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검색을 잘 못하는 남편 때문에 열 받은 날
남편과 싸우는 일이 거의 없는데 지난 토요일, 간만에 다투게 됐다. 우리의 모든 다툼들은 따지고 보면 다 별일 아닌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날도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OO수산이라는 맛집에 남편을 데려가려던 나의 지나친 의지에서 출발한다. 서울에서 친구랑 먹어본 카이센동 맛집 OO수산. 그곳은 내게 너무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 맛있는 걸 주변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제일 가까운 내 남편부터 우선 먹여야 했음은 당연한 일.
남편은 나보다 더 지독한 내향인간으로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하도 노래를 불러서인지 그 날은 나를 위해서 순순히 나갈 채비를 해주었다. 실로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운전은 남편이 하므로 남편에게 음식점 이름을 알려주었고 지점 중에 제일 가까운 곳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남편에 의하면 OO수산의 많은 지점들 중 유일하게 주차시설이 있다는 ‘송파 지점’으로 가는 길이 어쩐지 싸했다. 여자의 촉은 어쩜 그리도 민감하고 대단한 것인지. 송파 가락시장의 회센터들이 당연히 맛있을 줄은 내 알겠는데, 내가 아는 OO수산은 왠지 이런 곳에 위치할 것 같지가 않았다. 쪼그맣고 귀엽고 세련된 풍의 OO수산은, 이 거대한 가락시장의 복잡한 내부 어딘가가 아니라,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힙한 동네, 그것도 잘 보이는 도로변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락시장에 진입에 차를 데려는 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분당 집에서 송파 가락시장까지 오는 데에도 우선 1시간이 넘게 소요가 된 데다, 크나큰 가락시장 건물에 주차를 하는 데에도 엄청 애를 먹어 결국 두 바퀴를 돌아 간신히 차를 댄 상태였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OO수산의 정확한 위치를 찾으려 네이버에 검색을 하는 순간, Oh my god. 보고야 말았다, 남편 핸드폰에 떠있는 OO수산의 사진들을. 그건, 내가 가보았던 귀엽고 세련된 풍의 카이센동 맛집이 아니라, 방어들이 헤엄치는 거대한 수족관과 장화를 신은 사장님이 있을 것만 같은, 동명의 활어회센터였다.
“아아아아아, 진짜. 자기한테 써치를 시키면 안 되겠다 증말!”
사랑스런 내 남편을 기죽이고 싶진 않지만 그 순간은 정말 멍청하게 느껴져서 그만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누가 봐도 내가 오자던 그 OO수산의 사진들이 아니었건만. 그는 정말, 이런데에 재주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전 상견례를 할 때에도 상견례 장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더니, 불판 앞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집을 알아와서 경악을 하게 한 적이 있으며. 청첩장을 돌리러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 자기가 괜찮은 중국집을 찾았대서 (중국집이라는 것에도 일단 갸우뚱했지만) 따라갔더니만, 그 화려하고 먹을 것 많은 압구정에서 다 스러져가는 중국집으로 인도한 적이 있었다. 뿐만이랴. 우리가 두 번짼가 데이트를 하던 날, 먹자촌으로 핫한 신논현에서 만나 그가 데려간 곳은 ‘떡도리탕’이라는 집이었다. 대학교 뒷골목에나 있을법한 분식집스러운 음식점이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들에게 열려있는 대략 5백 개의 예쁜 맛집을 두고, 우린 앞치마를 둘러 떡도리탕을 먹어야 했으니. (맛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렇게 그는 맛집 검색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사람. 이를 대신해 웬만하면 음식점은 내가 검색해서 데려가곤 했었고, 이번엔 이름까지 알려줬으니 전혀 꼬일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운전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 많은 OO수산 중 가락시장 안에 위치한 전혀 다른 OO수산을 찾을 줄이야 내 어찌 알았겠는가.
그는 내 눈치를 살살 보며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고, 나는 간신히 화를 참고, 재빨리 제일 가까운 진짜 OO수산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석촌호수 쪽에 OO수산이 있었다.
이리저리 실랑이를 한 탓에 음식점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2시가 다되어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이곳에서 식사라도 즐겁길 바라며, 재빠르게 주문을 했다. 여기는 카이센동이 메인이니까, 우니랑 연어알 들어간 카이센동 하나 시키구, 저번에 맛있었던 알밥도 하나 시켜야지!
