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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28. 2020

예술적인 디저트의 세계,
카페 <로브니>

디저트를 향한 의미 있는 소비

새벽과 밤 사이의 공간. 카페 <로브니>


끝없는 장마가 이어지던 이번 여름. 카페 <로브니>에 가던 길도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꿉꿉한 빗속을 걷느라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은 놀랍게도 카페 입구를 보자마자 안정이 되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예쁜 카페에 반응하는 내 몸! 전체적으로 깔끔한 화이트톤 인테리어의 카페는 너무나도 내 취향저격이었고, 비 오는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자리를 잡자마자 주문을 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어여쁜 디저트들을 하나하나 주문하고 나니 불쾌지수가 싹 날아간다. 이 정도 발품쯤은 잊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내 사랑 디저트의 힘이다. 커피와 함께 우리가 주문한 것들은, 로브니의 대표 메뉴 '로브니'와 '로지에' 그리고 '앙상블'. 일단 예술작품은 사진으로 먼저 남기는 게 미덕인 법. 지인과 열심히 사진을 찍은 후, 컷팅은 나보다 더 디저트를 잘 다루는 지인에게 맡기기로 한다. 



대표메뉴 로브니와 로지에.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었던, 앙상블.



■ 로브니(L'AUBENUIT) : 바질 가나슈, 딸기쿨리, 크렘 당쥬 무스, 사블레 시트

■ 로지에(Rosier) : 요거트무스, 장미시럽이 첨가된 산딸기 쿨리, 올리브오일과 레몬이 첨가된 비스퀴, 사블레

■ 앙상블(Ensemble함께,같이) : 오헬리스 가나슈 몽떼, 패션 후르츠 가나슈, 캬라멜, 아몬드 비스퀴, 크로캉



대표 메뉴 로브니와 로지에의 속은 딸기쿨리로 채워져 있어서, 나이프로 자름과 동시에 그 빨간 쿨리가 쏟아져내렸다. 아, 이런 시각적 즐거움이란. 디저트에 조예가 깊은 지인을 따라 이런 디저트 카페에 올 때면, 디저트의 그 경이로운 세계와 깊이에 놀라곤 한다. 만드는 이의 정성과 철학이 묻어나는 디저트의 모양부터 맛의 깊이, 그리고 디저트 하나하나에 붙인 섬세한 호칭까지도 모두 완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디저트는 하나같이 전부 맛있었다. 단순히 맛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층층이 다양하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특히 흰색 무스의 로브니는 맛이 조금 특별했다. "이거 무슨 맛이지? 어, 아는 맛인데" 싶어 지인이 직접 물어보니, 안에 바질 가나슈가 들어가 있다고 했다. 듣자마자 내내 좋아해서 식빵에 발라먹던 바질 페스토가 떠올랐다. 와, 바질의 맛이 케이크와도 어울리는구나. 바질 향이 은은하게 입안에 퍼질 때마다 뜻하지 않은 재료와 어우러지는 케이크의 맛이 너무도 신기했다.  


이름처럼 빨간 장미꽃잎을 닮은 로지에도 맛있었다. 로지에의 속도 산딸기 쿨리로 채워져 있어, 컷팅과 동시에 쿨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입에 제일 맛있었던 건, 앙상블. 모양은 로브니나 로지에에 비해 다소 평범했는데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디저트의 단면.


맛을 글로 푸는 데는 영 소질이 없지만 굳이 설명해보자면, 앙상블의 맛은 고소한 맛의 겉옷 속에 패션후르츠 가나슈가 들어가 있어 상큼하게 터지는 게 매력이었다. 앙상블이 제일 맛있다고 하자, 몇 번 나를 데리고 디저트를 먹어본 지인 왈. "아, 언니는 패션후르츠 파네요"라고. 때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타인이 짚어주기도 한다. 나도 그제야 깨닫는다. 아하, 나는 입에서 상큼하게 터지는 패션후르츠를 좋아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그녀와 함께한 디저트 투어에서 내가 맛있다고 했던 디저트들 속에는 하나같이 패션후르츠가 들어가 있었다. 맞아, 느끼한 케이크의 맛을 중화시켜주는 그 상큼한 맛이 난 너무 좋다. 아무튼 이 집에서 내 최애는 앙상블이다!



역시나 맛있었던 까눌레.


지인과 나는 디저트 3개를 클리어하고도 까눌레 두 개를 더 먹었다. 우린 분명 점심을 배 터지게 먹었는데. (웃음) 이쯤 되면 여자들에겐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는 게 정말 정설인 듯하다. 사랑스러운 디저트들을 맛보고 나니 기분은 한창 고조되었다. 


예전엔 먹는 것에 돈을 쓰는 일이 '남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여 아깝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하나의 '남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옷이나 물건 같은 유형적인 것들보다 오히려 여행, 맛집 투어 같은 무형적인 것들을 위한 소비가 오히려 삶을 더 풍족하게 한다고 믿는다. 유형적인 것들이야말로 언젠간 닳고 사라지지만,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디저트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수많은 디저트들이 내 뱃속으로 사라질지언정, 나는 장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직접 맛보고 디저트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경험을 산 셈이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누군가의 철학과 노력이 집약된 작품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로써 어제보다 삶이 더 풍족해졌고 말이다. 통유리로 된 카페 창밖으로 근접한 아파트가 하나 보였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여기 올 수 있겠다,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나라면 비싸지만 이 맛있는 디저트가 내 집 앞에 있더라면, 정말이지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올 텐데. 이런 디저트 맛집이 언젠가 우리 집 앞에도 생겼으면 좋겠다.



로브니(L'AUBENUIT) 
서울 강남구 선릉로85길 8 (역삼동) 
OPEN 11:00 - CLOSE 20:00 (토요일 12:00 - 18:00)│일요일 휴무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19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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