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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 선생님이 더 불편해요

여자라고 여자가 더 편한 건 아니라고요

[정사각형] 05(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오랜만에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나는 병원을 고를 때 늘 다른 기준보다 접근성을 더 우선시하는데 산부인과도 아니나 다를까. 여의사나 전문의가 있는 병원인지,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지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하는 산부인과가 내가 다니는 병원이다. 단지 접근성만을 놓고 고른 병원인데, 운 좋게도 그곳은 전문의와, 여의사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이곳의 간호사는 늘 묻는다.


“원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세요?”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는 나.


“아니요, 그냥 빨리 되는 분으로 해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나에게 배정되는 선생님은 늘 여선생님이었다.


산부인과를 다니는 여성들은 모두 그 굴욕적인 의자를 알 것이다. 방금 전까지 새초롬하게 옷 속에 가려져있던 내 하체를 시원하게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선생님 앞에 환부를 펼쳐 보여야 하는 그 의자. 아마도 이 굴욕적인 순간 때문에 다수의 여성들이 여선생님을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좀 특이한 케이스일까. 나는 여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는 게 늘 더 부끄러웠다. 동등하고 싶은 여성에게 내 치부를 보이는 느낌이 왠지 더 난감하달까. 병원을 방문했다는 건 당연히 환부에 불편함이 있어서일 경우가 큰데, 같은 여자 눈에 내가 얼마나 관리에 소홀한 여자로 비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부끄럽곤 했던 것이다. 그럴 때면 내가 얼마나 상식적이고 건강한 성생활을 해왔는지 증명해야 했다. 여성 그곳의 질병은 곧 자기 관리 소홀, 남자들과의 문란한 관계, 무지함, 빈약한 위생관념 등으로 비치기 일쑤였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경험의 의거한 에피소드지만, 내 산부인과 진료 경험에서 늘 미간을 찌푸리고 쓴소리를 하는 건 여선생님들이셨다.


이를테면,

“어휴, 내가 본 분비물 중 최악이네요...”

“관리 잘하셔야 돼요. 본인의 몸은 본인이 지키셔야지.”

하는 말들.


이런 말들을 듣고 나면 같은 여자로서 더 자존심이 상했다. 넌 무슨 여자애가 왜 그렇게 네 몸을 대충 돌보니, 하는 혼쭐의 눈빛은 집에 와서도 영 찝찝하게 맴돌곤 했다.


나에겐 늘 무서운 산부인과 여선생님. (사진출처:그레이아나토미)


반면 내 기억 속 남자 산부인과 선생님들은? 느낌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감정적 개입이 적어서 편하게 느껴졌다. 전문의로서 질환에 대한 이론적인 걱정은 하지만 대단히 사무적이거나, 바야흐로 성인지 감수성이 폭발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그게 진심이 아닐지라도) 최대한 여자 환자인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물론 쓴소리 하는 여선생님들이 나를 더 깊은 교감의 눈으로 보았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지적이 더 불편한 사람인 걸 어쩌랴.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분들이 대개 남자 선생님들이었기에, 나는 산부인과에서만큼은 특이하게도 남자 선생님을 더 선호했다.


“그럼 남자 앞에서 다리 벌리는 수치심은 괜찮아?”라고 묻는 친구들이 있는데, 내가 좀 이상할지는 몰라도 응, 난 그건 또 괜찮더라.


어차피 하루 종일 여성의 그곳을 ‘환부’로서 들여다보는 분들이 아닌가. 여자라서 부끄럽다는 느낌보다는 타인 앞에 은밀한 곳을 보인다는 부끄러움이 더 큰 것이기 때문에, 딱히 남자 의사가 더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게, 남편과 티브이를 보다가 우연히 왁싱하는 남자들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그때 남편이 비슷한 논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왁싱해본 남자들이 그러는데, 같은 남자한테 받는 것보다 여자한테 받는 게 차라리 낫대”


왜냐고 물으니, 왁싱을 받을 때 시술자와 물리적인 접촉이 있으니 남자의 그곳에 어쨌든 반응이 오게 되어있는데, 그걸 여자가 지켜보는 것보다 같은 남자가 지켜보는 게 더 굴욕적이라는 거였다.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약을 먹으면 낫는 가벼운 질병일 뿐인데.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아무튼 난 원하지도 않았는데 간호사가 센스 있게 여의사를 배치해준 덕에, 나는 오늘 또 산부인과 여선생님께 혼나고 돌아왔다. 곰팡이 균을 없애준다는 몇몇 약을 처방받았고, 결혼도 하셨으니 이제 슬슬 엽산도 드셔야 한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뭘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자는 아이를 잉태할 순간을 위해 자신의 그곳을 알뜰살뜰 챙기지 않으면 꼭 무식한 여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 인생엔 출산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참 많은데...,


저녁을 먹고 알약을 챙겨 먹으며, 언젠가 내가 산부인과에서 칭찬받는 날도 올까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우듬지 환자, 이렇게 관리를 잘하셨다니, 정말 최고! 최고의 자궁이 되시겠다!”


그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다음에 갈 때는 “원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세요?”라고 간호사가 물을 때, “남자 선생님으로 해주세요 꼭이요!”라고 해봐야지. 간호사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살짝 걱정이지만. 그럼 또 이렇게 말해야지.


“왜요! 여자라고 꼭 여자가 편한 건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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