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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12. 2021

유일하지 않아도 좋아

유일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도토리를 충전해 세상 신중하게 BGM을 고르고, 흑역사가 될 게 뻔한 느끼한 글과 사진을 거침없이 올려대던 바야흐로 싸이월드 시절. 지금도 가장 완벽한 SNS 플랫폼이라 여겨지는 싸이월드에는 한 가지 또 쓸만한 기능이 있었다. 바로 생년과 이름만 치면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찾기' 기능. 파도타기의 기능도 백방으로 유용했지만, 나는 종종 궁금한 사람을 그 기능을 통해 찾아보곤 했었다. 초등학교 짝사랑 김서준, 짝꿍이었던 한예나 등등. 이름이 흔할수록 페이지는 길어져서 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미니홈피를 열어보다 보면 웬만큼 원하는 인물은 찾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넌 찾으면 전국에 너 하나밖에 안 나오겠다 그치?"


당시 나처럼 사람 찾기에 골몰하던 지인들이 특이한 내 이름을 두고 자주 하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이름은 좀 특이한 게 아니라, 태어나 나랑 똑같은 이름은 마주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희귀한 이름이었으니까. 내 이름은 '우듬지'. 순한글로 된 단어로,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우죽의 꼭대기 끝.'라는 뜻이다. 


한국인들도 대부분 뜻을 모르는 이 생소한 단어를 이름으로 쓴 탓에,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제 이름은 우듬지고요, 이런이런 뜻입니다" 하고 설명해줘야 하는 수고를 달고 산다. 사실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문학가들이 아닌 이상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의 아빠는 최대한 특별하고 희소성 짙은 이름을 짓기 위해, 밤낮으로 사흘간 국어사전을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단어가 'ㅇ'에 있던 우듬지였다. (얼마나 다행인가 'ㅎ'까지 갔다면 이름 찾는데 한 달은 걸렸을지도 모른다) 뜻이 '나무의 꼭대기'라고 하니 '최고'가 되라는 나름의 의미로 지으셨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이 이름을 반대하셨다고 했다. 너무 특이하고 외롭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빠는 나무의 꼭대기를 '최고'로 받아들였으나, 아마도 외할아버지는 시린 겨울날 칼바람을 견디는 앙상한 우죽을 떠올리셨던 게 아닐까. 할아버지는 부르기도 쉽고 서글서글한 느낌의 '선영', '영선'과 같은 이름을 추천하셨지만, 결국 아빠에 의해 내 이름은 '우듬지'로 낙점되었다.



특별한 이름 탓에 생긴 강박.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엄마 말에 따르면 아주 어릴 적의 나는 이름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었던 초등학생 무렵에는 특히나 더 좋아했다. 희소성 짙은 내 이름이 나를 빛내주는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그 어떤 아이도 5학년 2반의 '우듬지'를 모르지는 않았으므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의 우듬지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싸이월드 시대가 도래해, 사람을 찾는 칸에 내 이름을 넣고 검색을 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 우듬지가 전국에 세명이나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그들의 프로필을 타고 들어가 미니홈피를 샅샅이 뒤졌다. 나와 다른 우듬지들은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생겨난 별명들도 나와 비슷했고(누룽지, 새둥지 등등), 친구들이 그를 부르는 방법도 비슷했다(듬직이, 듬듬이, 우듬이). 기분이 이상했다. 인간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복제품이었단 걸 깨닫게 된 실험실의 클론이 그런 기분일까. 그때 나는 살짝 멘붕이 왔던 것 같다. 싸이월드에서 검색되는 우듬지가 세 명이라면, 싸이월드를 하지 않는 우듬지는 또 몇이나 더 있단 말인가.


'난 유일하지 않았어..., '




어쩌면 이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어떤 강박. 우듬지 중엔 제일 뛰어난 우듬지가 되어야겠다는 억지 강박이 말이다. 희소성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 운명처럼 나와 늘 함께했다. 


