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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미안해

우리 어른들이 바꿔야 할 세상, 노력할게 꼭.

[브런치].jpg


토요일 밤이면, 나는 항상 남편과 함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챙겨보는 편이다. 워낙에 범죄심리학을 좋아해서 살인사건 얘기만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것도 이유지만, 가끔은 운 좋게 살인 말고도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번 회차가 그랬다. 뜨거운 감자, 바로 정인이 사건이 다뤄졌다.


16개월의 나이에 양부모의 손에 처참하게 학대되어 죽은 한 아기에 대해, 지나가는 뉴스로 들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캐리어에 담겨서 죽은 아이, 친부모의 학대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해 구조된 아이 등등 주변에서는 심심찮게 아동학대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가는 뉴스로 들으면 세상 모든 일은 먼 나라 어딘가에서 교통사고가 났더라는 이야기쯤으로 축소되어 들리곤 한다. 그래서 정인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떠들썩할 때에도 미안하게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이 정인이 사건을 꼼꼼히 들어보게 된 것이다.




입양 후 온 몸이 멍투성이인 정인이. (사진 : SBS <그것이알고싶다>)


방송을 보니, 가히 놀라웠다. 아니 가관이었다. 솔직히 이 사건을 제대로 알기 전 나는, 아이가 워낙 어리니 작은 충격의 학대들이 누적되어 죽은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죽기 전 아이에게 가해진 충격은, 교통사고에 해당하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끊어지기 힘든 배 안쪽의 췌장이 절단되었고, 으깨진 장기에서는 공기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작은 배는 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는 성인도 참기 힘든 정도의 고통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 미어지는 건, 그 고통을 무표정한 상태로 견디고 있는 cctv 속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들.


어찌 신음 한번 내지 않고 저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심한 정서 박탈에 의한 무감정 상태. 2살이 갓 넘은 아이는,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로부터 아무런 정서적 애정을 느끼지 못했고, 매일매일이 처참한 학대와 방임 속에 있다가, 결국은 어떤 삶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고작 2살 된 아이의 삶이, 고통도 초연하게 하는 지옥이었던 것이다.



jun0001.jpg 이렇게나 예뻤던 정인이. (사진 : SBS <그것이알고싶다>)


말 못 하는 아기, 말 못 하는 작은 짐승들,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우들. 난 이런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을 악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들에게, 학대를 가하고 모욕을 일삼고 급기야는 생명을 앗아가는 인간을, 어찌 고도문명을 학습한 인류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미 인간됨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이 아닌가. 약자를 제 멋대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사이코패스들에게는, 합리적인 수준의 처벌 그 이상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함무라비식 처벌이라던지!)


나처럼 정인이 사건을 알음알음 알다가, 방송이 나간 후에야 제대로 이 사건을 보게 된 사람들의 2차 공분으로 인해, 정인이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제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입양해 학대하고, 끝내는 숨지게 한 양부모 연놈들을, 많은 사람들이 엄벌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나도 그 마음을 보태기 위해 이렇게나마 글을 쓰는 것이고.


방송을 보면서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정인이를) 입양했으면 정말 예쁘게 키웠을 텐데..."

부질없는 말이지만,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정말 그 양부모에게 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정인이의 묘. (사진 : SBS <그것이알고싶다>)


가끔, 세상은 왜 어떤 존재에게 그렇게 가혹한 지 모르겠다. 친모에게서도 버려진 아이를, 왜 좀 더 나은 가정으로 보내주지 않았을까. 왜 하필 인성이 바닥인 양부모의 손에 맡겨지게 했을까. 하필 왜 또 수사기관은 이 사건의 실체를 3번의 기회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아이가 죽은 뒤에야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알게 된 우리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여러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이 말 뿐이다. 이것으로 죽은 아이의 영혼을 달랠 수만 있다면, 나도 백번이고 천번이고 외치고 싶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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