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려고 직접 만들다가 치킨을 망쳤어요
올해 초 부부 중 '아내'직을 수행 중인 내가 일을 관둔 관계로,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할 때보다 지출을 줄여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코딱지만 한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월 꼬박 백 O십(부끄러워서 못 밝힘)을 벌어다오던 내 벌이가 통째로 없어졌으니, 전처럼 써재끼다간 까딱 '손가락 빤다'를 절로 실현하게 될 지경이다. 그래도 나름 우리 부부는 평균 이상의 경제관념을 가졌다고 자부하기에 절약하자는 결심이 매번 의기양양한데.. 그런데.. 외식도 줄이고 평소보다 장도 덜보고 옷도 안사고 지출은 어쨌든 줄기는 줄었지만 딱 하나 못 참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치킨이다.
월화수목 알뜰살뜰 나물반찬에 고기는 덩어리째 사서 소분해서 먹다가도 금요일. 만인이 고삐를 풀고 치팅데이를 즐기는 그 금요일만 되면, 나도 뭔가 모르게 현명한 밥상 따위 팽개치고 게걸스레 치킨을 뜯고 싶어 진다. 금요일 저녁의 치킨만큼 풍족한 저녁상이 있을까.
우리 집 앞에는 네임밸류는 좀 떨어져도 그 어떤 가게보다 신선하고 맛있게 치킨을 튀겨내는 치킨집이 있다. 가격도 브랜드 치킨보단 몇 천 원 더 싸서 만 8천 원 정도.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이 출시되는 브랜드 치킨을 두고도 우리 부부는 거의 매주 그곳에서 치킨을 시켜먹고는 했었는데, 그것도 뭐, 둘 다 돈을 벌 때 이야기였을까. 얼마 전, 통장잔고를 보던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출을 줄여야 돼. 식비도 줄여야 돼."
"나 백화점 다닐 때보다 식비 엄청 안 쓰는 편인데..."
"알지 알지. 음, 배달음식을 줄여야 할 것 같아."
내 기억에 배달음식도 겨우 치킨 하나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치킨도 매주 시켜먹으면 한 달이면 십만 원.. 아 그렇네 줄여야 되겠네.
이런 식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아야 한다니 서글프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집 가장이 말하길 그게 우리 형편이라는데. 더구나 돈을 벌고 있지 않은 건 나인데. 그러나 내 위장에까지 절약정신이 새겨진 건 아니었고, 어김없이 이번 금요일도 치킨이 먹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치킨 먹고 싶은데 내가 치킨 만들어볼까?"
생닭 한 마리에 비싸야 6,7천 원. 거기다 집에 있는 튀김가루 반죽 입혀서 튀기면 그게 치킨이잖아? 아주 단순한 자신감에서 시작된 빛나는 절약정신이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에 배달음식 줄이자고 한 남편은 고새 자기가 한 말을 잊었는지 "그냥 배달시켜 먹자요" 이런다. 다음 달 카드값 낼 땐 또 "배달음식 줄이자" 할 거면서. 됐어. 난 치킨을 튀길 거야.
집 앞 마트에서 생닭 한 마리를 6천 원에 구입해 도마 위에 올렸다. 난 지금 2만 원에 팔리는 치킨을 6천 원에 만드는 창조경제를 하고 있는 거다!
취향을 밝히자면, 나는 귀차니즘이 심한 편이라 손으로 잡고 먹어야 하는 뼈 있는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포크로 폭 찍어 먹는 순살치킨을 애정한다. 그런데 내가 사 온 닭은 토막 내지 않은 그냥 닭 한 마리였으며, 제 아무리 푸른 초원은 못 걸었을지언정 케이지 안에서만 살았을 이 닭도 '뼈'를 갖추고 있음은 당연지사. 사면서도 손질에 대한 걱정이 살짝 들긴 했지만, 그래도 칼로 슬슬 베어내면 살이 쉽게 발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건 나의 거대한 착각이었다.
고기 소분을 좋아하는 내가 여태껏 칼질해본 거라곤, 도축과정에서 뼈와 진작에 분리된 돼지나 소의 거대 살덩어리였음을 왜 망각했는가. 심지어 닭도 부위별로 편리하게 나눠서 패킹된 것만 사곤 했었더랬지. 완연한 실루엣을 갖춘 닭 한 마리는 거의 처음 사 봤는데, 이 원형의 닭은 생각보다 살 안에 뼈를 촘촘히 머금고 있었다. 발라낸 살에도 비계나 불순물이 많아서, 하나하나 다 바르고 떼어내고 보니 그만 기진맥진이 되고 말았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겠으나 발라낸 모양은 더 기괴했다. 내가 아는 동그랗고 예쁜 순살이 아니었다. 그다지 먹고 싶지 않은 처참한 모양의 살들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흡사 살육의 현장과도 같았다.
