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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렛에서 합리적이게

아웃렛가서 아무것도 안 사다가 책만 사 온 썰 ?


[정사각형] 03(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동탄에 사는 절친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어쩌다 아웃렛까지 가게 됐다. 아웃렛 구경은 원래 하기로 한 일정에 없던 것이었으나 언제나 커다란 쇼핑센터는 나를 즐겁게 하는 법. 딱히 뭔가 살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살 돈도 없었지만, 공연히 이 옷을 만졌다 저 옷을 만졌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나는 아이쇼핑을 했다.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무의미한 행동이 어떻게 그리 즐거울 수 있는 것인지는 미스터리다.

그 사이 요가강사인 친구는 마음에 드는 요가복을 발견해서 하나 구매하고, 요가복 위에 입을 얇은 니트도 하나 구매했다. 친구가 옷을 사는데 따라서 사지 않은 적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집에서 앉아 글만 쓰는지라) 옷을 사도 입고 갈 데가 없었고, 집에 있는 옷들을 두고 또 옷을 살만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도 않았던 터라 나름의 절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일단 눈앞의 예쁜 옷을 사고 나서 동네 마트에라도 입고 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아웃렛을 돌고 나서, 아무것도 사고 있지 않는 내가 조금 신경 쓰였는지 친구가 이 아웃렛에는 중고서점이 있다면서 나를 그리로 데려갔다. yes24 중고서점이었다. 사실 책도 살 생각은 없었다. 사놓고도 ‘입을 게 없다’는 취급을 당하는 옷들처럼, 내 책장에도 사놓고 안 읽는 책이 이미 수두룩 빽빽이였으니까. 그 친구들부터 다 읽고나서 새 책을 사야지 다짐했지만, 막상 중고서점에 들어가 거의 반값인 책들을 보자 눈이 뒤집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약간의 손 떼가 묻었을 뿐인, 거의 새 책들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평소 사고 싶었던 마스다 미리의 산문집 한 권과 문학동네에서 펴 낸 소설책 두 권을 이미 결제하고 있었다.



아웃렛까지 가서 구경만 하다 결국은.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렇게 엉겁결에 책을 세 권이나 사고 나서 친구에게 기쁜 마음으로 말하자, 친구가 대뜸 “넌 역시 작가구나”하고 말한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마치 내가 옷에는 관심 없고 책만을 곁에 두는 멋들어진 사람 같지만...., 사실은 나도 아까 친구가 요가복 매장에서 요가복을 구매할 때 어찌나 따라 사고 싶었는지 모른다. 신상이라며 걸려있는 3만 9천 원짜리 올리브색 크롭탑이 너무 예뻐서. 저걸 입으면 갑자기 운동 욕구가 솟구치고 아침에 발딱 일어나 요가복을 떨쳐입고서 스트레칭이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지. 하지만 난 나를 안다.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다.


반면에 책은? 아무리 책장에 수두룩히 쌓여있어도 언젠가 결국에 찬찬히 읽게 될 나라는 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흠,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하지 아마. 입고 갈 데도 없는데 한 벌에 3만 원은 넘는 옷을 사는 것보단, 단 돈 2만 원에 무려 책 세 권을 얻은 것이 나에게는 과연 더 합리적인 소비였을 것이다. 친구에게는, 책보다는 요가 수업을 할 때 입을 요가복 한 벌이 당연히 더 합리적인 소비였을 테고 말이다. 쇼핑의 끝에는 역시 늘 이런 ‘합리화’가 필수로 따라와 줘야 된다.


“다 자기 직업에 맞게 샀네” 하며 내가 웃었다. 너는 요가강사니까 요가복 사고, 나는 작가니까 책 사고.


집으로 돌아와 반값에 산 책을 쉬엄쉬엄 읽어나갔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서 헐값에라도 팔아야 했던 책들이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니, 이런 선순환은 또 없다는 생각에 잠시간 또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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