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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달팽이

친구가 달팽이를 준다길래 거절했다, 왜냐면 난...

[정사각형] 05(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어느 날 친구가 달팽이를 키운다는 소식을 전했다. 호수공원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사진도 보여줬다. 달팽이가 투명한 수조 안에 채소와 있는 사진이었다. 달팽이는 이름도 있었다. '달순이'. 달팽이는 내게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존재감이 큰 생명체가 아니기에, 친구의 달순이 얘기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제 친구랑 만나 밥을 먹는데 친구가 또 달팽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 달순이. 솔직히 까먹고 있었다. 저번에 말한 그 달팽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더욱 신기한 사실은 그 달순이가 알을 낳아서 새끼 달팽이가 사십 마리나 있다는 소식이었다.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애호박 위에 붙어있는 날치알만 한 크기의 달팽이들이 있었다. 너무 작아서 그게 생명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호, 하고 불면 다 날아가게 생긴 정말 작은 존재들이었다.


"하나 분양해줄까? 관심 있으면 말해"


하고 친구가 말했지만 도리도리, 나는 사양했다. 친구 눈에는 사랑스러운 달팽이가 나에게는 집에 들여오는 순간 관심을 줘야만 하는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포유류가 아닌 생명체들을 늘 그렇게 대했다. 이구아나, 아기 거북이, 수많은 물고기가 내 무관심 속에서 말라죽어갔다. 짖거나 애교를 부리며 내 품에 안기는 동물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는 걔네들에게 매번 무정했다.


친구가 준 달순이의 소중한 새끼 달팽이가 우리 집에 와서 또 말라 비틀어 죽어버린다면 친구는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그래서 받을 수가 없었다. 거절을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감수성이 좀 없나? 사이코패스인가?" 하나마나한 생각인데도 나는 왜 걔네들이 귀엽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사막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선인장이 우리집에만 오면 죽는 것과 아마 비슷한 이치겠지.



작고 귀여운 너희에게 난 무정했지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러다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읽다가 정말 우연히 달팽이 이야기를 발견했다. 달팽이 두 마리를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건강한 달팽이 한 마리가 쇠약한 달팽이의 패각(껍데기)을 갉아먹어 결국 한 마리가 죽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글쓴이가 울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남은 달팽이를 2년이나 더 키웠다는 이야기였다. 읽자마자 내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이 글을 전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잡지에 표시를 해뒀다.


물론 아직도 나는 달팽이를 키울 마음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포유류과 동물의 부들부들한 털도 없고, 애교도 없고, 배고프다고 울지도 않으니 나에게는 생명이라기보단 고요한 정물에 가까우니까. 그런 달팽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먹을 것을 주고 가끔 샤워도 시켜준다는 친구의 감수성이, 새삼 달리 보인다. 나에게는 없는 것, 나에게는 없는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마음. 여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친구에게 어서 내가 본 달팽이 글을 전해주고 싶다. 거기까지가 무정한 나의 최대치 감수성인가 보다.


친구네 달팽이 달순이도 2년 넘게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까? 지금 친구의 정성으로 보면 왠지 그럴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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