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고 담백한 일본의 가정식은 어떤 맛일까
■ 호호식당 ( 好好食堂 )
서울 종로구 익선동 170-1 (종로3가역)
OPEN 11:00 - CLOSE 22:00
BREAK 15:00 - 17:00 │연중무휴
대학로점, 익선점, 성수점, 도산공원점
사실 이 곳을 가려던 건 아니었는데. 가을이 무르익는 어느 월요일, 연차를 낸 남편과 함께 익선동 나들이를 하러 갔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날의 일진은 사나웠다. 종로의 도로 사정과 주차난을 고려하지 않고 차를 끌고 갔다가 거의 한 시간을 주차로 고생했다. 겨우겨우 종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댔고, 이미 골이 난 상황에서 고픈 배를 움켜쥐고 힘겹게 향한 레스토랑은 하필 휴무였다. 분명 인터넷엔 휴무일이 안 적혀있었는데…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원래 가려던 레스토랑의 옆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낙점된 이유는 딱 하나. 이미 지친 우리의 시야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곳도 인기 맛집인지 손님이 적잖이 있었다. 기다림에 미숙한 성격이지만, 기와를 허물지 않고 보존한 특유의 인테리어를 보는 재미가 있어 웨이팅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여기도 공간이 주는 느낌이 참 좋은 곳이었다. 음식 맛도 보기 전에 철썩 마음에 들었다. 찾아보니 이곳 <호호식당>은 이미 대학로에서 이름을 알린 일본 가정식 집의 2호점이라고.
생소한 걸 먹고 싶었다. 익히 아는 돈카츠나 사케동 같은 메뉴가 아닌, 못 먹어본 요리를. 일본 가정식은 어떤 느낌인지 탐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꽤 심오하게 고민하다가 남편이 '우니파스타'를 주문한 것을 감안해, 나는 일본식 돼지고기찜인 '부타가쿠니'를 주문했다. 남편이 고른 게 화려한 요리니까, 나는 기필코 소박한 가정식을 먹어야지 싶었다. 거기에 곁들임 메뉴로는 기름 맛 물씬 나는 가라아게&감자튀김을 시켰다. (절대 2인분만 시키는 법이 없는 먹보 부부)
정갈한 가게의 분위기가 주는 느낌이, 왠지 음식 맛도 담백하고 맛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어여쁜 일식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 요리들을 보자마자 입맛이 핑 돌았다. 큼직한 우니가 곱게 올려진 오일파스타와, 소박하게 담긴 돼지고기찜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졌다. '우니파스타'는 직원분이 직접 우니를 으깨 파스타와 비벼주신다.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우니파스타는 신랑 입에 잘 맞았는지 신랑이 좋아했다. 우니가 많이 들어갔는데도 마늘향이 느끼함을 잡아주어서인지 우니 특유의 비린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간이 세지도 않은 것이 참 신기하게 '적당'했다. 명란이든 우니이든 이렇게 서양 음식에 찰떡같이 스며든 요리를 만나면, 요리하는 사람의 창의력과 요리 솜씨가 새삼 대단히 느껴진다.
그러나 나를 더 감동케 했던 건 내가 시킨 일본식 돼지 찜, 바로 부타가쿠니! '부타가쿠니'는 돼지의 삼겹살을 오랜 시간 조려 만드는 요리다. 우리나라로 치면 돼지고기 장조림 같은 음식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장조림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지방질이 거의 없는 부위로 만들어 다소 뻑뻑한 우리나라 장조림과 달리, 삼겹살을 이용해서인지 오랜 시간 졸여서인진 몰라도 고기의 식감이 너무도 부드러웠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거의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의 식감이었다. 부타가쿠니는 잘 조려진 무와 함께 담겨져, 그 위에는 얇은 파채가 올라가 있다. 이렇게 또 음식 조합 하나를 배워간다. 생 파채를 돼지고기 조림에 올려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소박한 메뉴 하나 만으로도 밥상이 너무도 충분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반찬 필요 없이 이거 하나면 밥도둑인 건 우리나라 장조림과 비슷한 것 같기도.
요즘의 나는 가정식에 빠져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요리이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은 그 이름 가정식. 우니파스타는 제법 화려하고 신박한 요리긴 했지만, 부타가쿠니는 내가 원하던 완벽한 가정식 느낌이었다. 흰쌀밥에 돼지고기와 무 조림, 파채, 그거면 충분한 한 끼. 이게 바로 행복한 가정의 식탁이 아닐까.
밥을 먹고 난 후, 계획해두었던 카페로 발길을 옮겼는데 웬걸. 하필 오늘 촬영이 있어서 전망 좋은 층은 이용이 불가하단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하루다. 할 수 없이 또 차선으로 들어간 카페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예뻤지만 윽, 내 스타일아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나을 정도로 디저트 맛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풍기는 공허한 화려함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오늘 일진 사나워. 진짜 최악이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이 "그래도 밥은 맛있었잖아" 한다. 맞다. 하나같이 계획대로 안 되는 데다 심하게 맛없었던 카페 덕에 잠시 잊었지만, 우연히 들어간 <호호식당> 만큼은 소담스러운 내 취향에 정말 제격이었지! 기와집 틀도, 요리가 담긴 귀여운 접시도, 요리의 맛도...
집에 와서 다시 떠올려봐도 부타가쿠니는 정말 탐나는 반찬이다.
언제 레시피를 공부해다가 남편이랑 밥반찬으로 만들어 먹어봐야지!
삼겹살과 무, 파채. 머릿속에 적어두었다.
우리 집의 식탁에도 풍성한 행복이 깃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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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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