그래서 제일 뛰어난 우듬지가 되었냐고? 아니. 슬프게도 아직 나는 다른 우듬지들보다 특출나다고 할 수 없는 우듬지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종종 무기력했고, 다른 우듬지가 더 걸출한 인물이 되어 신문을 도배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럼 나는 아류작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때 나는 개명을 하리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강박은 결국 필요 이상으로 삶을 소모한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우듬지'가 되겠다는 강박은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너무 무거워졌다. '최초'나 '최고'는커녕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나는 나에게 물었다. 듬지야, 대체 넌 왜 유명해지고 싶은 거니. 왜 네 이름 석자를 어디에 알리지 못해 그렇게 안달이니. 


그 물음의 끝에는 작고 위축된 어린 시절의 우듬지가 있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겪어야만 했던 나름의 고충들로 둘러싸인 아이. 나는 하나도 내세울 게 없는데, 나는 너무도 평범한데, 사람들은 내 이름을 가지고 항상 얘기해댔다. "이야, 이름 뜻이 이렇게나 좋으니 꼭 최고가 되야겠구나 너!"라는 어르신들의 말씀. "넌 나쁜 짓 하면 절대 안 되겠다,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다 널 기억할 거 아냐"라던 지인들의 말. 그런 말들은 볼품없는 아이가 거하게 특별한 이름을 떠안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런 감정을 쭉 가지고 살아오니, 어느새 나는 이름값 하는 우듬지가 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던 거였다. 하지만 그건 진짜 나를 위한 삶은 아니었다. 특별하라고 지은 이름이 오히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고 말았으니까. 어쩌면 외할아버지는 여기까지 내다보셨던 걸까. 



이름은 유별나도 평범한 나로 살래 그냥.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요즘은 다행히도 예전보다는 강박이 많이 줄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괄약근의 힘이 풀리듯 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엄청 특별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 이름값은 커녕 이름만 거창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모든 이름이 다 훌륭하고 좋은 뜻으로 지어졌지만, 모든 인생이 다 이름대로 풀리던가. 비싼 돈 주고 맞춘 이름도 고꾸라지고, 별 뜻 없는 이름도 세상에 기록되는 게 인간의 삶인데. 그래서 이제는 좀 편하게 사는 우듬지로 살고 싶어 졌다. 그래도 된다고, 이름과 상관없는 내 내면의 진짜 자아가 허락해준 셈이다.


이름 얘기를 하다 보니 별안간, 고등학교 때 '예쁨'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아이가 떠오른다. "헐, 쟤 이름 김예쁨이래. 근데 하나도 안 이쁜데 어떡해, 불쌍해..." 이런 소리를 종종 듣던 아이. 이름에 갇혀 예쁘지 않으면 죄인이 되었던 그 아이는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개명을 했을까, 아니면 이름대로 예뻐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까. 아니면 이름이야 어떻든 그냥 나처럼 마이웨이로 살고 있을까.


그러고 보면 세상엔 이름으로 의미가 규정되는 것들이 참 많은 듯하다. 집에서 조신히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집사람', 구박을 일삼을 것만 같은 '계모', 여전히 몸에 나쁘다고 오해받는 'MSG'. 마찬가지로, 예뻐야만 할 것 같은 '예쁨이'나 꼭대기에 올라서야만 한다고 생각해온 '우듬지'까지도 그렇다. 이름이 주는 무게가 이렇게 생각보다 무거울 줄, 이름을 짓는 사람들은 알았을까. 하지만 오해로 쌓여온 이름이 실제로 그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존재는 이름이 아니라 그냥 존재로서 증명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예쁨이나 나나, 이름과 상관없는 내 삶을 스스로 증명해내면 될 터다. 


다른 우듬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그때 싸이월드 때문에 또 다른 우듬지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들도 자신이 유일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설사 자기가 유일하지 않아도 되는 우듬지라는 것도 깨달았을까? 그들을 언젠가 만나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가 됐든 누군가가 엄청 유명한 우듬지가 되어 막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거든,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싶다. 네가 우리 우듬지의 자랑이라고,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축하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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