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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23. 2020

자기부정의 슬픈 결말,
영화 <리플리>

남의 삶을 훔치려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리플리 (The Talented Mr.Ripley, 1999)
제작 : 미국, 범죄·스릴러 │ 감독 : 안소니 밍겔라
출연 : 맷 데이먼(리플리), 주드 로(디키), 기네스 팰트로 (마지)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타임 : 139분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정식으로 인정된 정신질환명은 아니지만, 무능력한 개인이 과한 성취욕과 열등감으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로 꾸며내는, 일종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컫는다. 공상허언증 정도로 번역이 가능할까. 이 증상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디서 기인한 말인 지는 몰랐었는데, 영화 <리플리>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이 영화 <리플리>, 그리고 영화의 원작 소설인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톰 리플리'에게서 유래된 말이라는 걸.



가난하지만 영민한 청년, 톰 리플리.


주인공 '톰 리플리'는 아주 가난한 청년이다. 피아노 조율사, 호텔 벨보이로 일을 하며 기차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허름한 집에 사는 신세지만,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는 종종 다른 신분의 연기를 한다. 그날도 리플리는 프린스턴 대학 재킷을 훔쳐 입고 피아니스트 흉내를 내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선박재벌 '그린리프'의 눈에 띄게 된다. 꽤 신뢰감을 주는 인상인 리플리에게 그린리프는, 이탈리아에서 돈이나 까먹고 있는 자신의 한량 아들 '디키'를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천 달러라는 큰 보수를 주면서. 가짜 신분이었지만, 리플리는 큰 거부감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디키를 뉴욕으로 돌아오게만 해주고 손을 떼면 일을 그르칠 리 없다고 생각했을 터. 



리플리의 눈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디키.


그렇게 가게 된 이탈리아의 한 해변. 강렬한 햇볕이 내려쬐고 여유와 낭만이 즐비한 그곳에, 매력적으로 그을린 디키가 있다. 예쁜 여자 친구까지 있는 디키는 엄청나게 잘생기고 섹시하다. (외모가 그야말로 절정에 달하던 시기의 '주드 로'가 디키를 연기했다.)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 씬처럼 존재감이 넘치는 디키를 보고 나자, 왠지 리플리가 디키를 흠모 내지는 질투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가.


디키는, 프린스턴 대학 동창이라는 리플리를 별 의심 없이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디키의 연인인 '마지'와도 함께 어울리며 셋은 이탈리아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그들과 어울려 다니며 리플리의 마음에 자라나게 된 탐욕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부유한 생활과 세련된 문화가 좋았던 리플리는, 그린리프 씨가 준 돈을 디키와 쓰며, 뉴욕으로 디키를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은 애저녁에 까먹어버린다. 천년만년 디키와 마지와 풍요롭게 보낼 수 있을 줄 알았을까.




하지만 리플리가 착각한 게 있다. 리플리는 그 천 달러 말고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고, 디키와 마지는 돈이 남아도는 상류층 자제라는 것. 아무리 함께 어울린들, 리플리는 신세 지는 사람일 뿐 '그들'이 될 수 없었다. 도통 멋이나 사치라고는 모르는 신기한 친구 리플리를 몇 번은 데리고 다녀주었으나, 디키는 머지않아 리플리에게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것도 모른 채 리플리는 디키, 마지와 함께하는 삶을 목표로 삼게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천 달러라도 챙겼어야 했지만 그 마저도 다 사라지고 난 뒤였으니. 


그런 리플리와 이제 디키는 작별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리플리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디키의 모욕적인 언사를 듣다가 그만 실수로 디키를 죽이고 만다. 리플리는, 죽어 피를 쏟아내는 디키를 끌어안고 한동안 그를 느낀다. 죽어서야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디키를. 여기까지는 내내 버림받은 리플리가 가여웠다. 가난한 소년이 부잣집 도련님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 정도로 보였으니까. 그러나 리플리가 일반 사람의 사고방식과 확실히 다른 지점은 그 이후부터다.


머리만큼은 비상했던 리플리는, 디키의 시체를 처리한 뒤 자신이 곧 디키가 되기로 한다. 소름 끼치는 발상이었다.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평소 익히 보아왔던 디키의 필체와 말투 등을 그대로 살려 대담하게도 디키의 행세를 하고 다닌다. 디키의 얼굴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하고만 교류하면서. 


그렇게 아슬아슬한 디키 행세가 이어지고, 그는 정말 자신이 디키라도 된 양 고급 호텔에, 위스키에, 정장에 취해 지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어느 날 디키가 죽던 날 함께 탔던 보트가 발견되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리플리는 이 압박에도 지지 않고 또 다른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디키가 자살한 것으로 유서를 꾸며내면서. 그리고 정말 대단하게도 모두가, 이 사기꾼 리플리를 믿는다. 리플리에게 아들을 데려와달라며 부탁했던 그린리프조차도, 리플리에게 되려 아들의 고마운 친구라면서 자신의 유산을 상속하기까지 하는데...



스스로 괴물이 된 리플리.


완벽한 완전범죄였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주인공이 모든 이들의 의심을 피해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고 축복을 맞이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더러웠고, 축하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리플리에 대한 연민보다는, 디키는 무슨 죄일까, 아들을 죽인 놈에게 유산까지 상속한 그린리프 씨는 무슨 죄일까, 하루아침에 연인을 잃은 마지는 또 무슨 죄일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욕망을 위해 그들이 희생될 가치가 있었던가. 아니. 절대로. 


과정을 뛰어넘어, 또는 생략해 원하는 삶을 얻는 것은 반칙이다. 주인공인 리플리를 응원할 수 없는 까닭이다. 리플리에게 묻고 싶다. 대체 왜, 가난하고 힘없는 자신을 져버린 걸까. 왜 자신을 똑바로 이해하고 일으켜주지 못하고, 그냥 남이 되고 싶었을까. 정말 그것말곤 방법이 없었을까. 모두를 속이고 부당한 방식으로 결국 원하는 삶에 다다른 리플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개인적으로, 자격지심을 해소하는 법은 딱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어떻게든 노력해서 원하는 위치에 다다르거나, 2. 노력해도 안되면 그냥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이 두 가지 외의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쓴다면 모름지기 탈이 나게 되어있다. 리플리처럼 공상허언증에 준하는 정신질환에 걸린다든지, 죄 없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리플리의 남은 삶은 관객의 상상에 넘겨졌지만, 나는 리플리의 남은 삶을 알 것 같았다. 리플리는 아마도 처절하게 불행할 것이다. 그리고 외로울 것이다. 모두를 철저히 속였대도, 자신만큼은 스스로의 허물을 끊임없이 직면해야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정당하게 얻은 게 없다는 걸 제일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과민과 끝없는 자기부정으로 결국엔 미쳐버리고 말 거란 걸,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를 부정하며 옥죄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그러니 나를 버리고 더 멋진 남의 흉내를 내는 것보단, 조금 모자라도 나를 이해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더 좋을지 모른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32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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