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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2. 2021

사만다 없는 섹스 앤 더 시티

17년 만의 섹스앤더시티 리부트. 사만다는 없다.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나에게 인생 드라마를 (너무 많지만 그래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꼽겠다. 시즌 6편 분량의 이 드라마를 지금까지 한 20번은 본 것 같다. 너무 봐서 영상이 너덜해질 지경이다. 연애가 내 세상의 전부이던 20대 시절, 이 드라마는 큰언니처럼 항상 나를 위로해주었다. 너를 찬 그 남자 그까이 꺼 잊으라며, 너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며...


<색스 앤 더 시티>는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여성 네 명의 우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동시에, 연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성 담론을 주제화하여 여성들의 뜨거운 각광을 받았더랬다. 바야흐로 유교사상이 잔재하는 보수적인 한국이었고, 여성의 성문화가 철저히 음지에 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내 20대를 함께해온 이 가족 같은 드라마에 너무 동화된 나머지, 나는 극 중 네 명의 배우들이 실제로도 모두 친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98년에 시작해 2004년에 방영을 마쳤으니, 함께한 세월이 깊어서라도 분명히 친하지 않을까, 하는 매우 합리적인 기대였다.



그 시절 나의 우상들, sex and the city.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은 극 중의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와 사만다(킴 캐트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거였다. 그래서 극장판 3편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에도 사만다는 출연을 거부했다. 그 소식도 이미 까마득한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충격은 어찌나 컸던지. 뭐어? 캐리랑 사만다가 사이가 안 좋아? 알고 보니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었다는 소리만큼이나 기이하게 들렸다. 


어떻게 언니들이 사이가 안 좋을 수가 있어... 드라마에선 정말 아무런 불화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사만다가 유방암에 걸려 힘들어할 때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던 캐리가 사실은 사만다를 오랜 시간 왕따 시켰다니. 그래서 시즌3 때에는 작정하고 사만다의 노출 분량을 늘리기까지 했다니. 천사 같은 캐리가? 정말? 그때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더 시간이 지난 올해 1월, 시즌6 방영 후 17년 만에 섹스 앤 더 시티 드라마가 시즌7로 돌아온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그런데 또 거기에 사만다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함께 들었을 때, 이미 무뎌진 충격이었지만 또 한 번 마음이 아팠다. 


한 때는 모든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킴 캐트럴을 팬들은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너무도 완강히 출연을 거부하는 그녀에게서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가 느껴졌기에, 화가 나있던 팬들도 결국엔 모두 그녀의 뜻을 존중하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킴 캐트럴(사만다)이 불화 속에 정말 맘고생이 심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우리네 팬들을 위해서, 10여 년간 드라마를 사랑해왔던 이들을 위해서, 한 번만 더 제작에 참여해주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사만다 개인을 사랑하는 동시에, 네 명의 완전체 또한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만다의 삶보다 킴 캐트럴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결국 사만다 없이 시즌7이 제작되기로 했다. 지금쯤이면 뉴욕에서 한창 촬영을 하고 있겠지. 워낙에 보석 같은 드라마니까, 대런스타는 끝내주는 프로듀서니까, 사만다 없이도 그럴듯하게 잘 만들어내겠지, 그러겠지. 알면서도 왠지 사만다 없는 섹스 앤 더 시티라니 아직 상상이 잘 되지는 않는다.


사만다가 어떤 존재던가. 아직도 여자는 순결해야 하고 성을 즐겨선 안된다는 인식이 뿌리 뽑히지 않은 세상에서, 핸드백 속에 상시 콘돔을 비치해가며 남자들과의 섹스를 즐기던 캐릭터가 아니던가. 그 남자가 나랑 자고 나서 연락을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요, 나 역시 즐긴 것이요, 나는 내 인생을 너무 사랑해서 남자나 결혼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던, 그야말로 신식 여성이 아니었던가. 섣불리 따라 하지도 못할 만큼 멋지고 대찬 이 언니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었는데.



영원한 나의 사만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여러모로 17년 만의 리부트 <섹스 앤 더 시티>가 많이 궁금하다. 사만다의 존재를 과연 어떻게 지웠을지, 섹스의 여신 없이 섹스 앤 더 시티가 가능할지, 궁금해서 어서 빨리 보고 싶다. 남은 3인방 캐리, 미란다, 샬롯의 귀환이 반가우면서도, 절대 잊힐 수 없는 1인의 부재가 부디 팍팍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유일무이한 이 네 명의 여성 주인공 드라마는, 연애 찌질이이던 시절 나를 어르고 달래고 성장시켰다. 그 사이 나는 숱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고,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한국의 문화도 많이 변했다. 그때 그 시절엔 상상도 못 했을 이야기들을 여자들도 자연스레 말할 수 있게 됐고, (아직 대다수의 문화는 아닌 것 같지만) 점차 여자도 남자들처럼 성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가르침의 중심에는 사만다, 킴 캐트럴이 있었다. 그녀가 이제는 지쳐서 놓아버린 그 캐릭터가, 수많은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걸 내심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만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구원자예요.

우리는 많이 그리울 거예요.

사만다였던,그리고 우리들의 맘속에 영원히 사만다일

킴 캐트럴 당신이.     






2021 연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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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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