 될 다짐인걸 알면서도 이런 정리들은, 그 순간의 나를 분명히 비워주는 뭔가가 있었다. 가방을 뒤집어엎고, 옷장과 냉장고를 비우면 내 머리도 함께 비워지는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달까. 그래서 나는 그런 정리하는 행위가, 내 머리를 정말로 비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는데, 안타깝게도 그 행위가 주는 개운함은 본질적으로 내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진짜로 정리하고 싶은 것은 가방 속이나 냉장고가 아니라, 몇 테라(terabyte) 일 지 모를 내 머릿속이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켕기는 일, 쓸데없이 걱정되는 일 등등 온갖 것들이 나뒹구는 하나의 초대형 쓰레기장 같은 내 머릿속이, 단순히 가방이나 냉장고를 정리한다고 비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거다. 모든 정리의 끝판왕은 결국, 내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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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리는 삶과 생활의 기반을 세우는 일'이라고. 물론 여기서의 정리가 비단 '물리적인 정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란 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끝없이 새로운 것이 쌓이고, 그로 인해 이전의 것들이 밀려나고. 여기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수용할지 결정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한정적인 공간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 터. 정리하고 질서를 세워 나만의 틀과 공간을 청소해나가야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정리를 포기하는 순간, 내 안의 질서는 무섭게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슬프지만 나는 다른 정리정돈은 잘해도, 아직 머릿속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물건 정리를 하며 뭔가 조금의 안심을 얻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무너질까 봐 강박처럼 하게 되는 행동일 뿐이니까. 그래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다른 확실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명상이 됐든, 운동이 됐든, 일기 쓰기가 됐든, 그게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는 분명 정리법을 찾을 것이다. 물리적인 정리 말고 내 내면의 정리를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


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내 남편이다. 소란스럽게 뭔가를 정리하고 계획하고 때려치우고 자괴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편안해 보이는 뭔가가 있다. 분명 나보다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나보다 훨씬 깨끗한 것 같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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