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장마에, 희망 없는 올해...
코로나19가 만연한 2020년의 여름이 그리 반짝거리지 않을 줄이야 예견했지만, 올해 여름은 참으로 무기력하다. 연일 비가 내리고, 곳곳이 침수했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최근 몇 달 사이 해가 뜬 날이 언제인지 손에 꼽을 정도다. 인간은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물이라 했던가. 시커먼 하늘처럼 내 마음도 매일같이 흐리멍덩하다.
해마다 폭염이나 강추위가 번갈아 다녀가며 한 해를 혹독하게 장식했었지만, 이번 2020년은 그 전과는 확연히 질적으로 다른 느낌이다. 질병의 대유행과 구멍이 뚫린듯한 하늘. 이 거대한 재난들이 동시에 한 해에 몰아닥치기는 내 기억으론 아마 처음인 것 같은데. 그 옛날 선조들이 왜 토테미즘을 행했는지 끄덕끄덕 이해가 된다. 정말, 신이라도 섬기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남편과 날을 맞추어 받아놓았던 8월 초 3일간의 여름휴가는 3일 내내 비가 내리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성북동의 북악 스카이웨이를 드라이브하고, 팔각정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근처 한옥카페에 가서 멋들어지게 커피를 마시려던 계획이었는데. 모두 내 가련한 상상이었음을 알려주듯 비가 어마 무시하게 내렸더랬다. 그보다 더 원래의 계획은 부산에 가서 바다를 거닐며 놀다 올 요량이었는데. 장대비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창 밖을 보니, 과연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나뿐만이 아니다. 줄줄이 여름휴가를 계획했던 동료들이 무차별 비의 공격을 맞고 돌아왔다. 제주도를 가려던 한 동료의 계획은 멈출 줄 모르는 비 소식에 경기도 근교로 축소되었고, 한 동료의 여름휴가 계획은 통째로 무산되어 9월로 밀려났다. 그러나 항간에 도는 소식으로는 9월에는, 8월 장마 탓에 오지 못했던 무더위가 뒤늦게 찾아온다고 하니. 9월도 심각한 난항이 예상되는 바다.
해외여행도 없고 여름휴가도 없는 올해. 이쯤 되면 거의 라마단 기간*에 맞먹는 절제의 해가 아닌가 싶다. 그래, 자연은 어쩌면 참을 만큼 참았을지도 모른다. 문란하고 방탕하게 살아온 인간계를 자연은 틈틈이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버르장머리 없이 더 대들기 일쑤였고, 그래서 이번에는 아마도 작정하고 극대노하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네가 당연히 숨 쉬고 누리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라며, 2020년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라마단 기간 : 이슬람교에서, 단식과 재계(齋戒)를 하는 달.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식사, 흡연, 음주, 성행위 따위를 금한다.
당연했던 것을 그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하게 된 한 해. 그리고 어쩌면 한 해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확대될지도 모를 지금의 상황들이, 문득 무섭고 두렵다. 결혼식을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온 하객이 마스크를 낀 채로 그냥 결혼을 하는 커플들, 결혼식은 올렸지만 신혼여행을 지금껏 가지 못하고 있는 부부들, 원래 바깥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끼는 거라고 생각하며 성장할 어린아이들. 그리고 전례 없이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는 여름까지. 이런 상황이 되어보니, 당연하다 여기며 물쓰듯 누렸던 것들이야말로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새삼 알겠다. 마치 늘 곁에 있어 한 번씩 소중함이 퇴색되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서른 한 해 처음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립다. 매미들은 몇 년씩이나 여름 한 철을 위해 땅속에 산다는데, 땅 밖으로 올라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코로나와 장마로 꼼짝 못 하는 우리처럼 마냥 내년을 기약하고 있으려나.
창밖엔 극악스러운 매미 떼가 아닌 세찬 빗소리만이 들려온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시간은 가고, 언젠가 극복하고, 모두 원위치로 돌아오겠지만, 아직은 모든 게 너무도 아득하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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