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없이 못사는 사람들의 나라
여기는 커피공화국 대한민국. 흐리멍덩한 정신을 깨워 출근하기 위해 한잔, 점심 먹고 식곤증을 방지하기 위해 한잔, 그 외에도 누군가랑 만나 시간을 때우는데 마시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커피다 커피. 언제부터 한국인이 이렇게 커피 없이 못 사는 민족이 되었는진 몰라도, 커피를 마시기 전의 나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커피에 세뇌된 세월이 오래인 것은 분명하다.
어제는 그간의 카페인 과다복용을 반성하며 '차'를 마셔보기 위해 오설록 매장을 찾았다. 제주영귤차. 제주 삼나무의 그윽한 풍미에 제주영귤의 싱그러움을 더했다는 이 발효차는, 커피보단 몸에 좋을 것이 분명한 음료 같았다. 이 참에 차에 한 번 입문해볼까. 그런데 계산을 마치면서 오설록 직원 여사님이, 같은 백화점 직원이라며 오설록 쿠키를 공짜로 곁들여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당분간 밀가루와 카페인을 조금 멀리해보고자 했지만, 아무래도 주신 마음을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닌 듯했다. 여사님이 쿠키를 먹는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나는 쿠키를 먹었다. 평소 밀가루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인지라 녹차맛 쿠키는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쿠키와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주문한 영귤차를 한 입 마셨는데...
아아아. 아무리 마셔봐도 쿠키와는 영 맞지 않는 이 궁합. 제아무리 찻집에서 만든 쿠키일지라도 쿠키는 쿠키였고, 쿠키는 커피랑 먹어야 궁합이 오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밀가루의 짝은 여지없이 커피인 것이다. 여기는 커피공화국, 그리고 나는 커피공화국의 당당한 인민으로서 역시나 차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오설록 매장에서 영귤차를 말끔히 비운 다음, 입안에 맴도는 쿠키와 차의 비조합을 씻어내기 위해 다시 커피를 사러 다른 카페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욧!"
다급한 내 신음에 부리나케 직원이 만들어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넣자마자, '아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든다. 분명 스무 살 남짓한 시절 처음 맛 본 아메리카노의 맛은 독약과도 같았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세뇌된 거지. 이 독약 같았던 음료에서 이제는 '고소하고, 시고, 달고'를 모두 느끼게 된 나였다. 산미가 풍부하게 블렌딩 된 원두의 맛을 느끼며 나는 익숙한 만족감을 느꼈다. 맞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카페인은 나의 각성제이자 안정제다.
내가 일하는 곳의 커피 중독 환자는 나까지 네 명. 커피 대신 공차를 더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을 빼고는 30대를 넘긴 성인 동료들은 마치 물처럼 커피를 달고 산다. 출근하며 그들 손에 익숙하게 들려있는 커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치 좀 부리는 날은 스타벅스, 저렴하게는 맥도날드. 아무튼 저마다 아침에 커피 한 잔씩은 사는 게 일상이 되었나 보다. 누가 봐도 믹스커피만 마시게 생긴 팀장님도 의외로 아침마다 원두커피를 드신다.
한 집 건너 카페가 있고, 커피를 취급하지 않는 빵집도 거의 없는 데다, 커피가 만인의 음료수이자 만인의 물이 되어버린, 오늘날 한국의 커피 사랑 커피 문화. 분명 남의 문화인데 어느덧 우리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 가끔씩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커피를 대체할 음료가 생겨날까? 음, 아직까진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오늘도 1일 3 커피를 마시고 폭풍 이뇨작용으로 화장실을 대략 12번은 다녀왔다. 아주 익숙한 나의 일상이다. 그리고 지나가다가 오설록 매장 직원의 데스크에도 커피가 있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비단 우리 모두의 일상 이리라.
커피, 정말 너란 존재는 참.
*오지다 : 언뜻 느끼기에 비속어 같지만, '오지다'는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라는 뜻의 표준어입니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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