연이어 2차 지옥의 시작. 애초에 치킨파우더를 사서 물만 섞어 반죽했으면 치킨 맛이라도 났을 텐데. 돈 아낀다고 집에 있는 튀김가루로 치킨 맛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나에게, 요리의 신께서 벌을 내리고 있었다. 하필 집에 있었던 튀김가루가 조금밖에 안 남아 어쩔 수 없이 부침가루를 섞어야 했는데.. (요리의 신이 대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치킨에 부침가루가 웬 말이냐고? 두 가루의 기능이 전혀 다른 건 물론 잘 알지만, 변명을 하자면 다시 튀김가루 하나 사러 나가기가 몹시 귀찮았기 때문이다. 안다. 올리고당 없다고 물엿 넣고, 고추장 없다고 된장 넣는 '요리 알못'의 전철이란 걸. 결과는 빤하단 걸.
그렇게 온갖 거 다 무시하고 만들어 탄생한 나의 홈메이드 치킨! 두구두구두구.
해괴했다. 매우매우. '망한 치킨 대회'가 있다면 예선쯤은 가볍게 넘길 정도의 비주얼과 맛을 보장했다. 수습하기도 전에 남편이 퇴근하는 바람에 어찌어찌 망한 치킨을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아는 그 치킨이 아니었고, 살면서 아내의 음식에 거의 '맛없다'라고 한 적 없는 착한 남편도 이건 맛없다고 했다.
귀한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요식업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기똥찬 맛의 치킨을 만들어내는 가게가 널리고 널렸는데, 고작 집에 있던 튀김가루, 아니 심지어 부침가루를 들고 덤비는 주부가 어찌 그 치킨 맛을 따라잡으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주방은 초토화되었는데, 만들어진 치킨은 맛도 없고... 설거지를 하는데 기분이 울적했다. 치킨은, 시켜먹자.
치킨으로 울적해진 기분에 더 기름을 붓는 해프닝도 추가됐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이 거실 쪽에 딸려있던 창고를 오랜만에 열었는데, 분명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시커먼 곰팡이가 벽 한 면 가득 슬어있었던 것. 망친 치킨만큼이나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거기엔 우리가 덮고 자는 이불도 보관하고, 지난 계절의 옷들도 개어 쌓아 놓는 곳이었다. 이불과 옷에도 곰팡이가 번졌으면 어떡하지. 설거지를 하다가 그만 콧물로 가장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우울감은 오래전부터 쌓여온 두터운 퇴적암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우울은 갑작스러운 사건들로 순식간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분명 오늘 하루는, 닭을 사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꽤 괜찮았었다. 하지만 치킨값을 아끼려다가 해괴망측한 치킨을 만들어냈고, 초토화된 주방은 평소보다 치우는데 1.5배는 더 걸렸고, 하필 이런 날 창고의 곰팡이를 발견해버렸고, 이 모든 상황들은 "우리가 가난해서"라는 궁극적 망상에 도달해 우울을 몰고 왔으니.
"나 우울해."
남편은 언제나처럼 비관적이지 않은 태도로 창고의 곰팡이를 열심히 닦아냈다. 나를 위로하는 말의 톤도 매우 덤덤하다.
"자기 곰팡이 때문에 우울해? 우리 더 열심히 살아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자"
곰팡이 때문 만은 아니고, 치킨 때문도 있어. 아니, 되게 복합적이야.
뽀드득하게 설거지를 하고 시트러스 향의 캔들을 환하게 켜놓으니 꿉꿉한 기분이 좀 사라졌다. 꽃 피는 3월인데 강원도에는 난데없는 폭설이 내렸다.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는 남편은, 다니던 스키장이 거의 폐장 분위기였다가 눈 소식을 듣고는 환호를 내질렀다. 그는 맛없는 치킨을 먹고 곰팡이를 닦고도 밝은 표정으로 보드를 타러 갔다. 스키장으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며 말했다.
"보드 동호회 사람들한테 나 치킨 망친 거 얘기하지 마!"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건, 고작 치킨값을 아끼려다 피어난 내 왜곡된 우울감이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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