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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03. 2021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 탈 때, 나도 울었지.

문화유산에 대한 공통의 마음, 그것에 대해서.


2019년 4월. 프랑스의 한 오래된 성당에서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접했다. 바로 프랑스 고딕 건축물의 걸작으로 불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드높은 성당의 지붕과 첨탑이 불에 타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프랑스 국민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 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웃나라의 건축물이 화마에 휩싸여 타들어가고 있는 그 모습이 내 나라의 일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건, 언젠가 내가 그 건축물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스물네 살 태어나 처음으로 간 외국여행. 그것도 호기롭게 프랑스로 첫 여행지를 정하고 떠났던 그곳에서 나는 '반드시 보고 와야 할 것' 리스트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끼워 넣었었다. 에펠탑만큼이나 중요한 프랑스의 랜드마크였으니까. 에펠탑의 역사가 고작 100여 년이라면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는 무려 800여 년이었다. 물론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쥐뿔도 없었던 나였지만.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2013.


그러나 파리 센강의 시테섬에서, 도저히 한눈에 다 담기지도 않을 만큼 장엄하고 찬란한 그 노트르담 대성당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 그때 느낀 그 감탄과 경외심은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해 얼마나 빠삭하게 아느냐와는 전혀 상관없는 감정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몰라도 느낄 수 있었다. 수세기 동안 보존되어온 유산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그 가늠할 수 없는 역사와 종교에 대한 인류의 끝없이 원대한 믿음이,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넷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눈앞에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건물은 자그마치 800살. 고작 스물네 해를 살아온 나의 시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된 나이였다. 성당은 세계대전과 프랑스혁명을 겪었음은 물론이고,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지켜보았으며, 더 앞서는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인류는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해 지구촌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800년은 그런 세월이었다. 그런데도 그 옛날 지어진 성당은 무너지지 않고 그렇게 꼿꼿하게 서있는 것이 어찌나 신기했는지...,


그렇게나 굳건하던 성당이 별안간 활활 타고 있는 뉴스를 보았을 때 심장이 욱신거리고 발이 동동 굴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천년이나 가까이 지켜져 온 저 위대한 건축물이, 심지어 세계대전의 공격 때도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던 그 건물이 저렇게 간단하게 타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화재는 다행히도 발생 열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꺼졌지만, 첨탑과 지붕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심지어 성당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세 개중 두 개가 불에 탔다. 그 광경을 보며 프랑스 국민들이 눈물 흘리는 것 또한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인들도 이와 비슷한 심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바로 2008년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6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 서울의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던 숭례문 역시, 보존되어온 세월이 무색하게 한 순간의 방화로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그 허무함과 안타까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몫이었다. 게다가 화재의 원인이, 정부의 토지보상금 제도에 불만을 품은 70대 남성에 의한 고의적 방화였음이 밝혀졌을 때, 온 국민은 다 함께 분노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출처:사이언스모니터) │ 숭례문 화재 (출처:뉴시스)


유산은 뭘까. 국보란 뭘까. 내 집도 아닌데, 어찌하여 서울 한복판에 멀찌감치 서있는 숭례문이 타들어갈 때 내 집이 불탄 것처럼 마음이 저렸던 걸까. 왜 어떤 건축물들은 국민들의 마음에 책임감과 애정을 심어주는 걸까. 숭례문과 노트르담의 꼭 닮은 일화를 보며, 나는 옛것을 귀히 여기고 그것이 훼손될 때 가슴 아파하는 공동의 정서가 애국심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했다. 살기가 힘들다며 내 나라를 탓하고 원망하면서도, 숭례문이 불에 타거나 아름다운 사대강이 시멘트로 척척 발려질 때, 그래서 사람들은 통탄하고 눈물도 흘리는 거겠지. 어떤 건축물들은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영험한 힘을 지닌 것이다. 그런 힘을 지닌 건축물에 우리는 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일 테고.



훼손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2021년 현재, 아직까지도 복원 중에 있다. 이 복원 문제를 두고도 현대식으로 복원할 것인가 옛 형태 그대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다퉜다고 전해진다. 이 현대식 복원에는 훼손된 지붕에 공원이나 수영장 등을 개설하는 파격적인 제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현대식'으로 복원하는 데에 의견을 더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고, 마크롱 역시 그런 여론을 인식한 것인지 그 의견을 철회하고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으로 의견을 바꿨다고.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그대로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결국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엄청난 애국심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그렇게, 현대인이 체득한 방식이 더 좋을지언정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강은 원래 굽이굽이 흘러야 하는 것처럼, 수세기를 사랑받아온 건물은 그 모습 그대로 두어야 나은지도 모른다. 스물네 살의 내가 보았던 그 불타기 전의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이 800년의 역사를 거스르고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파티 피플(party people)들의 수영장이 되었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아무래도 그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마치 숭례문이 불탄 김에 지붕에 스케이트장을 짓겠다는 것과 비슷한 소리니까. 


프랑스든 한국이든, 국민들은 어쩌면 내 나라 유산에 대해 죽는 그날까지도 까탈스럽고 예민할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쓰고 유전자가 변형된 채소를 먹으면서도, 꿋꿋이 그것만은 그대로 두라고 박박 우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마음은 한없이 애잔하고 사랑스럽다. 내 한 몸은 채 100년도 살다 가지 못하면서도, 내가 죽어서도 내 나라의 유산들은 길이길이 보존되길 바라는 그 마음은 얼마나 애틋한가. 


마크롱 대통령은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2024년까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을 마치겠다고 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는 그날,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는 그날, 나는 다시금 그곳에 한번 가볼 수 있기를 염원한다. 프랑스 국민들이 800년을 공들여 지켜온, 화재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발을 동동 굴렀던, 그 소중한 유산의 숨결을 다시 한번 생생히 느껴보고 싶다.







2013년 여행에서, 불 타기 전의 노트르담 대성당.






먹고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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