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기록하고 싶은 것들의 의미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날, 생애 두 번째 시사회를 다녀왔다. 요즘 들어 나이 들면서 차가 없는 게 얼마나 큰 설움인지 느끼고 있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엔, 특히나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서울을 가야 하는 날엔. 멋있게 운전대를 잡고 유유자적하게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만, 저주받은 내 공간지각 능력은 운전에서도 그 면모를 발휘해 무려 네 번이나 기능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고, 그 트라우마로 운전은 평생 못할 수도 있다고 쿨하게 생각했지만. 다시금 간절히 면허를 따고 싶어졌다.
용산 cgv의 시사회를 가려고 집에서 나와 우산을 쓰고 15분을 걸어 정류장에 가는데 벌써 힘이 들어버린다. 거기서 광역버스를 타고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내려 다시 용산으로 가는 버스 400번을 탔다. 비가 내리니까 버스에서 내릴 땐, 우산을 펼칠 준비와 버스카드를 찍을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 몹시도 서러웠다. 32세에 아직도 면허가 없어 이러고 있다.
힘들게 당도한 용산 아이파크몰의 용산 cgv. 영화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시사회 티켓 배부처가 있고, 이름을 말하면 관계자께서 보도자료와 함께 시사회 티켓을 주신다. 오늘의 영화는 <트립 투 그리스>라는 영화로, 영화를 볼 때는 몰랐지만 보도자료를 보니 영화 속 두 남자 주인공은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와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대본 없이 펼쳐지는 두 남자의 엄청난 수다와 방대한 지식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였다. 아는 것이 많은 둘의 여행은 그만큼 보이는 것도 더 많아 보여서 부러웠다. 요새는 중년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멋지고 겸손하게 잘 살았다는 전제하에 말이지만.
영화가 4시 반에 시작해 6시 반 즈음 끝나는 관계로, 다시 용산에서 분당 집까지 가면 못해도 8시는 넘을 것 같았다. 남편은 이미 나와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알아서 먹겠다고 용감하게 카톡을 보내왔다. 그래봐야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남편의 저녁 메뉴는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이나 햄버거겠지만.
부인의 출타로 남편이 부실한 저녁을 먹는 사이, 저녁 차리는 일과에서 벗어난 나는 아이파크몰의 엄청난 음식점들 사이에서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짧은 고민 끝에 부드러운 오믈렛과 타마고산도를 하는 가게에 가서 혼밥을 했다. 친구들, 커플끼리 온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어여쁜 식당에서 2인석에 홀로 앉아 밥을 먹노라니 뭔가 눈치가 보이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잘 먹고 나왔다. 우리나라도 점점 혼밥 문화가 확산되고는 있다는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먹는 것은 아직 어렵다. 어딜 가나 너도나도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많다. 그들 속에서 혼자의 여유를 꿈꾸는 나는, 조금 더 개인주의가 강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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