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0. 2021

엄마 딸은 곱지만은 않아

모든 엄마는 자식이 아무 상처 없기를 바라는 존재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스무 살 때 만나 교제했던 40대 아저씨와의 일화를 썼다가, 그걸 엄마가 읽게 됐다. 사실 엄마가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하트를 아주 간헐적으로 눌렀고, 한 번도 댓글을 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유심히 꼼꼼하게 내 글을 읽는다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한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그 글을 올린 다음날 엄마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차라리 거기에 '너 미쳤니' 하는 꾸짖음이 들어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카톡은 미안해로 시작해서 미안해로 결론지어져 있었다. 하물며 엄마가 카톡을 보낸 시간은 새벽 두 시에서 세시로 넘어가던 시간. 내 연애담을 읽고 충격받은 엄마는 그 시간까지 잠을 청하지 못한 것이다.           


나이 든 아저씨의 구애에 넘어가 3년이란 시간을 음지에서 보낸 그 연애를 두고, 엄마는 ‘유린’이라고 했다. 지켜주지 못했다며 자책을 하는 내용과 함께, 얼마나 힘들었니 미안하다 내 새끼야, 하는 말도 적혀있었다. 눈물이 났다. 서른두 살이나 먹었지만 난 아직 엄마의 새끼였던 것이다.        



   

내 자식만은 상처가 없기를.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내 연애사는 70%가 상처로 범벅되어있지만, 엄마가 아는 내 연애는 극히 일부였다. 누가 봐도 괜찮은 상대만 골라 데려가서 보여주었고, 더구나 최종적으로 순한 맛의 사위를 안겨주었으니 그럴 수밖에. 한때 딸의 연애 자존감이 정말 바닥을 쳤었더란 걸, 그래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그 누구라도 만나 그 자존감을 채워야 했었다는 걸 굳이 엄마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엄마는 딸에게 그런 굴곡진 연애사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를 놀래키지 않으려면 끝까지 봉인했어야 했나.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나이 든 아저씨와의 그 연애는 결국 나뿐 아니라 엄마에게까지 상처를 주었으니, 백번 생각해도 과연 잘못된 연애다. 

    

엄마는 10년 만에 딸의 충격적인 연애담을 알게 되고는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들었댔다. 요번에 신랑과 함께 친정집에 갔을 때에도 엄마는 또 그 이야길 꺼냈다. 신랑이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 조심스레 물어오는 엄마.           

“훈이도 아니?”          


마치 때 한 점 묻지 않은 내 신랑이, 나의 그 치욕스런 연애에 대해서 몰라야 한다는 어떤 바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신랑은 엄마만큼이나 내 글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므로 당연히 알고 있었다. 엄마의 탄식이 느껴졌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저마다 부모님에게 알리지 못한 연애 하나씩은 품고 있지 않을까. (물론 건강한 연애만 한 행운아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도저히 감당 못할 나이차의 놈팽이를 만났다든지, 혹은 욕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놈을 만났다든지,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는 놈을 만났다든지 등등. 자식이 상처 받길 바라지 않는 부모님에게 고하지 못하고 묻어야 하는 연애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일환임을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아무 상처 없이 건강한 연애만을 하다가 건강하게 결혼한 딸’이 되어주기 위해 이런 일들을 숨기는 것쯤이야 사실 일도 아니다. 내가 그저 엄마의 좋은 딸로만 살 수 있다면.           


하지만 문제는, 내가 엄마를 아프게 하기 싫은 동시에 내 상처와 후회를 글로 써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거다. 그 두 사실 앞에서 여러 차례 고민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꿈은 견고해졌고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엔 없었다. 가식적인 글을 쓰느니 차라리 부모님이 놀랄만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꼭 그런 얘길 써야 해? 좋은 얘기만 쓰면 되잖아”라고 엄마가 말한다.     

      

하지만 엄마, 엄마의 딸은 좋은 일만 겪고 살지 않았어. 나도 내가 마음고생 한 번 안 한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실제의 나는 여기저기 상처 입고 데이고 그래서 온몸에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힌 사람인 걸. 근데 엄마, 아이러니하게도 내 이런 점이 글을 쓰는 데 참 좋은 연료가 돼. 거침없이 내 상처를 오픈하기 때문에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이들이 있는 걸. 내가 행복했다는 얘기, 늘 좋은 환경을 맛보고 좋은 남자만 만났더라는 얘기, 그런 얘기만을 쓴다면 난 정말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 그건 내가 추구하는 글이 아니니까.          


엄마가 내게 왜 그런 반응인지 자식 된 마음으로 잘 알기에, 미처 이런 말을 다 전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또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는 내가 엄마의 딸인 동시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걸 조금은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너의 그 연애담들을 알고) 훈이는 뭐래?”         

 

토끼 같은 사위가 딸의 지저분한 연애를 알고 도망갈까 봐 엄마가 묻는다. 

         

“훈이? 별 말 없던데? 그런데, 난 만약 훈이가 이런 것 때문에 뭐라고 한다면 내가 먼저 싫어질 것 같아.”          

솔직한 글에 대한 내 의지는 이렇게 완강하지만, 사실은 나도 가끔은 두려울 때가 있다. 밝고 곱게 큰 내 남편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나의 면면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을까 봐. 아울러 그런 자식을 내게 내어준 시부모님께서 나를 “조신하게 봤는데 알고 보니 발랑 까진 애였네”라고 여기실까 봐.           


그치만, 그치만... 그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 꿈을 포기하거나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순수한 아내, 조신한 며느리, 상처 없는 딸.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지향점을 나는 꿈 꾸고 있다. 그리로 가지 않으면 내 존재는 정말이지 아무 의미도 생명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양해를 구하는 일이다. 그들이 듣고 싶은 소리, 거슬리지 않는 이야기만을 담는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그런 나를 사랑해달라고.          




엄마와 글 사이에서의 고민.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만인의 연애박사이자, 잡지에 여러 기사를 연재하며 섹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곽정은은 자신의 책에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섹스 칼럼니스트로 산다는 것 : “그 얼굴로 진짜 섹스 많이 해본 것 맞아?”라는 댓글을 보게 되는 것. 가끔은 전남친과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글을 쓰기도 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내 글을 읽고 토라지거나 화내지 않을 남자친구를 만나야 하는 것.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말 못하는 은밀한 욕망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 엄숙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잔잔한 파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곽정은 에세이 <혼자의 발견>에서 발췌        


그녀는 섹스에 대해, 이혼에 대해, 자신의 연애경험에 대해 오랜 시간 방송과 책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그녀에게도 가족은 물론 있다. 그녀에게도 딜레마였을지 모른다. 다만 순진한 딸자식이 되는 것만큼이나 솔직한 작가로의 직업정신이 중요했던 것뿐일 테다.      

    

그녀는 어떻게 그 강을 건너왔을까. 그녀의 가족들은 또 그 강을 어떻게 건넜을까. 어떻게 하면 이제 나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연애로 우리 엄마가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랑 그날 밤 맥주를 사러 나가면서 하도 마음이 좋지 않아 엄마에게 약속했다. 엄마가 상처 받을 만한 이야기는 책에 좀 완곡하게 담을게, 하고. 엄마가 좋아할 만한 얘기만 쓰겠다는 비겁한 거짓말은 차마 할 수 없었기에.           


“그래 딸. 그렇게 해 줘, 엄마를 위해서...”    

      

엄마와 나는 그 강을 건너려고 이제 막 바짓단을 걷어 올리는 중인 것 같다. 

부디 내 꿈과 나의 가족이 사이좋게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작가의 이전글 재료가 다 했네, 카이센동 맛집 <오복수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