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테라스가 우리집 테라스면 좋겠네
오디너리 핏 (ordinary.pit)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48-23 , 3층
OPEN 12:00 – CLOSE 20:00 │ 월요일 휴무
(휴무없이 운영되는 달이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해주세요)
변화무쌍한 사계절의 나라 한국에서는 테라스에 앉아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어쩌면 봄과 가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절반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고통받는다.
지난 4월 친구와 만나 데이트를 한 날은, 다행히도 한 카페의 테라스에서 모처럼만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티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미세먼지는 보통이었고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전에 없이 따뜻했다. 햇살 가득한 테라스의 공간이 매력적이었던 이 카페는, 연희동에 위치한 ‘오디너리 핏(ordinary.pit)’이다.
이 곳은, 주택으로 쓰던 건물의 3층에 위치해있었다. 연희동의 좁고 가파른 골목의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동화 같은 모습의 이 곳의 건물이 보인다. 1,2층은 전시 콘텐츠가 마련되어있고, 3층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테라스를 품은 카페 오디너리 핏이 나온다.
이미 거나하게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온 터라, 친구와 나는 아인슈페너 두 잔과 흑임자 바스크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간발의 차이로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는 못했지만 경치와 바람과 햇살이 충분히 느껴지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을 보니 과연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올 가치가 있었다. 테라스 가득 쏟아져내리는 눈부신 봄햇살, 눈 앞에 펼쳐지는 연희동 골목골목의 서정적인 풍경. 그것들이 한눈에 폭 담기는 것이었다. 맹렬하게 치솟은 빌딩들이 아닌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한 주택 건물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실로 오랜만이다. 살갑고 아늑했다. 친구와 한참을 사진을 찍으며 그 풍경을 담고 기록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자리에 앉아 우리가 주문한 아인슈페너를 한 모금 들이킬 때에는 또 다른 반가움이 밀려왔다. “어? (기대 안 했는데) 맛(도) 있다!”
‘오디너리 핏’은 커피와 디저트, 마케팅, 운영 등의 분야에서 각자 강점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브랜드다. 그러다 보니 공간의 미학도 뛰어났지만 한 모금의 아인슈페너에서도 기품이 묻어났던 것. 이 곳의 커피는 기본 원두 외에 서울에서 접하기 힘든 로스터리의 원두들을 항상 게스트 빈(bean)으로 두고 있으며, 압력을 이용해 내리는 에스프레소 방식이 아닌 중력의 힘으로 내리는 브루잉 방법을 사용한다.
단단한 소신이 느껴지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쉽게도 맛보지 못했지만 이 곳의 시그니쳐인 ‘쑥 밀크티’는 쑥잎을 넣어 24시간 냉침을 하여 얻어낸 음료라고 한다. 재료도 유기농 설탕, 하동 어린 쑥 찻잎, 우유, 딱 이 세 가지다. 이 곳의 또 다른 인기 메뉴인 ‘잠봉뵈르’ 역시 마찬가지다. 샌드위치의 기본인 바게트부터 햄과 버터의 질과 맛을 위해 정성과 정성으로 연구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어깨너머로 대충 배워 만들어낸 것은 없다는 것.
사전의 치밀한 계획 없이 오다 보니 어찌 이 곳의 간판 메뉴는 다 피해서 맛본 듯하여 아쉽지만, 우리가 먹어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아인슈페너와 바스크치즈케이크. 비록 이 곳의 인기 메뉴는 아니라지만, 아인슈페너는 크림층과 원두향이 끝내주는 조화를 이루었고, 바스크치즈케이크의 짙은 질감 역시 하나도 아쉬울 게 없었다. 밀가루 없이 만들어지는 바스크치즈케이크의 특성은 크림치즈의 질과 신선함일진대, 특히나 우리가 먹었던 ‘흑임자’ 맛 바스크치즈케이크는 흑임자가 들어가 고소하면서도 그렇다고 크림치즈 맛이 뒤쳐지지도 않는, 정확한 지분의 맛으로 어우러져있었다. 밥만 안 먹고 왔어도, 한 조각은 더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오후 3시에서 4시. 정수리를 강타하던 정오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가장 좋은 시간. 친구와 나는 이 곳의 테라스에 앉아 행복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수다가 더 행복했던 건 모름지기 이 곳이 주는 공간의 즐거움 덕도 있었을 테다.
오디너리 핏은 누구나 좋아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절제해가며 만든 공간, 메뉴, 레시피, 컨셉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ordinary’라는 말처럼 많은 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정작 이 브랜드의 노력은 평범치 않았다. 그 노력과 정성의 응당한 결과였을까, 연희동에서 시작한 이곳은 올해 역삼점과 부산점에도 문을 열었다. 향후 카페를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이 곳을 그저 인스타그램 용 ‘사진 찍기 좋은 뷰 맛집’이라고 오해했던 것이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뷰 못지않은 훌륭한 음료와 디저트를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정말 다채로운 매력의 카페다.
따스한 봄햇살이 곧 뜨거운 불볕으로 바뀌기 전, 많은 분들이 이 곳의 테라스를 누려보시길 바란다. 아, 꼭 점심을 가볍게 드시고 가서 잠봉뵈르를 맛보시길!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53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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