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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Feb 25. 2021

내 첫사랑,  교회 오빠 아니고 교회 남자애.

손 한 번 못 잡았는데도 왜 때문에 기억이 나니.


요즘 애들은 너무도 조숙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키스도 하고 성인 뺨치는 러브를 한다지만, 90년생인 나의 학창 시절은 일부 날라리 같은 애들 빼고는 수능을 볼 때까지 남자랑 손 한 번 잡을 일이 없었다. 날라리는커녕, 그런 애의 옆에 앉아 연애 경험담을 턱 궤고 듣던 나로서는 당연히, 연애는 남 일이었다.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열렬히 좋아했던 애는, 친구를 따라 간 교회에서 만난, 아니 '보게 된' 한 남자애였다.


그때가 고1이었는지 고2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언덕 위에 있던 그 교회에서 내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던 그 남자애는, 키는 멀대같이 크고 몸은 말라비틀어진 병약미 넘치는 미소년이었다. 조금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으나, 마치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남자애였다. 나는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섬기며 열심히 교회를 나갔다.


그런데 그때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내내 줄곧 그 애를 짝사랑하면서도, 겨우 나 따위가 그 멋진 애를 좋아한다는 게 밝혀지면 비웃음을 살까 봐, 나는 일부러 다른 남자애들을 좋아하는 척했다. 것도 아주 열심히. 그래서 그 소문이 그 애의 귀에 들어가 혹시라도 모를 질투심을 유발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 허무맹랑한 논리에 내가 원하는 결과가 주어질 리가 없었다. 그 애는 그런 내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내가 엄한 남자애들과 시답잖은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되려 그 애의 눈에 나는 "쟤는 참 온갖 남자애들을 좋아하네."로 비치기 일쑤였을 노릇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전략을 쉬이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애를 자극한다는 명목으로, 나는 그 애의 친한 친구들에게 좋아한다고 골고루 고백하고, 나보다 한 학년 낮은 남자애랑 잠깐 사귀고, 그 애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다른 대학생 오빠들과 웃고 떠들고 가끔은 손도 잡고 해 보았으나 역시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어떤 난리부르스를 쳐도 그 애 앞에 난 되지 않는다는 걸.


그렇게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그쳤던 고등학생 시절이 끝난 후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별안간 그 애가 호주로 유학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터넷 소설이나 로맨스 영화처럼 꼭 이런 애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 그때 완전히 나는 포기했다. 나 혼자 시작해서 나 혼자 끝난 내 어린 첫사랑. 그래도 함께 주고받은 것이 없으니 크게 마음 아플 일은 없었던 건 다행이었을까.




병약미로 가득했던 나의 첫사랑님.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이제는 결혼하여 잘 살고 있는 서른 줄의 내게, 첫사랑이 누구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고등학생 때 멀리서 보기만 하며 가슴앓이한 그 애라고 말하겠다.


"야 그래도 키스 정도는 해봤어야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냐?"라고 누군가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정작 첫 키스를 나눈 상대에 대한 기억은 휘발된 지 오래여도, 말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인 그 애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플라토닉을 믿는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하녀 그리트를 사랑했던 화가 베르메르의 사랑이 얼마나 '찐'이었는지 왠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아이를 여섯이나 줄줄이 낳아준 자신의 아내보다, 어쩌면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그리트에 대한 그 마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열렬했을지를. 그 병약미 넘치던 소년에 대한 내 마음이 그 비스무리한 사랑이었던 것처럼.


지금도 몇 다리를 건너면 그 애의 소식쯤은 간단히 알아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애가 호주에서 언제 돌아와 지금은 무얼 하며 누구와 결혼해 살고 있는지, 아이는 있는지, 굳이 알아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기억하는 그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내 어줍잖은 욕심이랄까. 마치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언덕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손을 흔들며 내려오던 그 애의 첫인상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양 볼에 깊게 패인 보조개, 쌍꺼풀 없는 눈, 까무잡잡한 피부, 길다랗고 마른 몸. 그 애가 매주 토요일 로또를 사는 맛에 사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건 왠지 믿고 싶지 않다.


그 이후로 내가 교회에 나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여러모로 힘든 시절이었던 그때. 나의 로망이 되어주었던,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음으로써 어쩌면 곱게 내 기억에 남아준 그 애에게 고맙다. 어디선가 건강히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나의 첫사랑 J.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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