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죽을 뻔한 라섹수술 후기 대방출 !
임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피뉴이어를 염원하며 저는 새 눈을 얻고자 *라섹(LASEK)수술을 했습니다. 안경과 렌즈로 줄곧 연명해오던 시력이 더는 귀찮아 견딜 수 없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죠. 평상시엔 생각이 많고 우유부단하단 소리를 잘 듣지만, 결심을 굳히고 난 뒤에는 제법 추진력이 있는 편입니다. 수술을 결심한 이후 곧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수술 날짜도 바로 잡았습니다.
* (LASEK) : 희석된 알코올을 이용하여 얇은 각막 상피를 만들어 절개하여 젖힌 후 레이저로 시력을 교정한 다음, 분리해 둔 각막의 상피를 본래의 자리로 복구하는 수술.
병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수원 팔달문 근처의 안과였습니다. 먼저 라섹수술을 한 친구가 소개해준 병원이었는데요. 사전조사를 꼼꼼히 잘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거기에 있는 라섹수술 기계가 굉장히 좋은 거라고 하더군요. 사실 전 그런 건 잘 모릅니다. 병원에 가는 순간조차도 얼마나 시설이 깨끗하고 감각적인지를 고려하는 사람이니까요. 추천받은 병원은 제 멍청한 기준대로라면 절대 가지 않을, 다소 쿰쿰하고 낙후된 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노인분들이 진료를 받겠다고 앉아계신 광경을 살펴보며 추천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 눈알에 칼을 대는 수술이니 무엇보다 실력과 장비를 봐야 했죠.
두어 시간의 검사 결과, 저는 각막 두께가 꽤 두꺼운 상태로 *라식(LASIK)과 라섹(LASEK) 모두 가능한 눈이었지만 여러 가지 말들을 종합해본 결과 더 안전한 라섹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엇보다 비용 차이가 심하지 않은 것도 한몫했지요.
* 라식(LASIK) : 각막의 표면을 얇게 벗겨 낸 후 레이저로 시력 교정을 한 다음 벗겨 냈던 각막을 원래의 상태로 덮어 접합하는 수술.
속전속결. 검사받은 다음 주 바로 저는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수술은 뭐랄까, 간단하지 않게 들렸지만 간단했습니다. 검사는 두어 시간이나 걸리는데 반해 수술은 체감상 5분 남짓이나 됐으려나요. 마취약이 눈알로 떨어지고, 각막을 살짝 벗겨내고, 쥐포 타는 냄새를 동반한 레이저를 몇십 초간 조사하고, 각막을 덮고, 보호렌즈를 얹고 나면 끝이었습니다. 매우 첨예해 보이는 이 모든 과정이 단 5분 만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술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생각보다 아프지 않길래 이 수술을 ‘할만한’ 수술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요.
수술 3일 차가 되던 날 아침입니다. 눈을 뜨려고 했는데 눈이 떠지지 않아요. 누가 제 눈을 커터칼로 긁어낸 뒤 후춧가루를 뿌린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뜨면 “으아악!”하며 다시 눈을 감게 되기를 반복. 저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포기했습니다. 눈물을 줄줄줄 흘리며 떡진 머리로 그렇게 하루를 누워서 보냈지요. 아마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에도 그렇게 울어보진 않았을 거예요.
정말이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수술이었습니다. 모든 반응이 그다지 생동감 넘치지 않는 *ISTJ 남편 말을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그저 “눈이 시려서 며칠은 불을 끄고 지냈어”라고 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프고, 빛이 한줄기라도 들어오면 태양열로 눈을 지지는듯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됩니다. 진통제를 하루 네 알이나 복용하고 침대에 누워 거의 금치산자 수준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만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한 날이었어요. 시간이 정말 더럽게 안 가더라고요.
* ISTJ :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세상의 소금형,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로 분류되는 성격 유형.
남편의 ‘시리다’는 표현은 그 엄청난 고통이 조금 사그라진 뒤의 이야기였습니다. 4일 차가 되자 눈을 지지는 듯한 통증은 완화되고 시림 증상이 느껴졌습니다. 금치산자에서 이제는 빛을 보면 타 죽는 뱀파이어가 됩니다. 조금이라도 환하면 시려서 눈물이 흐르기에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지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똥을 싸고,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하고, 어둠 속에서 밥을 먹었죠.
5일 차가 되니 감사하게도 선글라스를 두 개 겹쳐서 쓰면 TV 정도는 ‘간신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부터는 다행히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하루하루 시림이 사라지더라고요. 이제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 외에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날이 너무 심하게 아파서였을까요, 저는 지금 이 수준으로도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돈을 아끼는 3대 효자가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치아, 건강한 피부, 그리고 건강한 눈이라죠. 전 치아교정을 하며 거금을 한 차례 날렸고, 그나마 피부에는 큰돈을 들여본 적은 없었지만, 제일 믿었던 ‘눈’이 최근 효자 리스트에서 튕겨져 나갔네요. 학창 시절 안경 한번 써본 적 없이 늘 1.0을 기록하던 눈이였는데, 어느새 제 시력은 차츰차츰 나빠져 근시에 난시까지 겹쳐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번 라섹수술을 하며 느끼는 바가 있다면, 타고난 효자도 있을 순 있겠지만 공을 들이지 않으면 멀쩡한 효자도 패륜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늘 건강하게 잘 있을 줄 알고 생각 없이 쓰다 보면 어느새 망가져있는 신체기관들입니다. 결국 잘 돌봐주지 않으면 고장나버리는 하찮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러니, 내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이 아이들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지 안 할지를 평생 신경 쓰며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인생의 두 번째 분기를 시작한 삼십 대이지만 저는 벌써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지냅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장의 생태계, 기름진 음식과 혈행과의 상관관계, 쓰지 않으면 속절없이 굳어가는 근육들, 그리고 최근에야 깨달은 눈 건강까지 말입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고 지내야 하는 일상 속, 블루라이트 차단은 이제 제 눈 건강에 필수입니다. 핸드폰은 밤이 되면 으레 다크 모드로 사용하죠. 일회용 인공눈물은 항상 제 방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이나 아프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시겠죠? 눈코입부터 근육과 혈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신경 쓰지 않을 것들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부디, 건강을 살뜰히 챙겨서 아프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로 100세 시대를 맞이 할 수 있도록 하자구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알을 새로 맞추러 가보아야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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