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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도 괜찮아

첫 출간의 실패 이후, 나는 내적으로 더 탄탄해지는 중이다

[ 첫 출간의 실패 ]


2018년 6월 여름. 딱 2년 전 이 맘 때쯤의 일이다.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첫 책이 나왔다. 이를 '출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내 인생 첫 책임은 분명했다. 그땐 한동안 스스로가 너무 뿌듯한 마음에 도취되어 지냈다. 구질구질한 삶은 청산하고 이제 작가로서의 꽃길만 펼쳐질 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게 내 커다란 착각이었단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나는 2017년부터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그 플랫폼 속에서 나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며 열심히 글을 썼다. '잘'쓴 것은 아니었을지언정 '열심히'는 썼었기에 그 데이터가 제법 쌓이고 있던 무렵, 내게 우연한 기회가 왔다. 써놓은 글들 중 50편 정도를 엮어 책으로 낼 수 있는 기회였다. "책이라고? 내 이름으로?" 가수로 치자면 이제 막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한 단계에 불과했는데 벌써 데뷔의 기회가 오다니. 횡재처럼 느껴졌다. 그래, 기회는 왔을 때 잡는 거지! 나는 성급히 책을 엮게 됐다.


당시 내가 얻게 된 기회의 책 출간 방식은 POD(Publish on demand) 출간의 형태로, 직역하자면 '수요에 의한 출판'. 즉 내 책의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책을 찍어내는 방식이었다. 떠안아야 할 재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일푼 아마추어 작가인 내게는 너무 좋은 기회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는 이 기회가 곧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내 책은 세상에 그저 이름만 올렸을 뿐 처참한 기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나마 내 책을 주문한 사람들도 거의 내 지인들이었다. 순진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출판의 기회가 얻어졌다고 해서 바로 성공가도를 달릴 것으로 생각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첫 출간으로 어떤 그럴듯한 수익도 명성도 얻지 못했기에, 나는 다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다녀야 했다. 당연했고 또 당연했다. 너무 성급했으며 이 길을 쉽게 생각했던 내 불찰 탓이리라. 작가의 길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저 작은 기회였을 뿐이고 준비되지 않은 내가 그 기회로 벼락스타가 될 리가 만무한데. 인고의 시간을 거쳐 무르익고 무르익어야만 내가 그렇게 동경하는 작가들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첫 출간의 실패를 통해서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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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해가 흘러,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백화점 노동자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한 무명작가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전처럼 다시 묵묵히 글을 쓰면서 일상을 보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되려 겸손해졌다.


더불어, 첫 출간의 실패로 인해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대충'이라곤 없는 다른 작가들의 책들. 그들의 책은 농축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전부 '이 사람들은 나처럼 덜 여문 상태로 책을 내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여실히 드는 책들이었다. 그래서 그 책들은 매번 내 모습을 반추해 나를 겸손하게 만들곤 했다. '이만큼 실력이 농익기 전까지는 함부로 세상에 책을 내지 말자.' 현재도 아마추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나의 굳은 신조다.





[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어도 괜찮아 ]


막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절, 한 타로 집에서 타로 점을 보았던 게 기억이 난다. "작가가 꿈인데 언제쯤 빛을 볼까요"라고 묻는 내게 그곳의 무속인이 그랬었다. "한 5년은 계속 지지부진할 거야. 많이 노력해야 돼"라고. 꽤나 냉정했던 답변.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초보 상태였으니 어찌 보면 점쟁이가 아닌 누구라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 말이 참 비극적으로 들려왔었다. (물론 난 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무려 5년이라니.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미래라면 희망 좀 주지, 거 참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5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정말이지, 나는 '그럴듯한' 작가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그 점쟁이가 신통해서는 아니다. 단지, 그 점쟁이도 때려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길이 만만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내가 덜 여물어서다.


2020년 7월 현재, 나는 여전히 브런치와 SNS에서 글을 쓰는 무명작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작가로서의 불투명한 내 미래가 크게 두렵지는 않다. 5년 뒤에도 지지부진할 거라던 점쟁이의 말에 무릎을 탁 치며 내 미래를 재단하지도 않는다. "난 네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네가 작가라고?" 하고 누군가 콧방귀를 뀐대도 그리 풀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남들이 몰라줄지언정 내가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는 사람, 글쓰기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좌절들과 부끄러움 속에서도 꿋꿋이 글을 기고해온 결과, 나는 대형서점 가판대에 내 책을 올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행복 속에 살고 있다. 요 전에는 브런치에서 1000명의 구독자를 달성했는데 그때는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그래.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실패를 발판으로 삼아 다시 천천히 벽돌을 쌓아 올리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자체가 나는 스스로 만족스럽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내적으로 탄탄해지고 있는 내가 정말로 뿌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번째 책 출간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변곡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한다던데 그 말이 정말 맞는 모양일까. 첫 출간의 좌절감 이후, 나는 보다 겸손해졌고, 보다 내 글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빨리'쫓기보단 '느리지만 견고하게'쫓는 태도를 갖게 되었으니, 첫 출간의 실패에서 나는 '실'보다 '득'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겠지.


느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명작가로 살다가 끝끝내 싹을 티워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이것이 내 소명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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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나의 작업실에서 오로지 글을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삶을 나는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 대신 치열한 생계와, 외면할 수 없는 가족, 부족한 시간, 기약할 수 없는 성공 등이 내 어깨 위에 있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롯이 글만 쓸 수 있는 전업작가들이 매우 부럽다. 대형서점 가판대에 이름을 밝히며 놓여있는 누군가의 책들이 눈물 나게 부럽다. 그렇지만 나는 괜찮다. 내가 부끄럽지 않다. 천천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는, 누가 뭐래도 작가이고, 작가일 테니까. 이를 작가가 아니면 달리 뭐라 칭하겠는가.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되뇐다.

언제나 '결과'가 아닌 '과정의 즐거움'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작가이고 싶다고.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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