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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Dec 28. 2021

에스프레소를 이 곳에서 배웠다, 수원 <앳 디 엔드>

벤티 사이즈 아메만 추구하던 내가 에스프레소를 좋아하게 된 이유


앳 디 엔드 에스프레소 (at the end)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900번길 3, 1층(북수동)
OPEN 10:00 – CLOSE 19:00│월요일 휴무



대용량 러버의 에스프레소 입문기


나는 커피 없이는 못 산다. 아침에 일어나 한 잔, 오후에 밥 먹고 또 한잔. 그걸로도 모자라면 한두 잔쯤은 더 마시는 그야말로 카페인의 노예다. 하도 커피를 물처럼 곁에 두고 마시다 보니 제일 중요한 건, 맛도 맛이지만 얼마나 대용량인가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 ‘스몰’ 사이즈 커피는 없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손에 이끌려 수원의 한 에스프레소 전문점 <앳 디 엔드>에 가게 되었다. 궁금은 하면서도 내심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에스프레소라니. 살면서 절대로 내 입으로 발음해 주문해본 적은 없는 그 자그마한 음료를 음미할 수 있을까. 하마처럼 커피를 흡입하는 내가? 





뭐든 부딪쳐봐야 입맛도 취향도 느는 거겠죠


과연, 이곳은 에스프레소 전문점이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그 흔한 아메리카노나 라떼 하나 없이, 메뉴판의 음료가 온통 에스프레소였다. 그래,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왔으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거다. 문외한인 친구와 나는 사장님께 친히 추천을 받아 입문자용으로 무난하다는 ‘이니지오’를 두 잔 주문했다. 난생처음 주문한 귀염뽀짝한 사이즈의 커피를 받아들었다.      


‘데미타세(demitasse)’라 불리는 에스프레소 전용 잔에는 한 입 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음료가 찰랑찰랑 소중히 담겨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천천히 잔을 들어 에스프레소를 맛보고 나자 와..., 반신반의하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세상에, 귀여울 뿐 아니라 너무 맛있잖아? 나는 그 날, 연거푸 네 잔을 마셨다.      






이니지오(Inizio)│2,700
카카오,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 입문 추천 음료
티라미수 (Tiramisu)│3,100 
스몰사이즈 수제 컵 티라미수 (한정판매) 

    

‘시작’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인 ‘이니지오’는 이 곳 <앳 디 엔드>에서 입문자용으로 사장님이 추천해주시는 대표 음료다. 크림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로, 고농축이라 매우 쓸 것이라 생각했던 에스프레소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부드러운 맛이었다.

 



콘 판나 (Con Panna)│2,700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된 부드러운 생크림을 올린 음료   
칸투치 (Cantucci)│1,100 (아몬드/초코)
이탈리아 토스카나식으로 2번 구워 단단한 과자   


‘콘 판나’는 ‘이니지오’보다 조금 더 달달한 음료로,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된 부드러운 생크림이 올라가 있다. 스푼으로 함께 떠먹으면, 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에 대한 선입견 따위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한 맛이 느껴진다. 함께 주문한 이탈리아식 과자 ‘칸투치’는 이탈리아, 특히 토스카나 지역에서 식후에 디저트로 먹는 과자인데, 두 번 구워내 수분이 없고 식감이 바삭한 특징이 있다. 크게 달지 않은 칸투치는 커피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코모도 (Comodo) │2,700
에스프레소에 크림, 우유가 들어가 부드럽게 마실 수 있는 음료.

 코모도는 에스프레소와 크림, 우유로 이루어진 메뉴다. 크림과 우유가 둘 다 들어가기 때문에 느낌이 카페라떼와 비슷했고, 마시기에도 부드럽고 목 넘김이 편안했다. ‘이니지오’나 ‘콘 판나’와 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가 낯선 분들에겐 장벽이 낮은 편하고 무난한 맛이다. 



로마노 (Romano)│2,700
에스프레소와 레몬     

앞의 ‘이니지오’와 ‘콘 판나’, ‘코모도’가 크림이나 우유를 더해 대중적으로 편히 즐길 수 있는 에스프레소였다면, ‘로마노’는 작은 레몬 껍질 조각과 함께 제공되는, 보다 에스프레소-스러운 맛의 음료였다. 커피의 쓴맛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과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선호할 수 있는 맛일 듯하다.





시작과 끝 The Beginning and the end


이곳 <앳 디 엔드>는, 에스프레소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어려운 경험이 아닌, 쉽고 좋은 기억을 주기 위해 시작하게 된 매장이라고. 그래서일까, 이곳의 메뉴들은 누구든지 쉽게 에스프레소를 접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어 구성한 정성이 돋보인다. 쓰고 진하기만 할거라고 생각했던 에스프레소에 대한 내 생각 또한 이곳을 통해 깨졌으니.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시작과 끝’이 되고 싶다는 이곳의 슬로건대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앳 디 엔드>의 정성과 섬세한 맛이 가 닿기를 바라본다.





차곡차곡 쌓인 데미타세도 예뻐


이곳에는 한가지 특별한 풍경이 있다. 보통 이곳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두 잔 이상 마시기 때문에, 다 마신 에스프레소는 층을 쌓아 카운터에 반납하는데. 손님들이 마시고 간 귀여운 데미타세가 층층이 쌓아 올려진 <앳 디엔드>의 카운터 모습이 하나의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서너 잔을 마시면 보통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의 카페인이라고 한다. 그동안 양이 아쉬워 에스프레소를 잘 즐기지 못했던 건, 에스프레소를 딱 한 잔만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서너 잔의 각기 다른 에스프레소를 맛보는 경험은 너무나 새롭고도 즐거웠다. 덕분에 앞으론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에 목매지 않고 편히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70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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