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청소는 꼭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이유
이사를 하루 앞두고 있다. 정체 모를 낯선 이가 우리 집 창문을 훔쳐봤다는 사실을 안 이후, 급작스럽게 결정한 이사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이사 갈 곳은 구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남편의 직장에서 넉넉잡아 한 시간은 걸리는 수원으로 가게 됐으며(분당에서는 미친 집값에 갈 곳이 없었다), 은행 대출을 천만 원 더 받아야 했고, 이사를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시간은 참 정직하게도 앞으로 흘러간다. 정신 차려보니 이사가 내일이다.
오늘은 입주청소가 있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고 해서 부리나케,는 아니고 적당히 일어나서 10시 반 즈음 이사 갈 집에 가보았다. 여러 청소도구를 끼고 분주하게 청소하고 계신 분들께 쭈뼛쭈뼛 인사를 건네고,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커피를 드렸다. 설탕이 들어간 카페라떼였는데, 입맛에 맞으실까? 그래도 설탕 없는 아메리카노보다는 괜찮을 거야, 소심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청소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간 거였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지켜보는 건 그분들께도 부담이고 나도 다리가 아플 것 같아서, 끝나는 시간을 대충 여쭤보고는 금방 빠져나왔다.
청소가 끝나는 시간까지 근처 파리바게뜨에서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으며 시간을 때웠다. 이사 갈 집에서 걸어서 6분 거리에 파리바게뜨가 있다는 건 빵순이로서 꽤나 반가운 소식이다. 간 김에 주말이면 매번 먹는 식빵 종류도 파악하고 다른 빵들도 뭐가 있나 스캔해보았다. 점주분이 그리 친절하거나 깔끔한 것 같진 않지만 빵 종류만 많다면 나는 오케이. 다행히 매장 규모에 비해 빵이 종류별로 다양했다. 아싸!
청소가 끝날 때 즈음 다시 청소 중인 집으로 갔다. 아까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모든 게 깔끔하게 닦여있었다.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청소를 하신 분들께 괜스레 죄송했다. 비용을 드리는 것과는 별개로, 날이 힘든 여름이나 겨울에는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항상 그런 마음이 든다.
"한 번 둘려보셔요. 깨끗하게 다 닦았어요"
비록 청소이지만 모종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씀. 이런 데에 엄청나게 예민하고 하나하나 다 꼼꼼히 따지는 성격의 나이지만, 땀에 젖은 분들을 보니 다 둘러보기도 전에 "와 너무 깨끗해요! 더운데 고생하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다 가신 뒤에야 실제 성격대로 꼼꼼히 따져볼 수 있었지만, 다행히도 정말로 정말로 깨끗했다.
나에게 입주청소에 관한 어이없는 일화가 하나 있다. 결혼 직후 남편과 신혼집을 얻으면서다. 그때는 막 결혼한 상태이기도 하고 패기와 로망이 넘치던 때라, 입주청소에 쓰는 몇십만 원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청소를 뭘 돈을 줘, 우리가 하고 말지!" 그야말로 쓸 데 없는 열정.
왜 입주청소란 것이 존재하고 거기에 돈거래가 오가는지는, 청소 30분 만에 깨달았다. 그 어마어마한 공사 먼지와 발자국을 걸레로 몇 번이고 닦아내면서 신랑과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실제로 돈을 주고 청소를 맡겨도 두 세분 이상이 와서 해주시는 청소를, 고작 패기밖엔 가진 게 없는 신혼부부 둘이서 하려고 했다니. 어찌나 깜찍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 무식하면 역시 몸이 고생이다.
그 배움의 결과로 이번 이사는 입주청소를 무조건 맡겨야겠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이번 이사로는 확실히 내 몸이 덜 고생할 것 같다. 살면서는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입주청소다.
내일은 드디어 대망의 이삿날이다. 아침 8시에 이삿짐센터가 올 예정이고, 우리는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이삿짐센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역시나 웃돈을 더 주더라도 전문가분들이 다 알아서 해주시는 포장이사. 푹푹 찌는 여름이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이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엄마의 외벌이로는 우리 가족은 집을 살 능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2년마다 항상 이사를 다녀야 했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엄마는 어떻게 혼자서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이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했던 걸까. 그 옛날에는 포장 이사란 것도 지금처럼 잘 되어있지 않았을 텐데. 내 기억에 엄마는 항상 별일 아니라는 듯 뚝딱 이사를 마쳤고, 학교가 끝나고 돌아간 나는 엄마가 빛깔 나게 닦아놓은 공간에만 최종적으로 발을 들였기 때문에 그동안 알지 못했다. 이사가 얼마나 정신 사납고 할 일이 많은 이벤트인지.
그때는 엄마가 다 알아서 했고, 이제는 남편의 등 뒤에 기대 그 노고를 또 한 발짝 비껴가는 중이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득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중에서도 32년 동안 우리 집의 가장이었던 나의 엄마에게 물론 제일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5번은 넘는 이사를 매번 혼자서 헤쳐나갔을 엄마.. 엄마... 우리 엄마에게.
언젠간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을 한 채 꼭 갖고 싶다. (이젠 이게 거창한 꿈이 된 세상이라는 거) 더 여유가 생긴다면 집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시 외곽에 땅을 사서 두 동을 지어서는, 한 동은 나랑 남편이 살고, 한 동은 엄마 아빠를 모시고 싶다. 시부모님은 여유가 있으시니 나중에 더 부자가 되면 모셔야지. 글을 열심히 써서 돈을 많이 번 다음에 하고 싶은 가장 첫 번째 일이 바로 '내 집 갖기'인 요즘이다. 이루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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