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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할머니

남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정사각형] 03(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나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다.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연세 여든아홉까지 무병장수하셨지만 돌아가실 때 내 나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나마 조금 있는 편이지만, 할머니는 항상 방에만 계셨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내 궁둥이를 두들기며 "우리 똥강아지" 하는 다정한 할머니는 아니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만 떠올리면 애틋한 감정에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들을 마음 깊이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 남편은 어릴 때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 두 분 다 공무원이셨던 부모님 대신 늘 외할머니가 그를 무릎에 앉혀 키웠다고 들었다. 그래서일지 남편은 늘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할매, 우리할매 하면서. 가끔 티브이에서 할머니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조용해져서 옆을 훔쳐보면 애기처럼 삐질삐질 눈물을 흘리고 있곤 했다. 나도 할머니와의 그런 기억이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나에겐 없는 어떤 정서를 가진 남편을 보며 그 모습이 귀여운 동시에 부러운 적이 많았다.


최근 남편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눈이 침침해져서 미칠 노릇이던 그 주에, 모니터를 10분만 쳐다봐도 힘들 정도로 글쓰기에 난관을 빚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울먹 하는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챌 수 있었다. 한 달 전쯤부터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병원에 계시던 할머님이 결국 돌아가신 거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울기는커녕, 검은색 옷이 뭐가 있었더라 머리를 굴리고, 부리나케 화장을 하고, 아무렇게나 구겨진 머리를 고데기로 펴고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집에 도착했을 땐 마음 깊이 헤아리진 못했지만 지긋이 안아주었다. 남편의 차를 타고 세 시간 가까이 걸리는 강원도로 향하면서 남편의 심정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나에겐 없었던 할머니와의 끈끈한 애정. 그런 분이 돌아가시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고.


그리고 속죄했다. 나에게 없는 할머니라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에 대해. 까탈스런 결벽증 탓에 할머님이 드시던 잡채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았던 것에 대해. 결혼식날 혼주 메이크업 때 할머님도 끼워달라는 신랑의 말에 "부모님들까지만 하는 거야!"하고 거절했던 것에 대해. 부모님이 일을 하신 틈을 타 내 남편을 어여쁘게 돌봐주신 분이 이제,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더 신경 써드릴걸, 할머님과 반찬 좀 같이 먹으면 어떻다고 그 까탈을 부렸을까, 혼주 메이크업에 할머님 한 분쯤 더 넣는 거 뭐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생색을 냈을까. 모든 게 마음에 걸렸다.


남편의 할머니 사랑에 나도 깨달아가는 것.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심 걱정했다. 가족과의 사이가 굉장히 좋은 시댁 분들이 모두 울고 계시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동시에 조문객들을 챙겨야 하는 입장의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침착하셨고 적당히 사무적이셨다. 남편도 막상 장례식장 안에서는 그닥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례 이틀 차 아침. 비로소 모든 이들이 무너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조문객이 오지 않는 아침, 더 이상 챙겨야 할 침착함이 없는 그 아침, 입관식이 있었다. 사실 난 입관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장례지도사가 가족분들 다 따라 들어오래서 '손주 며느리인 나도 들어가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따라 들어갔을 뿐이다. 그랬더니 하얀 천에 덮인 할머님의 시신이 있었다. 엊그제까지 분명히 온기가 있었을 몸이었다.


모두가 울었다. 다섯 명의 장성한 자식들과, 사위와 며느리와,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 그리고 할머님이 드시던 잡채에는 손도 안 대던 못된 손주며느리인 나까지. 할머님을 거의 모시고 살았던 우리 어머님은 "엄마아 잘 가아"하면서 목놓아 우셨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의 빗장이 덜컹하고 풀린 걸까, 눈물과 콧물이 한데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마스크가 아니었으면 정말 못 봐줄 몰골일 정도로, 울었다. 내 친할머니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나였는데... 이 슬픔은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걸까.


입관, 발인. 손님을 맞아야 하는 순간에는 냉철했다가, 어르신들이 눈물범벅이 되는 순간을 그렇게 딱 두 차례 보았다. 그리고 그때면 할머님과 말 한마디 제대로 안 나눠본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남편과 할머니와의 애정에 대해서는 난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나도 함께 슬프다는 걸. 그게 가족이라는 걸.


긴 긴 장례가 끝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모님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는 친정엄마가 한가득 반찬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왔다. 딸이 좋아하는 멸치볶음이랑 메추리알 장조림이랑 두부조림이랑.. 사위가 좋아하는 진미채도. 이걸 보내겠다고 작은 부엌에서 몇 시간이고 음식을 지지고 볶고 우체국에 다녀왔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제는 또 엄마가 "보고 싶다~ 언제 와?"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사실 출간을 준비 중이라 출간 때까지는 친구도 안 만나고 친정집에도 안 내려가려고 독하게 마음먹었었는데. 남편 할머님 장례식의 여파였을까, 엄마한테 가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졌다. 물론 딸이 오면 요리고 청소고 배로 고생할 엄마지만, 엄마가 나 보는 게 행복이라는데 어찌 안 가겠는가.


자식밖에 모르는 우리 엄마, 아빠, 어머님, 아버님.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에게 언젠가 닥칠 또 다른 슬픔이 되도록 최대한 최대한 유예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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