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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Oct 18. 2020

바다보며 먹는 햄버거,
수제버거집 <버거플레이스>

버거보다 감동이었던 건 탁 트인 바다 뷰!?

수제버거집 <버거플레이스>의 바다 뷰.


평소 조용하고 차분한 것에 집착하는 내게, 평온함을 선사하는 공간이 갖는 매력은 참 크다. 그게 음식점일 때도 그렇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식사를 치르고 나면 내가 방금 먹은 게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때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속초에서 만난 수제버거집 <버거플레이스>는 왠지 모를 평온함을 주는 곳, 그래서 맛보다 공간적 만족도가 큰 곳이었다. 


지인들과 1박 2일로 다녀온 속초여행. 여행지를 떠나는 이튿날 버거집을 갔다. 속초까지 가서 왜 서양 음식이냐 싶겠지만, 전날 물리도록 각종 회와 해산물을 먹어댄 터라 아무리 양치를 해도 입에서 바다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 같이 여행한 이들도 다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튿날만큼은 손사래를 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음식이 손톱만큼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점을 찾았다. 지천이 해산물인 바다 속초에서.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바로 수제버거집이었다. 제육볶음도 후보에 올랐었지만, 그보단 왠지 기름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해안길에 위치한 수제버거집 <버거플레이스>는 4층짜리 건물로 되어있었다. 별생각 없이 1층에서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주문은 1층에서 하고 먹는 건 4층에서 먹으란다. 4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1층은 카페, 2-3층은 객실, 4층은 버거플레이스다.) "위에서 바다가 보인대. 뷰가 이쁘대" 단지 기름기가 필요했을 뿐, 바다 전망이야 전 날 횟집에서도 유리창 너머로 질리게 보았던 터라, 크게 그 말에 감흥이 일진 않았었는데...




맙소사. 주문표를 들고 4층에 올라가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창이 없는, 바다와 그 싱그러운 바닷바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커다란 루프탑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위에서 버거를 먹으라고 한 거였구나. 그제야 끄덕끄덕 이해가 됐다. 상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아니 버거집에 왜 이런 전망이!" 한적한 바다가, 통째로, 유리도 없이 눈 앞에 펼쳐져있었던 것이다. 누가 실수로 흘리고 간 풍경 같았다. 주문한 버거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난간에 매달려 바다를 구경하느라 엔돌핀이 솟구쳤다. 


<버거플레이스>의 수제버거와 바다 전경.


그래서 뷰가 좋은 대신 버거는 별로였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푸른 전경과 대비되는 빨간 컨테이너 속에서 셰프들은, 수제라는 것을 증명하듯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바로 지글지글 패티를 구웠다. 받아 든 버거 세트의 비주얼도 바다처럼 맘에 들었다. 매일 소고기를 손질해 만든 신선한 패티에서는 육즙이 줄줄 흘러나왔고, 알이 통통한 감자튀김도 정말 예술이었다. 거기에 스프라이트까지 한 잔 탁 걸치니 정말 이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청명한 가을 날씨에,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버거는 맛있고...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속초 정말 너무 좋아!


이 곳 <버거플레이스>의 루프탑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속초해수욕장이다. 평일에 온 덕에 인적이 드물었던 것도 한적하고 쾌적한 여행에 한몫했겠지만,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삼아 차분한 분위기를 뿜는 이 곳은 특별히 매력적이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테라스 특실에서 점심을 먹는 부르주아가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느리게 느리게 여행의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여행의 정수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엄연히는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줄 것처럼 넓고, 또 정적이다. 맑은 날의 푸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시끄러운 세상사가 잊히는 것만 같아 안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속세의 음식 버거를 먹으며 이런 정적인 바다를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래서 여행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주니까.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 바다를 배경으로 이런 느릿한 브런치를 하고 나니 어지러웠던 머리가 조금은 단순해지는 것 같았다. 여행길의 마지막에 요 수제버거집을 오게 돼서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속초의 매력인 너른 바다를 한눈에, 그것도 유리창 없이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한 끼를 즐길 곳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다. 공간의 미학과 맛이 둘 다 존재하는 곳, 버거플레이스. 버거라는 말 뒤에 왜 '공간(Place)'라는 말이 붙었는지 그 의미가 여실히 느껴진다.



버거플레이스 (Burger Place)
강원 속초시 청호해안길 31, 4층(조양동)
OPEN 11:00 - CLOSE 18:00
금,토 CLOSE 19:00 │ 수요일 휴무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27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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