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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신감에 지배되지 않기

근자감 한 스푼 보다는, 노력 열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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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는 동생과 함께 서울 망원동의 한 디저트 카페를 다녀왔다. 사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것이라면 뭐든 잘 먹는 나는, 그저 맛이 있냐 없냐 정도만이 중요했지, 그 세계에도 정통성과 어떤 철학이 존재하리라고는 딱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이 간 동생은 디저트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그 친구와 함께하는 동안은 디저트가 '생각보다' 깊고 넓은 분야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세상 어떤 분야가 쉽고 만만하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포크로 뚝 잘라먹어대던 케이크와 타르트들도 실은 엄청난 시행착오와 연구 끝에 만들어진 작품일 텐데. 그동안 내가 무슨 전문가라도 되듯 "아니 어떻게 이런 허접한 맛이 있어?"라고 무시해왔던 것들은, 모두 실력 없는 자들의 작품이거나, 그 세계를 우습게 알고 덤빈 자의 인과응보였으리라.


동생이 데려간 디저트 카페에서 나는 평소답게 푸짐하게 종류별로 주문을 한 뒤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뒤 커피와 함께 케이크와 타르트들이 테이블에 도착했다. 이제는 먹기 전 당연한 하나의 의식처럼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는 디저트들을 맛보았다. 이 동생의 써치로 오게 된 디저트 집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매번 같다. '맛있다'를 넘어서서 '뭔가 달라도 정말 다르다'는 것. 디저트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 표현력이 그저 '뭔가 다르다'에 그치는 게 슬프지만, 정말 내가 먹어온 것들과는 뭔가가 다르다는 느낌을 항상 절절하게 받곤 했다.


견고한 그 모양새부터, 막 입인 내가 먹어봐도 느껴지는 우아한 맛과 향기, 그리고 한 입에서도 느껴지는 층마다 다른 여러 가지의 맛. 뭘 모르는 내가 먹어도 그러한데 전공자인 동생은 과연, 거의 연구자의 자세다. 한 입 떠먹을 때마다 '이런이런 재료를 사용했고..', '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며 깊은 영감을 받는 듯했다. 문득, 그 동생의 그런 자세를 보고 있자니, 잘 쓴 글을 읽을 때의 내 감정이 저럴까 싶었다. 남에겐 그저 "재밌네, 좀 재미없네"로 구분될 만한 글들에서, 나는 짜임과 문체와 신박한 표현력 같은 걸 발견하고 연구자의 자세로 접근하는 것처럼, 이 동생에게도 디저트가 그런 대상이 아닐까.


"J야, 이건 진짜 뭔가 다르긴 다르다. 우리가 판교 OO(우리가 가끔 가는 디저트 집)에서 먹는 디저트는 이거에 비하면 정말 대충 만든 건가?"

"언니, 그건 디저트 축에 끼지도 못해요."

"나도 그냥 그런 것만 먹을 땐 몰랐는데 여기 와보니 진짜 느껴진다"

"J는 전공 자니까, (어쩔 수 없이) 보이겠네? 이 집이 대충 하는 집인지,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만든 집인지"

"아, 너-무 잘 보이죠"


그렇게 디저트 전공자와 함께 디저트를 먹는 일은 참 묘한 감정을 들게 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디저트 하나하나를 대하는 그 모습에서, 멋진 글을 읽고 경외심을 느끼는 내가 비쳐졌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별 거 아닌 그냥 좀 잘 만들어진 디저트가 실은 얼마나 대단한 철학과 실력으로 빚어진 결과물인지를 아는 그 기쁨과 경외심을, 나도 알 수 있었다.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얼마나 갈고닦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심까지도.


하지만 세상엔 반대로 너무나 쉽게 그 분야를 생각하고 덤벼대는 사람들로 항상 넘쳐난다는 게 슬픈 일이다. 쉽게 생각하는 사람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의 공존은 그래서 참 홧홧할 때가 많다. '디저트 맛집'이라고 해서 가보면, 대충 어깨너머로 터득한 듯한 지식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물을 전시해놓고 파는 집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곳은 대충 사진만 이쁘게 나오면 그만인 자들의 '핫플'일뿐, 정말로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외면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곳곳에 그런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런 집들을 소비하게 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는 게 함정. 어쩔 땐 정말 비주얼만 중시하고 맛의 깊이나 철학은 전혀 담기지 않은 집들이 인생 맛집으로 둔갑할 때가 많아 화가 날 때도 있다.


디저트처럼 글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써서 출간을 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정말 '아무나' 창작자의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된 끝에, 어떤 오류가 범해진다. 그저 글자를 나열해놓으면 그게 글인 줄 아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됐다. 정말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수백 번을 갈고닦으며 노력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대여 안녕. 잘 지내나요? 보고 싶어요"같은 글을 써놓고도 자신감에 넘쳐, 그런 글을 모아 출간 작가의 타이틀을 달기도 하니까. 그런 얕은 글과 얕은 작가들을 보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건 디저트 축에도 못 껴요"와 같은 생각. 아, 이건 글 축에도 못 끼는데...


사실 인생에는 대충이란 게 없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걸까. 대충 생크림 몇 번을 저어 디저트 맛집이 될 수는 없고, 대충 감성 넘치는 문장 몇 개를 적어본다고 작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명대학에 가서 학위를 받고 제대로 된 공부를 꼭 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나 철학, 오랜 수련의 시간이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나도 전공자가 아닌 탓에 생겨난 자격지심으로, 그 공간을 메우기 위해 더욱더 글을 많이 읽고, 더 많은 단어와 지식을 습득하려고 노력 중인 것을. 이런 노력 없이 어떻게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고, 어떻게 공지영이 되겠는가. 하물며 다른 분야라고 해서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는 않을 터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디저트를 먹으면서, 그저 우리의 위장으로 대장으로 가서 결국에 배출되고 말 이 디저트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과 정성이 담겼는지를 열심히 논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만들어낸 디저트들도 맛집으로 둔갑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정성 들여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디저트 집들도 존재함에, 그리고 이런 집을 발견하여 맛볼 수 있음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꼭 누군가에게 '나 이렇게나 깊이 있어요'하고 전해져야 의미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어, 대충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좋다고 하네? 세상 쉽군'하는 가짜 자신감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 글을 읽는 상대도 그 노력의 값어치를 인정해주는 그런 작가가 되어야 비로소 진짜 자신감이 생길 것을 알기에.


단 한 톨의 흠도 없어 보이던 그 날의 견고한 디저트를 보며, 나는 더욱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해답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한한 노력과 자기 검열이라는 걸 오늘도 여실히 느낀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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