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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01. 2020

고즈넉한 나들이,
전통찻집 <수연산방>

어느 문인의 안식처가 되었던 곳


문인 이태준의 후손이 운영중인 전통찻집, 수연산방.


나도 몰랐던 이야기지만 성북동에는 과거 문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한용운 시인이 살았던 곳도, 미처 이름은 모르지만 대단한 문인이셨던 다른 분들의 집도, 법정스님의 유품이 보관되어있는 것도 모두 여기 성북동에 있다고 한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던 어느 날 남편과 다녀온 <수연산방>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소설을 집필한 이태준 문인이 살던 집이라고 했다. 지금은 문인의 손녀가 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사실 이 곳 <수연산방>을 오고 싶었던 건, 부끄럽지만 문인 이태준을 잘 알고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보통의 존재」를 쓴 에세이 작가 이석원이 이 곳을 칭찬해서였다. 둘 다 문학계 인물이니 방문의 결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내가 사랑하는 현시대의 작가가 그의 책에서 언급한, 북악스카이웨이와 수연산방을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뭐야 북악 스카이웨이 별거 없는데. 이게 다야?" 싶을 정도로 북악스카이웨이는 그냥 드라이브코스였다. 하지만 수연산방은 조금 달랐다. 입구부터 왠지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찻집은, 과연 문인이 왜 이곳에서 13년간 소설을 집필했는지 납득이 가게 하는 공간이었다. 



수연산방 (壽硯山房)
서울 성북구 성북로26길 8 (성북동)
OPEN 11:30 - CLOSE 18:00
(주말 11:30 - 22:00), 월요일 휴무



대청에서 바라본 풍경.


들어가면 펼쳐지는 한옥의 풍경은 소담스러웠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보이는 햇볕이 잘 드는 대청. 무엇보다 분위기가 조용했다. 도심 속에 있다고 믿기가 어려운 이 곳의 조용한 정취가,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런 곳이라면 뭔가에 몰두하기에 제격이었으리라. 


남편과 나는 처음에 방에 자리 잡았다. 규모가 큰 편도 아니지만, 볕이 드는 대청 쪽은 이미 다 사람이 있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대청이 하나둘씩 자리가 비기 시작해 우리는 금세 대청 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한옥의 대청에 앉아, 주문은 신문물인 태블릿으로 이루어졌다. 곳곳에 물론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1인 1 메뉴가 의무인 이곳에서, 나는 모과도라지차, 남편은 유자생강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문이 자자한 '단호박범벅'도 주문했다. 여름엔 단호박 빙수가 또 유명하다고 한다.


처음에 이 곳에 오려고 한 건 장마가 끝날 줄을 모르던 8월 여름이었다. 비를 뚫고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오지 오지 못했는데, 오늘날 탁 트인 가을 하늘을 보며 차를 마시니 그때 안 오고 지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매력은 단지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차가 아니라 이곳이 내뿜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대청에서 느끼는 이 풍경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을은 한옥과 잘 어울렸다. 익어가는 나뭇잎과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으니까. 이런 곳에서 집필활동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엄마손 순 단호박범벅  │ 12,500원


단호박범벅은 정말 맛있었다. 정성스럽게 빻아진 단호박에, 진한 농도의 팥이 올라가 있다. 잘 쑤어진 팥이 아니면 팥을 잘 먹지 못하는 내 입에도 아주 맛있는 팥이었다. 한옥에, 가을 하늘에, 볕에, 단호박이라니. "기분 좋아"를 연발하며 대청에 앉아 다소 뜨거울 정도인 볕을 온몸으로 느꼈다. 손님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 디딤돌도, 곳곳에 널려 말려지고 있는 호박과 홍고추도, 모두 눈에 행복하게 담긴다.


꽤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채 두 시간을 앉아있지 않았나 보다. 이 곳은 두 시간으로 이용시간이 제한되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두 시간이니, 혼잡하지 않게 운영되는 이 곳의 장점으로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두 시간은, 차를 마시고, 정취를 느끼고, "기분 좋다"를 서른 번쯤 내뱉기에 충분한 티타임이다. 그리고 오래 뭉개고 앉아있는 다른 손님들과 겹칠 일이 줄어드니, 조용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 곳에 왔다가, 북악스카이웨이를 구불구불 타고 올라가 팔각정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치 수연산방과 팔각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성북동 풍경은 한 세트 같다. 스카이웨이 자체는 볼 게 없지만, 팔각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수연산방에서 느꼈던 정취와 이어진다. 한국스런 정서가 이리도 예뻤던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풍요로운 정취가 있는 곳.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성북동 나들이었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29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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