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맞는 운동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
그날 오후. 무슨 패기였는지 모르겠다. 충동적으로 러닝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하다 못해 지금 유지하는 관계들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나가는 나를 당돌하게 만든 데에는, 아마도 최근 잡지에서 본 ‘운동러’들의 자극이 한몫했던 것 같다. 서핑을 두려워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파도를 만나 서핑에 빠졌다는 한 크리에이터의 이야기, 바위 사이에 몸이 끼어 심하게 다쳤으면서도 암벽등반을 좋아한다는 한 에디터의 이야기 등을 보고 갑자기 운동 욕구가 솟구친 거였다.
운동으로 말하자면 작심삼일까지는 아니어도 세 달 이상 꾸준히 유지해본 게 없는 나는, 실패자 중의 실패자였다. 묵직하게 엉덩이를 깔고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연달아 세편씩 보거나 하는 것에는 평균 이상의 끈기가 있는 편이었지만, 단 하나. 운동만은 내게 끈기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필라테스, 발레핏, 헬스 등등 호기롭게 등록했다가 돈만 날린 운동은 몇이었던가.
이번엔 제대로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혼자서는 의지력이 상실되기 쉬우니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도 덧붙은 채로. 그래서 그 길로 수원 러닝을 검색해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게 된 거였다. 얼굴도 모르는 60여 명의 러너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바로 다음날 아침 모닝 런을 한다는 어느 공지를 발견했다. 이왕 시작했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암. 나는 바로 참석의지를 밝혔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 여섯 시 반. 인적이 드문 아침 버스를 타고서 광교호수공원에 도착했다. 컨벤션센터와 갤러리아백화점 사잇길 계단에 있는 달팽이 동상 앞에서 함께 러닝 하게 될 사람 두 명을 만났다. 이십 대 초중반의 남자와 여자였다. 단출한 구성이기도 하고 어차피 땀을 흘릴 것이므로 세수는커녕 가글만 하고 추레하게 나간 나와는 달리, 그 두 명은 나이키 운동복과 삭스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 이른 시간 광교를 달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보단 두 남녀가 이 이른 시간에도 ‘힙한’ 착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겐 더 놀라웠다. 내가 아줌마서 그런가? 아니면 의지의 문제일까? 살짝 부끄러웠다. 그들의 날렵한 나이키 러닝화 앞에 선 4만 원짜리 내 핑크색 휠라 운동화가.
남자분의 주도하에 호수공원 일대 3km를 뛰었다. 여름의 아침 여섯 시 반은 매우 밝았지만 아직 태양이 작렬하기는 전이어서 그럭저럭 뛸만한 온도였다. 문제는 이미 러닝에 익숙한 그 둘과 비교되게 내가 매우 헉헉댔다는 것뿐. (어쩌겠는가, 운동과 담쌓고 살아온 이 저질스런 육신을) 때문에 자꾸 멈춰서는 나를 위해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나를 돌아보기도 했고, 아예 뛰기를 멈춰 걸어주기도 하였다. 선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피해의식은 관찰과 통찰을 동반한다. 두 남녀는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인 것으로 보아 단순 런 파트너라기엔 사이가 매우 친밀해 보였고 (소외감 느낄 이유 1),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학생이라고 하니 공감대도 비슷할 것이다. (소외감 느낄 이유 2), 그리고 무엇보다 러닝에 대한 이해도가 서로 비슷해 보였다. (난 그냥 대충 뛰고 싶으나 그들은 각이 잡혀있었다. 고로, 소외감 느낄 이유 3) 그러다 보니 원래 둘이서 잘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난데없이 내가 끼어들어 민폐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 참지 못하는 가장 큰 수치는 바로 민폐의 주범이 되는 일일 지니.
러닝이 끝나고 난 뒤, 그들은 나를 원래 만난 지점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눈치를 챙겨 재빨리 안녕을 고하고는 버스를 타러 갔다. 두 남녀는 러닝 후에 함께 크로스핏도 한다는데, 행여라도 크로스핏을 가기 전 그들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내가 또 눈치 없이 빼앗으면 안 되니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8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유튜브로 검색한 19분짜리 모닝요가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나 개운했다. 아, 운동의 개운함!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뛰는 동안은 숨이 너무 가쁘고 목이 말랐지만, 3km를 완주하고 나니 온몸에 혈류가 돌고 땀이 뻘뻘 나면서 엔돌핀이 마구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씻고 활기찬 아침을 시작하니 행복하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 이 기분을 느끼려고 다들 운동을 하는 거겠지, 나도 이번엔 정말 오래도록 이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운동에 취미를 좀 묵직하게 가져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지..., 그렇다고 깍두기처럼 끼어서 하고 싶지는 않은데.
평소 러닝을 좀 하는 동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러닝 했어”로 경쾌하게 시작하여, “뛴 건 좋았지만 소외감은 어쩔 수가 없더라...”라는 이야기로 절정을 이루더니 결국 나는 친구에게 묻는다. “나랑 러닝 할래?” 요가강사인 친구는 오전 수업이 있어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래도 화요일 목요일은 함께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혼자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남 사이에 끼어 뛰기도 불편하고, 기댈 곳은 10년을 알고 지낸 편한 친구뿐인 나.
다행히 나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친구가 사는 동탄 호수공원에서 함께 러닝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얼마나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광교 가는 시간이나 동탄 가는 시간이나 엇비슷한 데다, 친구랑 뛰면 그래도 불편함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은 내 운동 열정이 활활 지펴지고 있는 중이다.
이미 가입한 그 오픈 채팅방은 어쩐담? ‘정기 러닝 1회, 번개 2회를 불참할 시 강퇴’라는 다소 완고한 규정이 아찔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타고나길 이렇게 왕소심한 사람은 겁도 없이 낯선 이들의 모임에 출사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나니. 내가 이 오픈 채팅방에서 마지막 할 일은 바로, 겸허하게 강퇴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일 테다.
“다음에 또 같이 뛰어요”하고 의례적인 인사로 헤어진 그 착하고 어린 두 남녀는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한번 본 게 전부인 주제에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그것도 성격이라 별 수는 없다. “그분 의지가 약해서 못 오시나 보다”라는 생각은 부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면 내 욕심이겠지?
아무튼 그렇게 나의 허접한 오픈 러닝의 추억은 하루천하로 끝이 났다. 하지만 진심으로 오늘의 달리기는 너무나 뿌듯하고 즐거웠음을 꼭 기억하고 싶다.
하루천하 러닝이 남긴 것은 또 있다. 메이커 운동복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젊은 친구들에게서 한 가지 아이템도 발견해왔다. 주머니가 없어 덜렁덜렁 핸드폰만 들고나갔다가, 그들의 허리춤에 매달린 러닝 벨트를 본 것이다. 하마터면 “그 전대 예쁘네요”라고 할뻔했는데, 용케도 그들이 먼저 그것의 이름이 ‘러닝 벨트’라고 친절히 말해준 덕에, 쿠팡에서 ‘전대’가 아닌 ‘러닝 벨트’를 검색해 주문할 수 있었다.
내일 새벽에 도착한다니, 친구와 함께 뛰는 내일 첫 러닝에는 이 힙한 러닝 벨트를 차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와의 러닝은 하루천하로 끝나지 않기를 부디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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