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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들 듯 아줌마가 되어간다

구황작물을 나누며 피어나는 아줌마의 우정

[정사각형] 04(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수원에 이사하고 동탄에 사는 절친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그전보다 엄청나게 자주 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 서로 가깝네?” 싶은 그 기분 때문인지 왠지 이 외딴 지역에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좋다.


이사를 하고 2주가 흘러 동탄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내게 감자 일곱 알과 양파 네 알, 깐 마늘 조금을 주었다. 집에 많다면서. 그걸 또 “우와”하며 받고 있는 나. 매일 저녁을 지어먹는 주부로서 이런 선물은 너무 실용적이어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웃겼다. 마카롱과 화장품을 주고받던 20대 시절을 지나, 이제 저녁거리에 쓰일 농작물을 주고받는 30대 아줌마가 되다니. 유부녀가 되어보니 마카롱이고 나발이고 감자랑 양파가 최고인 걸 어쩌겠누.


친구랑 점심을 먹고 나서는 전날 이마트에서 배송시킨 물건이 와서 정리를 했다. 때마침 잡곡이 떨어져서 혼합잡곡을 시켰는데, 또 친구가 온 김에 나눠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주신 차조도 조금 남아있어서, 차조와 함께 잡곡들을 통에 담아주었다. “아 됐어” 하면서도 같은 유부녀인 친구도 밥할 때 요긴하게 쓰는 잡곡이 싫진 않은 모양이다. 이로써 두 유부녀의 눈부신 물물교환이 성립됐다. 농작물 받고 잡곡 주기.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구황작물의 늪 (사진출처:핀터레스트)


20대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내가 농작물 하나에 이렇게 고마워하는 사람이 될 줄. 아줌마가 되어도 여전히 향수 냄새 폴폴 풍기며 밥 짓는 것과는 거리가 먼 여자가 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랬던 로망과는 달리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의 삶에 젖어들었다. 양파는 한 망에 얼마인지, 감자는 사과랑 함께 두면 싹이 나지 않는다든지 하는 사실을 아는 지금의 내 모습. 철없던 20대 때 막연히 떠올렸던 것보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삶이다.


어제는 시어머니가 옥수수를 한 박스 보내셨다. 남편과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 솥에 넣어 두 번에 걸쳐서야 옥수수를 다 삶았다. 식히고 나서 소분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보고 싶은 예능프로가 있어도 눈앞에 손질해야 할 농작물이 있으면 예능을 거르고서라도 손질에 시간을 쓰는 것. 이것도 20대 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손 큰 시어머니가 보내신 옥수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부 둘이서 먹기는 많은 양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또 단톡방을 열어, 수원 사는 남편 친구들에게 통보한다.


“야, 너네 우리 집 오면 옥수수 한 봉지씩 들고 가야 돼. 내가 다 쪄서 싸놨어”


정말이지, 내가 이런 대사를 치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스스로가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쿡쿡 웃음이 난다.

스며들 듯 그렇게 아줌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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