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의 여행스타일이 달라서였다.
“자기, 모터쇼 갈래?”
어느 날 신랑이 물었다. 친구들이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모터쇼를 가기로 했는데, 먼저 가자고 했던 친구 한 명이 못 가게 됐다는 거였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었던지라 그 친구가 빠진 자리에 끼워달라고 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모터쇼를 가보게 됐다.
내 머릿속에 있던 모터쇼란, 번쩍이는 자동차와 거기에 기대선 예쁜 모델 언니들, 그게 다였다. 자동차를 포함한 기계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내가 관심 없는 분야에도 조금씩 식견을 키우고 싶었던 마음에 따라간 거였는데 오우, 역시나 내 욕심이었던 걸까. 생각보다 너무 거대한 일산 킨텍스 건물을 보자마자 기우가 몰아닥쳤다.
‘난 분명 입장하자마자 기가 빨려버릴 거야. 이 규모와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수십 년간 축적된 내향인의 촉은 옳았다. 인파라도 좀 적었으면 싶었지만, 그 크고 화려한 모터쇼에 그것도 주말이었는데 사람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차 한 대에 타보기 위해 기약 없이 줄을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결국 나는 차에 타보기를 포기하고 멍하니 먼발치에서만 구경했다. 번쩍이는 것은 자동차요,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로다..., 그나마 내 생각에 ‘예쁘다’고 생각되는 몇몇 자동차에는 눈길이 조금 갔지만, 입장한 지 40분 정도가 지나자 더는 아무것도 보기가 싫은 기분이 들었다.
끝내 신랑 친구 부부에게 “우리는 먼저 갈게”라고 전했다. 밝고 외향적인 두 친구들은 “벌써요?”하며 웃는다. 머쓱했지만 남편과 나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일산까지 두 시간이나 운전해서 와서는 채 한 시간도 못 채우고 돌아가는 상황을 되새겨보자니 참으로 웃음이 났다. 무언가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인파를 뚫고 기다림을 감수할 각오가 없다는 것일까. 관심이 있었다면, 그 인파와 긴긴 줄을 기다릴 용의가 조금은 생겼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현듯 오래전 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베르사유 궁전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스물네 살. 퇴직금을 털어 무작정 프랑스 여행을 갔던 난,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에 미쳐있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이자, 여러 스캔들과 괴소문의 주인공이었던 프랑스 역사의 슈퍼스타. 나는 그녀가 있었던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 했었다. 그녀가 옥살이를 했던 콩시에르쥬리, 단두대에 목을 잘려 처형당한 콩코드 광장, 그리고 베르사유까지 모조리 여행 리스트에 넣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녀가 머문 기간으로나 스케일로나 그중에서 가장 핵심 장소였다. 어쩌면 거길 가기 위해 무모하게 프랑스를 택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당시 함께 여행했던 남자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이 베르사유 궁전 일정에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만 한다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숨결을 하나하나 느껴야 하며, 이 궁전은 루브르 박물관 못지않게 크고 넓어서 사실 하루로도 모자란다고. 딱히 여행 컨셉이 없었던 그는 내 여행 일정에 동의해주었다.
그렇게 당도한 베르사유. 궁전의 입구에서부터 나는 혼자만의 마리 앙투아네트 사랑에 심취해 하나하나 뜯어보느라 너무도 즐겁고 황홀했는데..., 문제는 한 한 시간쯤 둘러보았을 때 발생했다. 남자 친구가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베르사유의 입구를 벗어나 정원 초입부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2천 개가 넘는 방들 중 공개된 방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기, 루이 14세가 공들여 만든 ‘거울의 방’ 살펴보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그 유명한 별궁 ‘쁘띠 트리아농’ 샅샅이 살펴보기, 대운하에서 곤돌라 타기 등등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남자 친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박박 우겼다. 아직 진짜 베르사유는 보지도 못했다고. 여기서 돌아가자는 건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1층만 살짝 돌고 집에 가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그는 타협해주지 않았다.