그런데, 음식이 나오고 나자 남편의 반응이 이상했다. 당장이라도 입에 집어넣고 싶은 횟감으로 가득한 카이센동을 보고는, 남편이 “난 이거(알밥) 먹을래”하며 음식의 위치를 바꾸자는 게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니, 여긴 알밥 맛집이 아니라 카이센동 맛집인데? 이걸 맛 보여주려고 왔는데 메인은 안 먹고 사이드 같은 걸 먹겠다고? 그렇다. 그는 카이센동 맛집에 와서 열심히 알밥만을 먹었으며, 나는 그를 데려온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심통이 난 나는 말 한마디 없이 내 앞으로 밀려난 카이센동을 먹어치웠다.
1시간을 걸려서 왔고, 20분을 주차에서 애 먹었으며, 다시 제대로 된 OO수산을 찾아오는데 또 20분을 소요했다. 그런데 밥은 15분 만에 먹어치웠다. 화가 나서 음식에 대한 아무런 음미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허무했다.
음식점을 빠져나오면서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화가 나면 말을 일절 안 하는 나는 참고 참다가 이렇게 쏘아붙였다.
“뭐랄까, (자기 모습이) 최고급 횟집에 와서 어린이 돈까스만 먹는 느낌이야.”
내 악랄한 속내를 조금 더 덧붙이자면. 너의 그 후진 써치 실력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대단한 맛집에 데려왔더니만, 그 맛있는 것들은 제껴두고 고작 알밥밖에 안 먹어? 니 촌스러운 입맛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 정말 먹을 줄을 모르는구나? 여기 데려온 사람의 의도도 전혀 파악 못하고 말이야!
그 이후 우리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다시 1시간을 차를 타고 집으로 와서는, 나는 안방, 남편은 거실에 자리 잡고서 오랜 시간 노-토킹 전쟁을 치렀다.
한 세 시간이 지났을까. 빼꼼히 방문을 열고 거실 쪽을 쳐다보니 비좁은 바닥에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남편이 보였다. 갑자기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성질 더러운 마누라를 만나 바닥에서 자고 있는 내 남편. 왠지 사과를 해야 할 타이밍 같았다. 스멀스멀 그의 옆으로 가 애교를 부리며 눕자 그도 비실비실 웃는다.
“대체 화가 난 포인트가 뭐예요?”
“아니, 너무 맛있는 집이라서 그걸 맛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간 건데, 비주얼만 보고 자기 스타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먹어보지도 않는 게 너무 답답해서...”
“왜, 나는 알밥 맛있게 잘 먹었어. 내가 뭔가 비린 걸 잘 못 먹나 봐.”
“회랑 초밥은 잘만 먹잖아?”
“나는 그냥, 뭔가 밥 위에 회가 있는 게 싫어. 차라리 회만 먹던지 익혀먹던지 그런 게 더 좋아. 그리고 자기가 맛있는 거 더 많이 먹었으니까 좋은 거 아니야? 각자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되는 거지.”
듣고 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왜 꼭 최고급 횟집에 와서 어린이 돈까스를 좋아하면 안 되겠는가. 그건 취향일 뿐인데. 내 입맛이 고급지다는 착각과 허세에서 오는 심술이었음을 사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냥 그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꼬여대니 심술보가 과하게 터졌던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네비에 찍기 전에 네이버에 검색을 한 번 해봐. 음식점 사진이 뜰 거 아냐.”
나는 그에게 써치 팁을 전수하고는 그의 귀여운 실수들을 용서했다.
저녁엔 남편과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비비고 돈까스와 냉면을 사 왔다. 집에 미나리가 남아서 냉면 위에 오이 대신 미나리를 조금 올리고, 에어프라이어로 튀겨낸 돈까스와 함께 먹었다. 이 소박한 밥상을 남편은 너무 맛있다며 좋아했다.
결국 이렇게 마무리될 거면서 왜 그리 심술을 부렸을까. 남편이 좋아하지도 않는 메뉴에 시간과 돈을 쓸 필요가 애초에 없었던 것을. 내 남편은 비비고 돈까스와 5천 원짜리 인스턴트 냉면으로도 이렇게 맛있어하는 것을.
다음부터 내 입에 맛있는 맛집은, 괜한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나와 비슷한 입맛의 친구와 가기로 마음먹는다.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