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삐뚤빼뚤한 줄 알았지 뭐예요
요 몇 달 새, 잡지에 꽂혀서 매달 잡지를 사서 읽고 있다. 형형색색 아름답게 실려있는 사진도 내 힐링 포인트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 잡지의 앞부분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한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나는 그 부분을 참 좋아한다. 빵을 굽는 사람, 음악을 만드는 사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의미로 본받고 싶은 삶, 즉 열심히 자신의 분야를 갈고닦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인터뷰. 그들의 인터뷰에는 그들의 생각이나 평소 생활은 어떤지가 고스란히 실려있고, 나는 그걸 읽으면서 그들의 멋진 생각을 흡수하기도, 삶의 활력을 얻기도 한다. 비교적 늦게 알았지만 어쩌면 이런 점이 잡지의 매력인 걸까.
그런 멋진 이들의 잘 정제된 인터뷰는 대부분 내게 동경 내지는 경외심을 심어주곤 하는데, 가끔은 인터뷰이(interviewee)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 의외의 위안을 주는 부분도 더러 있다. 이번 호에 실린,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부부의 이야기에서도 나는 그 의외의 위로를 받았더랬다.
특히 발효빵에 대한 깊은 소신을 가진 남편의 인터뷰 부분에서였다.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역시 완벽한 분이로군. 철저하고 신념 있으셔"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머지않아 자신의 평범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잡지에 실린 사진 속의 그는 분명 태생적으로 평화로운 사람'처럼 웃고 있었으나, 그의 인터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으니.
「몇 시엔 어떤 빵을 반죽하고, 몇 시엔 어떤 빵을 굽고, 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꽤 예민한 상태로 작업해요. (중략) 5년째 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오픈 전엔 정신없어요. 야단 법석이죠 」
신기했다. 뭘 해도 그럴듯한 사람들은 아침부터 호랑이 기운이 솟는 줄 알았는데. '예민'하고 '야단법석'이라니. 차분함과 완벽함 그 자체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구나. 게다가 서로에게 언성 한 번 안 높일 것 같은 모습의 부부가 빵집을 하면서 잘 싸우게 됐더라는 말도 적혀있었다. 대개 잡지에 실릴 정도의 부부는 꼭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다는 잉꼬부부일 때가 많던데.
매우 솔직한 부부의 인터뷰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괜스레 위로가 됐다. 단지 그들의 흠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완벽을 기하는 이들에게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음을 알게 되어 조금 더 가깝게 그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군자 같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무지 행복하게 빵을 만든다거나, 우리 부부는 금슬이 너무 좋아 빵집을 하면서부터는 싸워본 적이 없죠 허허, 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이른 아침 빵을 만들어야 해서 몹시 예민하더라는, 같이 일하면서 더 잘 싸우게 됐더라는 이야기라서. 그런 이야기 덕에 되려 그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돋보일 때가 있다. 화려한 향수 냄새에 사람의 체취가 한 방울 섞여야 비로소 고유의 멋스런 향기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일단 예민한 성격부터 고쳐야 되는 것도 아니고, 부부가 동업을 하려면 절대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사이어야 되는 것도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나도 언젠가 내 분야를 갈고닦으면 다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가끔은 누군가와 다투는 모난 인간일지라도, 그들처럼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심심한 위로를 받는다.
완벽한 것보단,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들에 그렇게 나는 늘 마음을 빼앗긴다. 나도 내 단점들을 도려내기보단, 멋진 사람이 되어 그들처럼 당당히 단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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