“여기가 베르사유야! 이만하면 대충 다 봤잖아”
하아. 나의 베르사유도 소중했지만 함께 여행 온 자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를 먼저 보내고 나 혼자 그 큰 궁전을 다 둘러볼 용기는 내게 더더욱이 없었다. 시간을 다시 돌린대도 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결국 베르사유의 ‘베’ 정도만 구경한 채 나는 그와 함께 파리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와 그 일로 더는 싸우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실은 돌아가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다시 이 먼 프랑스에 와서 베르사유를 둘러볼 기회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만 같았다. 역시나, 그 이후 실제로 다시 프랑스를 갈 기회는 생기지 않았더랬다.
그때 그 남자 친구에게 베르사유는 뭐였을까. 그와 다투더라도 혼자 남아서 구경할 걸, 그렇게나 가고 싶어 여행책자에 별표를 다섯 개나 쳤던 쁘띠 트리아농을 어떻게든 구경했어야 했는데. 끝내 해소되지 않는 그날의 갈증 때문인지 부질없는 미련들이 긴 시간 맴돌았다. 그러니까 그에게 베르사유는, 오늘날 나의 모터쇼였던 게 아닐까. 아무리 크고 웅장하고 볼거리가 많아도 흥이 나지 않는 모터쇼. 수많은 인파를 뚫고, 긴긴 줄을 각오해서라도 봐야 할 힘이 생기지 않는 무엇.
나의 여행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 혼자 꽂힌 무언가가 있어서 부지런히 그것들을 눈에 담으려 뽈뽈 거리며 다닌다. 사람이 많으면 곧잘 힘들어지는 성향이면서도, 왜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관광형 인간’이 되어버리는 걸까. 베르사유에 함께 갔던 남자와는 이별한 뒤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만, 희한하게 남편과 여행할 때도 매번 그 옛날의 상황과 비슷해지곤 한다. 나는 언제나 ‘더 봐야 하고 더 머물러야 하는’ 쪽이라면, 남편은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보자’는 쪽이다. 다름이 아닌 ‘서로 다른 여행 스타일’이 문제였단 걸 깨닫는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아득해져 버린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남편과 다시 여행하는 날을 꿈 꾸고 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상상 속 여행지에는 반드시 베르사유가 있다. 그때 보지 못한 궁전의 화려한 방들과 쁘띠 트리아농을 봐야 한다는 집념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여행에서 남편과 필연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음 또한 알고 있다. 몇만 보는 걸어야 다 둘러볼 수 있는 그 커다란 궁전에서, 그는 분명 전에 내가 사귀었던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지쳐버릴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날이 온다면 십수 년 전의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 지친 남편을 베르사유의 카페에 앉혀놓고, 나 혼자라도 뽈뽈거리며 돌아다녀야지. 살아보니, 함께 여행하는 사람과 백 프로 마음이 맞는 법은 좀처럼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의 차이, 가고 싶은 곳의 차이가 어떻게든지 벌어지게 되어있는 법. 랜드마크를 찍으며 바닥까지 샅샅이 훑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적하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 구경 풍경 구경을 하고 싶은 남편 같은 사람도 있단 걸 이제는 이해한다. 고로, 여행은 함께 가되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것과 혼자 해야 하는 것을 지혜롭게 구분해야 할지어다.
일산 모터쇼에 함께 갔던 친구 부부는 우리가 자리를 뜨고도 한참을 머물러 자동차 하나하나를 구경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SNS를 보니 영상과 사진도 많이 찍은 듯하다. 참 신기하다. 내 눈엔 그 차가 그 차 같던데..., 그러면서도 알 것 같다. 자동차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타보고 싶은 그 마음은, 내가 베르사유에 두고 온 그때 그 마음과 꼭 닮았다.
- 2013년의 프랑스 베르사유 -
먹고 여행하라
ⓒ 2021 우두미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